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주장할 수 있는 입장에 있었다. 임종 직전의 칭기즈 칸이 당시 어린 아이였던 쿠빌라이를 장래의 칸으로 지목했다는 전설이 몽골의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지만 이것은 제위찬탈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작된 것으로 보인다. 쿠빌라이의 업적은 당대(唐代) 이래 분열되어 있던 중국을 통일했다는 것이다. 이 업적은 그가 야만족유목민 출신의 정복자라는 점 때문에 더욱 가치 있는 것이다. 중국의 공식 사서(史書)에서조차도 쿠빌라이는 존대를 받고 있다. 1276년 쿠빌라이의 부장인 바얀이 남송의 어린 황제를 사로잡았다. 남송 지역의 남송 지지세력은 1279년까지 항쟁을 계속했으나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그는 1260년부터 연호를 쓰기 시작했고 남송이 붕괴하기 7년 전인 1271년부터 국호를 대원(大元)으로 제정선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