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성곽의 기원,역사와 경남지역 성곽 문화재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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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나라 성곽의 기원,역사와 경남지역 성곽 문화재 현황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우리 나라 성곽의 기원과 역사
2.성곽의 기원
3.성곽의 종류
경남 지역의 성곽 문화재 현황

본문내용

으로 낙동강을 끼고 그 밑에 선박을 정박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멀리 김해 죽도성과 서로 바라볼 수 있는 전략상의 요지였던 곳이다. 일명 감동포성(甘同浦城), 감통성(甘筒城) 또는 구포의성(龜浦義城)이라고도 한다. 성 안에는 천수각지(天守閣址)가 있고, 성벽은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며 나사모양으로 감돌며 좁혀 올려 쌓았다. 일본식 성의 연구에 좋은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부산진지성 [釜山鎭支城]
임진왜란 때 왜군이 부산진의 지성(支城)으로 쌓은 왜성(倭城).
부산광역시기념물 제7호. 부산 동구 범일동 소재 자성대(子城臺) 안에 있으며 면적은 1만 8285 m2이고 본래 부산포의 외성(外城)이었던 것을 1593년(선조 26)에 모리 테루모토[毛利輝元] 부자가 일본식 성으로 새로 쌓았으며, 왜군이 물러간 뒤에는 명나라 장군 만세덕(萬世德) 휘하의 군대가 잠시 주둔하기도 했다. 뒤에 자성대를 중심으로 성을 쌓고 사대문인 진동문(鎭東門:동문) ·금루관(金壘關:서문) ·종남문(鐘南門:남문) ·구장루(龜藏樓:북문)를 세워 관아를 정비한 후 부산진첨사영으로 사용했다.
또 성 안에는 객사(客舍)인 공진관(拱辰館)과 폐문루(閉門樓)인 제남루(濟南樓), 그리고 동헌인 검소루(劒嘯樓)와 군기소(軍器所)인 청상루(淸霜樓), 관청 외에 15동이 있었고, 성 밖에는 진남루 외에 4동이 있었다. 1974년 동문 ·서문과 자성대 위의 장대(將臺)를 새로 건축하여 동문을 건춘문(建春門), 장대를 진남대(鎭南臺)라 하고 이듬해에는 동문 주위에 새로 성곽을 세웠다.
현재 최고 10 m, 최저 1.5 m의 성벽이 성지(城址)로 남아 있으며, 자성대에는 임진왜란 때의 명장 천만리(千萬里)를 기리는 천장군기념비(千將軍記念碑)와 최영장군비각이 있다. 이 성 서문의 양측 성곽에 끼여 있던 우주석(隅柱石)에는 “이곳은 나라의 목에 해당하는 남쪽 국경이라 서문은 나라의 자물쇠와 같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또 이 성은 일명 자성대 ·마루야마성[丸山城] ·고니시성[小西城] ·만공대(萬公臺)라고도 하는데, 자성대라는 이름은 부산진성을 모성(母城)으로 했을 때 그 자식의 성과 같다는 뜻과 산꼭대기에 자성(子城)을 만들고 장대를 세웠다는 데에서 나온 것이며, 고니시성은 1597년(선조 30)에 고니시가 주둔한 적이 있다 하여 나온 이름이다. 또 만공대는 만세덕 군대가 주둔한 적이 있고, 그 뒤에는 만공단(萬公壇)이 있었다 하여 나온 이름이다.

키워드

,   성곽,   기원,   역사,   경남,   문화재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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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2.07
  • 저작시기2011.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27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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