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사료 분석
첫째로,『舊唐書』발해말갈전은 다음과 같다.
둘째는,『五代會要』발해전이다.
셋째는『新唐書』발해전이다.
넷째는 최치원의 글이다.
첫째로,『舊唐書』발해말갈전은 다음과 같다.
둘째는,『五代會要』발해전이다.
셋째는『新唐書』발해전이다.
넷째는 최치원의 글이다.
본문내용
로 갔다. 그 경로는 후대의 경로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므로, 輝發河 유역을 따라가서 제2송화강을 건넌 뒤 목단강 상류로 들어갔을 것이다. 이들은 동모산에 성을 쌓고 숨을 돌렸는데, 신당서에서 태백산 동북쪽의 오루하 부근에 벽을 세우고 自固하였다고 한 것도 바로 동모산에 성을 쌓은 사실을 전하는 것이다. 산 위에 성을 쌓고 터전으로 삼은 것도 세력의 확장보다는 방어가 우선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러한 사실들은 다급했던 당시의 사정을 반영하고 있다. 여기서 세력을 다시 키운 대조영은 진국을 표방하면서 나라를 세웠으니, 이 때가 바로 698년이다. 그는 나라를 세운 뒤에 주변 세력을 흡수하기 시작하였는데 처음부터 함께 행동한 말갈족과 고구려 유민들을 주축으로 주변의 말갈족들을 아우름으로써 발해 초기의 중심세력을 형성하였다. 한편 돌궐, 신라 등의 주변 국가와 연계를 맺어 당나라에 대비하는 외교활동도 벌였다. 건국 이후에 당나라와 접촉하게 된 것은 측천무후가 사망하고 705년 중종이 즉위한 뒤였다. 그러나 당나라로부터 정식으로 책봉을 받은 것은 이보다 더 늦은 713년이었으며, 그로부터 719 년에 그가 사망하기까지 당나라에 빈번히 사신을 파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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