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제 1 장 : 3S정책의 정의 및 목적
제 2 장 :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
1) 3S정책의 시작
(1) 문화대통령이기를 희망한 전두환
(2) 3S 정책의 제안자
(3) 3S 정책의 기점
2) Screen Sex Sports
(1) 대중의 마취제, TV와 VCR
(2) 애마부인의 정치학
(3) 꿈, 정열, 그리고 건전한 여가선용
제 3 장 : 오늘날의 3S 정책
제 4 장 : 대중의 문화적 욕망, 억압 없는 삶에 대한 꿈
제 2 장 :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
1) 3S정책의 시작
(1) 문화대통령이기를 희망한 전두환
(2) 3S 정책의 제안자
(3) 3S 정책의 기점
2) Screen Sex Sports
(1) 대중의 마취제, TV와 VCR
(2) 애마부인의 정치학
(3) 꿈, 정열, 그리고 건전한 여가선용
제 3 장 : 오늘날의 3S 정책
제 4 장 : 대중의 문화적 욕망, 억압 없는 삶에 대한 꿈
본문내용
S’에 대해서는 조금도 깨닫지 못하는 무지와, 기꺼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는 비이성적 상태로 이룩한 통일은 과연 어떤 통일일지 의구심이 든다. 월드컵 축구를 볼 때는 ‘대~한민국’이라는 응원구호도 없고, 태극기를 흔드는 붉은 악마의 모습은 TV에 나오지 않으며, 어떠한 인권남용에 대해서도 ‘우리는 하나’가 되기 위해 무조건 침묵하는 그런 삶이 일상이 되는 세상에서 우리의 삶이 행복할 수 있을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제 4 장 : 대중의 문화적 욕망, 억압 없는 삶에 대한 꿈
1980년대 초 5공 정권이 전개한 3S 정책은 한국의 대중소비시대와 맞물려 엄청난 파급효과를 낳았다. 대중이란 “넓은 범위에 흩어져 있는 조직되지 않은 다수의 사람들”이라는 뜻이며, 그 특징으로 획일성, 동조성, 수동성, 정치적 무관심 등을 들 수 있다. 대중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굶주리는 사람이 없어야하고 모든 사람이 자유로워야 하며 모든 물품이 골고루 소유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는 1966년까지 굶주리는 사람, 보릿고개와 춘궁기가 존재하고, 1970년대 말까지 장발 단속과 미니스커트는 허용되지 않았다. 1979년에만 해도 전화와 자동차는 부자들의 전유물이었지만, 1989년 말에는 1가구 1전화 시대가 거의 달성되고, 1가구 1자동차 시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찢어진 청바지, 배꼽티 패션과 노래 음반이 날개 도친 듯 팔리고 성의 표현에서도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과거에는 들어보지 못했던 ‘성희롱’이라는 말이 일반화되고 있었다.
1980년대는 바로 한국에 대중소비사회가 실현되는 시대였다. 그렇게 되는 데는 ‘86 아시안게임’과 ‘88 하계올림픽’이라는 양대 행사가 커다란 비중을 차지했지만, 1985년부터 일어난 경제의 3저 현상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국제 기름 값의 하락, 국제 금리의 하락, 엔고원저 현상이었습니다. 국제경제에서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에 1981~1991년의 11년간에 국민경제 규모가 네 배 이상 신장되었고, 한국이 대중소비시대로 들어가는 데에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다. 그렇지만 제5공화국 정권이 기도한 대로 3s 정책 때문에 한국은 과연 탈 정치화되었는가, 한국 국민의 정치적 성향이 감퇴되었는가에 관해서는 아직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3S’라는 문화를 끊임없이 제공할수록 대중의 문화적 욕망, 억압 없는 삶에 대한 꿈은 더욱 커질 것이다. 문제의 ‘3S’에 의하여 대중은 권력자들의 의도대로 바보가 되는 듯이 보이지만 바로 그 ‘3S’속에서 자유와 쾌락의 욕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즉, ‘저렇게 자유롭게 살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이 결국 그러한 생각의 실현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회 현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다음 순서로 결국 권력자들은 ‘3S 정책’을 포기하게 되고, 심지어는 통제선 바깥으로 끓어 넘치는 대중의 자유로운 삶에 대한 욕망을 차단하기 위해서 문화적 탄압과 검열을 휘두르게 된다. 따라서 ‘3S 정책’이란 오래가지 못하고 실패하기 마련인 것이다.
제 4 장 : 대중의 문화적 욕망, 억압 없는 삶에 대한 꿈
1980년대 초 5공 정권이 전개한 3S 정책은 한국의 대중소비시대와 맞물려 엄청난 파급효과를 낳았다. 대중이란 “넓은 범위에 흩어져 있는 조직되지 않은 다수의 사람들”이라는 뜻이며, 그 특징으로 획일성, 동조성, 수동성, 정치적 무관심 등을 들 수 있다. 대중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굶주리는 사람이 없어야하고 모든 사람이 자유로워야 하며 모든 물품이 골고루 소유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는 1966년까지 굶주리는 사람, 보릿고개와 춘궁기가 존재하고, 1970년대 말까지 장발 단속과 미니스커트는 허용되지 않았다. 1979년에만 해도 전화와 자동차는 부자들의 전유물이었지만, 1989년 말에는 1가구 1전화 시대가 거의 달성되고, 1가구 1자동차 시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찢어진 청바지, 배꼽티 패션과 노래 음반이 날개 도친 듯 팔리고 성의 표현에서도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과거에는 들어보지 못했던 ‘성희롱’이라는 말이 일반화되고 있었다.
1980년대는 바로 한국에 대중소비사회가 실현되는 시대였다. 그렇게 되는 데는 ‘86 아시안게임’과 ‘88 하계올림픽’이라는 양대 행사가 커다란 비중을 차지했지만, 1985년부터 일어난 경제의 3저 현상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국제 기름 값의 하락, 국제 금리의 하락, 엔고원저 현상이었습니다. 국제경제에서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에 1981~1991년의 11년간에 국민경제 규모가 네 배 이상 신장되었고, 한국이 대중소비시대로 들어가는 데에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다. 그렇지만 제5공화국 정권이 기도한 대로 3s 정책 때문에 한국은 과연 탈 정치화되었는가, 한국 국민의 정치적 성향이 감퇴되었는가에 관해서는 아직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3S’라는 문화를 끊임없이 제공할수록 대중의 문화적 욕망, 억압 없는 삶에 대한 꿈은 더욱 커질 것이다. 문제의 ‘3S’에 의하여 대중은 권력자들의 의도대로 바보가 되는 듯이 보이지만 바로 그 ‘3S’속에서 자유와 쾌락의 욕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즉, ‘저렇게 자유롭게 살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이 결국 그러한 생각의 실현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회 현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다음 순서로 결국 권력자들은 ‘3S 정책’을 포기하게 되고, 심지어는 통제선 바깥으로 끓어 넘치는 대중의 자유로운 삶에 대한 욕망을 차단하기 위해서 문화적 탄압과 검열을 휘두르게 된다. 따라서 ‘3S 정책’이란 오래가지 못하고 실패하기 마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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