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수도의 천도에 따른 무덤고분 양식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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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백제 수도의 천도에 따른 무덤고분 양식의 변화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본론
(1) 각 고분의 특징과 양식
1) 위례성(서울)의 고분의 특징과 양식
- 석촌동 고분군
2) 웅진(공주)의 고분의 특징과 양식
- 송산리 고분군
3) 사비(부여)의 고분의 특징과 양식
- 능산리 고분군
3. 맺음말
4. 참고문헌

본문내용

도 있지만 대부분 고임식이 중심을 이루고 여기에 수평식까지 포함되어 있어 일단 개괄적 범위에서 보면 사비 도읍기에 조성된 것은 분명하다. 나아가 이들을 형식에 따라 시간순서에 따라 나열할 경우 터널식이 가장 이른 것 인데 체마소대총처럼 전기적 요소가 있는 것도 있지만 이 터널식의 발생이 웅진도읍후기에 이루어진 것에 비추어 그러한 존재는 능산리 고분군이 사비도읍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는데 적극적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능산리 고분군의 개별 고분들은 횡혈식 석실분이란 단일 유형에 한정되어 있다. 나아가 개별고분들은 횡혈식 석실분으로 구조적으로 사비 천도 후에 조영된 터널식이나 고임식 그리고 수평식에 국한되어 단순성을 보인다. 이러한 단순성 은 고분군의 마련이 사비천도전이라던가 혹은 백제의 사비시대 이후인 멸망 후와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대변하는 것으로 백제가 사비로 천도한 후에 성격이 분명한 집단에 의해 고 분군의 조영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게 한다. 능산리 고분군의 개별고분은 축조기법이나 규 모에서 우수성이 인정된다. 축조기법에서 횡혈식 석실분의 축재로 판석재를 사용하는 것이 많지만 능산리 고분군처럼 화강석을 정교하게 다듬어 사용하는 예는 특수한 경우에 국한될 뿐이고 거칠게 다듬은 판석재 혹은 괴석재의 사용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능산리 고분군의 개별 고분은 입구의 시설이나 연도의 형상에서 정교함이 두드러진 편인데 이는 고 분군의 특수성을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규모에 있어서는 개별 사례에 따른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보아 상급류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능산리 고분군의 개별 고분내 피장자의 위치가 나름의 특수 신분의 것이란 점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며 동시기의 다른 지 역에 있는 횡혈식 석실분과 견주어 왕릉으로 비정하는데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능산리 고분군은 서쪽의 고분군과 동쪽의 고분군으로 나뉘는데 축조 기술이나 규모로 미루 어 서쪽의 고분 6기에 비해서는 동고분군의 5기는 상대적 열악성이 드러난다. 따라서 능산 리 고분군의 개별고분중에 왕릉으로서의 위치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서쪽의 고분 6기가 그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서쪽의 고분 6기는 구조형식에서 차이가 있는데 천정가구의 형 태차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상태로 있다. 중하총과 같은 터널식이 있는가 하면, 중상총과 같 은 고임식의 구조가 있고 나아가 동하총과 같은 수평식이 있다. 그런데 중하총은 터널식 석 실분의 일반적 형태에서 재료가 보다 세련된다거나 연도가 중앙으로 정착되는 등의 발전된 모습을 보이지만 벽면의 회바름 등의 기법은 아직 전단계의 요소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문제는 고분 6기가 모두 왕릉인가 아니면 이중에 1기 혹은 일부만이 왕릉인가의 문제 이다. 분묘의 피장자 비정을 위해 이에 대응되는 분묘의 시간 순에 따른 순서 배열 작업을 토대로 살펴보면, 왕릉으로 추정되는 능산리 고분군 중에서 가장 이른 것은 중하총이고 이 어 동상총 및 서하총, 그리고 중상총과 동하총의 순서로 축조된 것으로 확인된다. 능산리 고 분군이 백제 왕릉으로 명실상부한 위치를 갖는 것은 사비 도읍기에 처음 타계한 성왕이 여 기에 묻혔기 때문인데 묘제는 그의 부친인 무령왕의 능과 어느 정도 상통하면서 보다 발전 된 즉, 백제화된 것이 사용되었을 것일 뿐만 아니라 고분군내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이는 중하총이 그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중하총은 능산리 고분군의 고분배치에 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외 성왕이후 위덕왕 이나 혜왕과 법왕의 무덤은 만일 그들이 동일혈연이고 동일 능역내에 안장되었다면, 성왕릉 인 중하총 주변에 일단 함께 조성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며, 위덕왕릉은 성왕릉인 중하총 의 다음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 동상총이 가장 유력하며, 이외 혜왕이나 법왕의 능묘 는 단장으로 남겨진 중상총, 서상총, 서하총, 그리고 동하총까지를 대상으로 하며, 왕과 왕비 4인의 무덤이 아닌가 추정된다.
3. 맺음말
이상으로 백제의 수도의 천도에 따른 백제 무덤의 양식의 변화를 알아보았다. 사실 무덤 양식에 대한 사실상의 내용이 방대해서 그렇지 우리가 알아본 무덤의 대표적 형태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나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첫째로 석촌동 고분군으로 대표되는 양식이 있고, 둘째로 송산리 고분군으로 대표되는 양식. 마지막으로 능산리 고분군으로 대표되는 양식으로 말이다. 각각의 고분군은 고구려와 중국 등의 영향을 고스란히 담아서 그 무덤의 양식 안에 표현해 내고 있다. 이로써 나는 이번 답사를 통해 이러한 것을 문서상으로만이 아니라 직접 내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으면서 알아 낼 수 있어서 매우 뜻 깊은 답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유적이라는 것이 예전의 수학여행처럼 아무런 주제의식도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 채 멍하니 바라볼 때와, 이번 답사처럼 분명한 자기만의 주제의식을 가지고 필요에 의해 딱딱 알맞은 행동을 동해서 바라볼 때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이전의 경우에는 그저 답답하고 지루한 일과에 불과 했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정말 유적의 작은 부분 하나하나가 다르게 보이고 의미 있게 보였다. 그리고 이전에 휙휙 지나쳐 버렸던 것들이 지나가다가도 다시 보게 되고 거기에서 의미를 찾게 되고 아.. 이게 어떤 이유로 이렇게 표현되어 있구나 하는 것들을 알 수 있었다. 언젠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교수님이 “아는 만큼 보인다.” 라고 써 놓은 말씀이 정말 가슴에 와 닿는 답사였다. 유적의 작은 부분 하나하나의 먼지 속에 숨어있는 역사의 숨결을 찾아보게 되고 또 그것을 보면서 이해할 수 있는 하루였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기회가 또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답사의 모든 일정을 맺고자 한다.
4. 참고문헌
살아있는 백제사 / 이도학 지음 / humanist / 2003
풍납토성, 500년 백제를 깨우다 / 김태식 지음 / 김영사 / 2001
백제의 중앙과 지방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 충남대학교 백제 연구소 / 1997
백제의 유적 유물의 사전적 고찰 / 소영선 / 중앙대학교 /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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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12.01.24
  • 저작시기2009.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26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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