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개요
Ⅱ. 도서관의 본질
1. 관념적 도서관
2. 실체적 도서관
3. 도서관적 행위
Ⅲ. 도서관의 역할
1. 정보의 창고
2. 새로운 정보의 수집
3. 독서와 학습 활동 공간
4. 생활 문화 공간
Ⅳ. 도서관의 문제점
Ⅴ. 고대 도서관의 기원
Ⅵ. 고대 도서관의 새로운 발견
Ⅶ. 고대 도서관에 대한 질의응답
1. 최초의 도서관 설립자는 누구인가?
2. 최초의 목록은?
3. 고대도서관에도 대출/반납, 구분이 있었다?
4. 고대도서관에도 연체했을 때 어떻게 할까?
5. 목욕탕에는 물론이고, 체육관에도 도서관이 있었다?
참고문헌
Ⅱ. 도서관의 본질
1. 관념적 도서관
2. 실체적 도서관
3. 도서관적 행위
Ⅲ. 도서관의 역할
1. 정보의 창고
2. 새로운 정보의 수집
3. 독서와 학습 활동 공간
4. 생활 문화 공간
Ⅳ. 도서관의 문제점
Ⅴ. 고대 도서관의 기원
Ⅵ. 고대 도서관의 새로운 발견
Ⅶ. 고대 도서관에 대한 질의응답
1. 최초의 도서관 설립자는 누구인가?
2. 최초의 목록은?
3. 고대도서관에도 대출/반납, 구분이 있었다?
4. 고대도서관에도 연체했을 때 어떻게 할까?
5. 목욕탕에는 물론이고, 체육관에도 도서관이 있었다?
참고문헌
본문내용
견했다. 발굴기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작업반은 다른 한 방에서 필생의 성과를 올렸다. 그 방에는 14,000매의 점토판들이 서가가 불타는 바람에 바닥에 내려앉아 차곡차곡 쌓여 있었는데 대부분 파손되지 않고 온전한 상태였다. 이 두 개의 방에 점토판들이 집중적으로 서가상에 보존되고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세계최초의 왕궁도서관이었음이 밝혀졌다. 이외에도 에블라왕궁의 발굴은 경이에 찬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주었다.
발굴된 점토판들 가운데는 100여개의 점토판사전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사전에는 약 3,000항목의 에블라어가 실려 있고, 이와 동일한 의미를 가진 수메르어가 적혀 있었다. 이 사전은 이미 수메르 문명의 폐허에서 발굴된 점토판 사전보다 더 오래된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사전이다.
왕의 기록보존소에서 발견된 점토판 가운데는 정부의 공식문서 이외에 당나귀 대상편에 보낸 화물들을 기록해 두는 화물의 송장(送狀)도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서기학교의 교과나 시험문제들도 상당수 포함하고 있다. 역대의 왕들은 법령을 공포하고 상인들은 가격을 흥정하지만 에블라 사회의 핵심적 계층인 서기들은 이러한 결정사항을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번역해야만 했다. 학생들은 교사가 에블라어나 수메르어로 써 준 글들을 쉬지 않고 베꼈다. 학생들이 잘못 적은 부분 옆에 방점이 찍혀 있는 점토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서기학교에서의 교육은 비교적 철저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전술한 사전은 국제관계나 상업적 거래를 위해서, 또는 서기학교의 교육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도구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발굴된 점토판들 가운데는 성서의 인명과 지명을 연상시키는 이름, 즉 다윗, 에서, 사울, 아브라함, 이스라엘, 시나이, 가자, 심지어는 예루살렘과 유사한 이름들이 나오고 있고, 일부 점토판의 내용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성서학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발굴된 점토판들을 모두 해독하는 데는 앞으로 많은 시일이 걸리겠지만, 지금까지 확인된 결과만으로도 에블라 왕궁과 왕궁도서관의 존재는 세계역사와 도서관사에 있어서 금세기 최고의 발굴로 꼽을만한 것이다.
Ⅶ. 고대 도서관에 대한 질의응답
1. 최초의 도서관 설립자는 누구인가?
지금까지 아시리아 왕 아슈르바니팔이 세운 도서관이 최초이며, 아슈르바니팔은 최초의 도서관 설립자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카슨은 최근의 학술조사 결과를 들어 최초의 도서관 설립자는 티글라트 필레세르 1세라고 말한다.
2. 최초의 목록은?
제목만 나열하는 형태의 닛푸르 목록이 식별 가능한 설명이 있는 하투사스 목록을 거쳐 체계를 갖춘 칼리마쿠스의 피나케스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지금의 형태의 목록은 한참 후에야 만들어진 것이다.
3. 고대도서관에도 대출/반납, 구분이 있었다?
\'고대도서관 = 왕실(귀족)도서관\'의 사고가 존재하고, 이는 국왕 1인만을 위한 도서관이었다는 착각으로 전이된다. 하지만, 고대도서관에서도 일단의 무리들에게 대출이 허용되어 당일반납, 1일 대출, 대출금지 등의 자료등급이 존재했다고 한다.
4. 고대도서관에도 연체했을 때 어떻게 할까?
고대도서관에는 지금과 같은 형태의 연체료가 없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연체료가 없는 대신 끔찍한 형벌(?)이 있었다는 점이다. 즉, 책에 낙서를 하거나 반납하지 않으면 신의 저주가 있을 것이라는 경고문구가 있는데 고대도서관에서 연체료는 죽음의 저주였던 것이다. 그것만 보아도 고대 사람들이 책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알 수 있다.
5. 목욕탕에는 물론이고, 체육관에도 도서관이 있었다?
로마시대에 목욕문화가 발달했었고, 목욕탕 내부에 도서관이 있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바다. 그런데, 저자는 이에 더하여 체육관에도 도서관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고대 도서관은 지식인이 주로 맡았지만 때로는 매관매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도서관이 권력과 향방을 같이했다는 것은, 그 시대의 중심이 곧 도서관을 소유했다는 얘기다.
참고문헌
김세익 - 도서·인쇄·도서관사, 서울 : 아세아문화사, 1994
대학교 도서관 편 - 도서관소식, 대학교 도서관 창간호(1989), 제2호(1990), 제6호(1993)
라이오넬 카슨 저, 김양진 역 - 고대 도서관의 역사(르네상스라이브러리 1, 4*6배판)
서해경·이소영 저 - 노는 도서관 배우는 도서관(4*6배판), 현암사, 2010
최미화 - 르네상스, 2003
한국도서관협회 - 도서관정보관리편람, 한국도서관협회, 1994
한국도서관협회 - 도서관 백서, 서울 : 삼아, 1992
발굴된 점토판들 가운데는 100여개의 점토판사전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사전에는 약 3,000항목의 에블라어가 실려 있고, 이와 동일한 의미를 가진 수메르어가 적혀 있었다. 이 사전은 이미 수메르 문명의 폐허에서 발굴된 점토판 사전보다 더 오래된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사전이다.
왕의 기록보존소에서 발견된 점토판 가운데는 정부의 공식문서 이외에 당나귀 대상편에 보낸 화물들을 기록해 두는 화물의 송장(送狀)도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서기학교의 교과나 시험문제들도 상당수 포함하고 있다. 역대의 왕들은 법령을 공포하고 상인들은 가격을 흥정하지만 에블라 사회의 핵심적 계층인 서기들은 이러한 결정사항을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번역해야만 했다. 학생들은 교사가 에블라어나 수메르어로 써 준 글들을 쉬지 않고 베꼈다. 학생들이 잘못 적은 부분 옆에 방점이 찍혀 있는 점토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서기학교에서의 교육은 비교적 철저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전술한 사전은 국제관계나 상업적 거래를 위해서, 또는 서기학교의 교육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도구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발굴된 점토판들 가운데는 성서의 인명과 지명을 연상시키는 이름, 즉 다윗, 에서, 사울, 아브라함, 이스라엘, 시나이, 가자, 심지어는 예루살렘과 유사한 이름들이 나오고 있고, 일부 점토판의 내용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성서학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발굴된 점토판들을 모두 해독하는 데는 앞으로 많은 시일이 걸리겠지만, 지금까지 확인된 결과만으로도 에블라 왕궁과 왕궁도서관의 존재는 세계역사와 도서관사에 있어서 금세기 최고의 발굴로 꼽을만한 것이다.
Ⅶ. 고대 도서관에 대한 질의응답
1. 최초의 도서관 설립자는 누구인가?
지금까지 아시리아 왕 아슈르바니팔이 세운 도서관이 최초이며, 아슈르바니팔은 최초의 도서관 설립자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카슨은 최근의 학술조사 결과를 들어 최초의 도서관 설립자는 티글라트 필레세르 1세라고 말한다.
2. 최초의 목록은?
제목만 나열하는 형태의 닛푸르 목록이 식별 가능한 설명이 있는 하투사스 목록을 거쳐 체계를 갖춘 칼리마쿠스의 피나케스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지금의 형태의 목록은 한참 후에야 만들어진 것이다.
3. 고대도서관에도 대출/반납, 구분이 있었다?
\'고대도서관 = 왕실(귀족)도서관\'의 사고가 존재하고, 이는 국왕 1인만을 위한 도서관이었다는 착각으로 전이된다. 하지만, 고대도서관에서도 일단의 무리들에게 대출이 허용되어 당일반납, 1일 대출, 대출금지 등의 자료등급이 존재했다고 한다.
4. 고대도서관에도 연체했을 때 어떻게 할까?
고대도서관에는 지금과 같은 형태의 연체료가 없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연체료가 없는 대신 끔찍한 형벌(?)이 있었다는 점이다. 즉, 책에 낙서를 하거나 반납하지 않으면 신의 저주가 있을 것이라는 경고문구가 있는데 고대도서관에서 연체료는 죽음의 저주였던 것이다. 그것만 보아도 고대 사람들이 책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알 수 있다.
5. 목욕탕에는 물론이고, 체육관에도 도서관이 있었다?
로마시대에 목욕문화가 발달했었고, 목욕탕 내부에 도서관이 있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바다. 그런데, 저자는 이에 더하여 체육관에도 도서관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고대 도서관은 지식인이 주로 맡았지만 때로는 매관매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도서관이 권력과 향방을 같이했다는 것은, 그 시대의 중심이 곧 도서관을 소유했다는 얘기다.
참고문헌
김세익 - 도서·인쇄·도서관사, 서울 : 아세아문화사, 1994
대학교 도서관 편 - 도서관소식, 대학교 도서관 창간호(1989), 제2호(1990), 제6호(1993)
라이오넬 카슨 저, 김양진 역 - 고대 도서관의 역사(르네상스라이브러리 1, 4*6배판)
서해경·이소영 저 - 노는 도서관 배우는 도서관(4*6배판), 현암사, 2010
최미화 - 르네상스, 2003
한국도서관협회 - 도서관정보관리편람, 한국도서관협회, 1994
한국도서관협회 - 도서관 백서, 서울 : 삼아,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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