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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는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반출해 간 고분 출토품과 일본인이 개인적으로 약탈 해 간 문화재 등 모두 4,479점의 문화재를 반환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 대상은 조선에 통감부가 설치된 1905년부터 1945년 사이에 약탈해 간 문화재였습니다.
대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조선총독부가 반출해간 고분 출토품 689점(도쿄국립박물관, 도쿄대 소장), 통감 및 총독이 반출해 간 도자기 103점, 데라우치 총독이 소장한 서화 245점, 불상 8점, 통감부 전적 1,015점, 일본 국유에 해당하는 분묘 출토품과 체신관련 문화재 758점, 오쿠라 컬렉션 80점, 기타 개인 소장품 1,581점 등 입니다.
그러나 일본은 개인 소유 문화재를 제외한 채 국유 공유 문화재 1,431점만 반환하고 끝내 버렸습니다(이 가운데 창녕 교동 고분군 출토품 106점은 1958년에 반환) 당시 한국 정부가 강력히 반환을 요청했던 경남 양산 부부총 출토품 489점도 돌아오지 않았는데, 소장처인 도쿄국립박물관의 반대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 반환된 것은 반환 요청 문화재의 32%에 불과하다.일제가 실제로 약탈해 간 문화재에 비하면 지극히 일부였습니다. 이같은 반환 결과는 당시 한국 정부의 안일한 대응 탓이었습니다. 문화재 반환 협약에 '개인 소유 문화재는 자발적인 기증을 권고한다' 고만 해 놓았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당시 문화재 반환 협정 관련 문건을 보면 , 한국 정부는 '일본 측의 강력한 소망과 우리나라에 이보다 월등이 우수한 유사 문화재가 국립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는 사실을 고려' 해 반환포기한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대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조선총독부가 반출해간 고분 출토품 689점(도쿄국립박물관, 도쿄대 소장), 통감 및 총독이 반출해 간 도자기 103점, 데라우치 총독이 소장한 서화 245점, 불상 8점, 통감부 전적 1,015점, 일본 국유에 해당하는 분묘 출토품과 체신관련 문화재 758점, 오쿠라 컬렉션 80점, 기타 개인 소장품 1,581점 등 입니다.
그러나 일본은 개인 소유 문화재를 제외한 채 국유 공유 문화재 1,431점만 반환하고 끝내 버렸습니다(이 가운데 창녕 교동 고분군 출토품 106점은 1958년에 반환) 당시 한국 정부가 강력히 반환을 요청했던 경남 양산 부부총 출토품 489점도 돌아오지 않았는데, 소장처인 도쿄국립박물관의 반대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 반환된 것은 반환 요청 문화재의 32%에 불과하다.일제가 실제로 약탈해 간 문화재에 비하면 지극히 일부였습니다. 이같은 반환 결과는 당시 한국 정부의 안일한 대응 탓이었습니다. 문화재 반환 협약에 '개인 소유 문화재는 자발적인 기증을 권고한다' 고만 해 놓았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당시 문화재 반환 협정 관련 문건을 보면 , 한국 정부는 '일본 측의 강력한 소망과 우리나라에 이보다 월등이 우수한 유사 문화재가 국립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는 사실을 고려' 해 반환포기한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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