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론
Ⅰ. Ethnic Group: 민족인가 종족인가?
Ⅱ. 민족집단의 구분과 경계
Ⅲ. 현 소수민족문제의 역사적 형성
Ⅳ. 지배민족, 소수민족, 민족의식
Ⅴ. 민족과 계급의 교차
맺음말
Ⅰ. Ethnic Group: 민족인가 종족인가?
Ⅱ. 민족집단의 구분과 경계
Ⅲ. 현 소수민족문제의 역사적 형성
Ⅳ. 지배민족, 소수민족, 민족의식
Ⅴ. 민족과 계급의 교차
맺음말
본문내용
다.
글로벌시대에 한 종족의 문화적 특성 즉 종족성의 다양한 모습은 일관성의 부족이나 발명에 불과하다는 냉소적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전략적 자원으로서 다양한 면모를 가진 경쟁과 타협의 맥락에서 이해해야하는 것이다.
<북아일랜드의 민족갈등과 일상에서의 타자성 경험>
스스로를 아일랜드인이라고 인식하는 카톨릭계의 소수민족과 스스로를 영국인이라고 인식하는 개신교계의 다수민족 사이에 수백년 역사적 뿌리를 지닌 민족갈등에에 대해 살펴본다. 갈등관계에 있는 민족집단을 자기들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보는 정도를 넘어서 그르고 나쁜, 벌받아 마땅한 사람들로서 타자화시키는 인지구조가 사람들의 일상적 경험에 기반을 두고 재생산된다는 점을 주목한다.
두 민족집단은 종파에 따라 분리된 학교생활을 통해서 서로 상대집단을 나쁘고, 자신이 속한 민족집단의 존립을 위협하는 민족적 타자로 인식하는 역사관을 학습한다.
학창시절 역사관은 양 집단이 각종 기념일들을 맞이하여 거행하는 퍼레이드를 비롯한 의례들에 참여하는 경험을 통해 반복적으로 표현되고 강화된다.
거주공간이 격리되어 있어 상이한 민족집단에 속하는 개인들은 직업선택에서 다른 집단을 분리되고, 상업서비스 시설 이용에서도, 스포츠를 포함한 여가 활동 영역에서도 상이한 민족집단의 성원들 사이에 개인적 친분관계를 형성할 가능성이 크게 제한되어 있다. 혼인을 통한 친족관계 유대가 형성될 가능성은 더욱더 제한되어 있다. 북아일랜드 사람들은 일상생활의 도처에서 자기와 다른 민족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의 타자성을 경험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중산층보다 하층계급에서 더욱 심각하다.
상대방 집단의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고정관념에 의거하여 인식하게 만드는 현재의 일상적 경험 구조가 변화되어야한다.
현재의 학교 제도를 비종파적 학교인 ‘통합학교’로 만들려는 운동이 여론의 호응을 얻고 있다. 통합학교는 교과과정에서 상대방 집단에 대해 관용적 태도를 지닐 수 있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전체 학교의 5%미만 평화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한 상태다.
<미국의 인종민족정체성과 일상정치: 뉴욕시 할렘을 중심으로>
미국의 인종범주는 미국을 주도하는 백인들이 세계의 다양한 집단들을 인종적으로 범주화시키면서 나타난 것이다. 결국 인종주의는 생물학적 범주라기보다 사회적 상황에 따라 새로이 형성되고 바뀌는 문화적 범주이다.(관념체계, 이데올로기) 부분적으로 현실(피부색)을 반영하지만 허구적인 관념적 질서라고 할 수 있다. 인종범주 자체보다 이러한 문화적 범주를 사회적 인식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사회적 실재로서 작동하게 하는 배경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국이나 세계의 인종 또는 민족범주는 자본주의의 불평등한 발전과 이에 따른 국가 내의, 세계의 다양한 인구집단의 불평등 포섭 및 이동과 관련하여 생각해야한다.
미국의 인종민족정체성은 백인 지배층에 의해 다양한 특질의 흑인들을 흑인인종으로 인종범주화하고 지배질서에 알맞은 집단으로 편성한 결과-백인 역시 흑인의 형성의 쌍생아-이고, 히스패닉, 아시아인이라는 인종민족정체성도 같은 다양한 민족들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파괴하면서 백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새로운 지배/피지배 관계를 중심으로 새로운 인종정체성을 부과하는 과정이다.
미국에서 한인은 외부에서 나타나는 자본주의 생산과 흑인소비의 상품매개자로서 역할과 동시에 백인과 흑인의 연결고리로서의 이중적 중간자로서 상인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상품생산/공급자와 빈민소비자 사이 상인라는 계급적 측면과 백인과 흑인 사이 아시아인이라는 인종적 측면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이중적 중간자로 다양하고 중층적인 성격을 갖는다.
미국에서의 한흑갈등이 당사자들 간에 문제로 비쳐지고 두 집단의 문제를 찾는 것에 집중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백인지배층의 인종창출과 인종차별의 근본적 배후에서 발생되는 일이다. 즉 인종차별의 역사 그리고 인종적 서열화를 반영하는 갈등구조로 보아야한다. 이러한 인종적 서열화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매개로 작동하는 것이다. 역사적 과정을 통해 빈민화 되고 흑인화 된 집단이 이민과정을 통해 한인화 된 집단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다.
한흑갈등에 대해 미국 주류언론은 두 집단의 문제를 찾는 것에 집중하며 흑인과 한인의 분리만을 부각하고, 국가기구를 통해 한인상인을 보호하는 성향을 보이는데 이것은 ‘분리통치’의 기술로 볼 수 있다.
사회적 경험과 역사적 경험의 교육을 통하여 개개인에게 인종적 특이 세상을 해석하는 근본적인 특로 각인된다. 따라서 즉자적 계급갈등도 인종적 범주로 해석되고 해석틀이 정신구조에 고착된다. 일단 인종주의적 틀에 빠지게 되면 자동적으로 스스로의 인종적 주체성을 확인하고 강화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대안이나 저항도 인종주의적 방식으로 제기된다는 점을 주목해야한다.
◇ 생각해보기
1. 민족(종족)이 자본주의적 구조 속에서 불평등 생산 유지에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그러한 문제를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다면 거꾸로 그러한 문제적 고리가 약해지거나 사라진다면 민족(종족)에 대한 의미도 약해지거나 사라질 수 있는가?
2. 쉽지 않겠지만 인종적 갈등이 사라진다고 해도 자본주의적 계급 갈등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데 인종적 차별 해소가 계급 갈등 해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3. 민족(종족)의 긍정적 측면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민족(종족)의 긍정적 측면은 없는 것인가?
4. 세계화가 가속화 되어 국가가 약화되어도 민족의 소멸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 하고 있다. 대체되지 않는 한 그럴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그 의미나 기능은 계속해서 변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변화의 방향과 양상은 어떠할 것인가?
5. 기존에 부족이 종족으로 종족이 민족으로 통합되면서 내부의 경계가 없어지는 예를 생각해보면 세계화 가속이 지속되어 민족 의미가 대륙별 또는 계급별로 재편되거나 좀 더 큰 광역의 민족개념이 생성될 수도 있을까?
아니면 초국가적 자본에 기획된 초인류 인종(수퍼인종)에 의해 다시 재편될 것인가?
세계화의 가속은 경계를 강화하여 민족(종족)의 문제를 부단히 생산하기도 하겠지만, 더 많은 인종적 혼합이 이루어져 민족문제를 희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글로벌시대에 한 종족의 문화적 특성 즉 종족성의 다양한 모습은 일관성의 부족이나 발명에 불과하다는 냉소적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전략적 자원으로서 다양한 면모를 가진 경쟁과 타협의 맥락에서 이해해야하는 것이다.
<북아일랜드의 민족갈등과 일상에서의 타자성 경험>
스스로를 아일랜드인이라고 인식하는 카톨릭계의 소수민족과 스스로를 영국인이라고 인식하는 개신교계의 다수민족 사이에 수백년 역사적 뿌리를 지닌 민족갈등에에 대해 살펴본다. 갈등관계에 있는 민족집단을 자기들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보는 정도를 넘어서 그르고 나쁜, 벌받아 마땅한 사람들로서 타자화시키는 인지구조가 사람들의 일상적 경험에 기반을 두고 재생산된다는 점을 주목한다.
두 민족집단은 종파에 따라 분리된 학교생활을 통해서 서로 상대집단을 나쁘고, 자신이 속한 민족집단의 존립을 위협하는 민족적 타자로 인식하는 역사관을 학습한다.
학창시절 역사관은 양 집단이 각종 기념일들을 맞이하여 거행하는 퍼레이드를 비롯한 의례들에 참여하는 경험을 통해 반복적으로 표현되고 강화된다.
거주공간이 격리되어 있어 상이한 민족집단에 속하는 개인들은 직업선택에서 다른 집단을 분리되고, 상업서비스 시설 이용에서도, 스포츠를 포함한 여가 활동 영역에서도 상이한 민족집단의 성원들 사이에 개인적 친분관계를 형성할 가능성이 크게 제한되어 있다. 혼인을 통한 친족관계 유대가 형성될 가능성은 더욱더 제한되어 있다. 북아일랜드 사람들은 일상생활의 도처에서 자기와 다른 민족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의 타자성을 경험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중산층보다 하층계급에서 더욱 심각하다.
상대방 집단의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고정관념에 의거하여 인식하게 만드는 현재의 일상적 경험 구조가 변화되어야한다.
현재의 학교 제도를 비종파적 학교인 ‘통합학교’로 만들려는 운동이 여론의 호응을 얻고 있다. 통합학교는 교과과정에서 상대방 집단에 대해 관용적 태도를 지닐 수 있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전체 학교의 5%미만 평화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한 상태다.
<미국의 인종민족정체성과 일상정치: 뉴욕시 할렘을 중심으로>
미국의 인종범주는 미국을 주도하는 백인들이 세계의 다양한 집단들을 인종적으로 범주화시키면서 나타난 것이다. 결국 인종주의는 생물학적 범주라기보다 사회적 상황에 따라 새로이 형성되고 바뀌는 문화적 범주이다.(관념체계, 이데올로기) 부분적으로 현실(피부색)을 반영하지만 허구적인 관념적 질서라고 할 수 있다. 인종범주 자체보다 이러한 문화적 범주를 사회적 인식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사회적 실재로서 작동하게 하는 배경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국이나 세계의 인종 또는 민족범주는 자본주의의 불평등한 발전과 이에 따른 국가 내의, 세계의 다양한 인구집단의 불평등 포섭 및 이동과 관련하여 생각해야한다.
미국의 인종민족정체성은 백인 지배층에 의해 다양한 특질의 흑인들을 흑인인종으로 인종범주화하고 지배질서에 알맞은 집단으로 편성한 결과-백인 역시 흑인의 형성의 쌍생아-이고, 히스패닉, 아시아인이라는 인종민족정체성도 같은 다양한 민족들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파괴하면서 백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새로운 지배/피지배 관계를 중심으로 새로운 인종정체성을 부과하는 과정이다.
미국에서 한인은 외부에서 나타나는 자본주의 생산과 흑인소비의 상품매개자로서 역할과 동시에 백인과 흑인의 연결고리로서의 이중적 중간자로서 상인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상품생산/공급자와 빈민소비자 사이 상인라는 계급적 측면과 백인과 흑인 사이 아시아인이라는 인종적 측면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이중적 중간자로 다양하고 중층적인 성격을 갖는다.
미국에서의 한흑갈등이 당사자들 간에 문제로 비쳐지고 두 집단의 문제를 찾는 것에 집중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백인지배층의 인종창출과 인종차별의 근본적 배후에서 발생되는 일이다. 즉 인종차별의 역사 그리고 인종적 서열화를 반영하는 갈등구조로 보아야한다. 이러한 인종적 서열화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매개로 작동하는 것이다. 역사적 과정을 통해 빈민화 되고 흑인화 된 집단이 이민과정을 통해 한인화 된 집단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다.
한흑갈등에 대해 미국 주류언론은 두 집단의 문제를 찾는 것에 집중하며 흑인과 한인의 분리만을 부각하고, 국가기구를 통해 한인상인을 보호하는 성향을 보이는데 이것은 ‘분리통치’의 기술로 볼 수 있다.
사회적 경험과 역사적 경험의 교육을 통하여 개개인에게 인종적 특이 세상을 해석하는 근본적인 특로 각인된다. 따라서 즉자적 계급갈등도 인종적 범주로 해석되고 해석틀이 정신구조에 고착된다. 일단 인종주의적 틀에 빠지게 되면 자동적으로 스스로의 인종적 주체성을 확인하고 강화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대안이나 저항도 인종주의적 방식으로 제기된다는 점을 주목해야한다.
◇ 생각해보기
1. 민족(종족)이 자본주의적 구조 속에서 불평등 생산 유지에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그러한 문제를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다면 거꾸로 그러한 문제적 고리가 약해지거나 사라진다면 민족(종족)에 대한 의미도 약해지거나 사라질 수 있는가?
2. 쉽지 않겠지만 인종적 갈등이 사라진다고 해도 자본주의적 계급 갈등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데 인종적 차별 해소가 계급 갈등 해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3. 민족(종족)의 긍정적 측면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민족(종족)의 긍정적 측면은 없는 것인가?
4. 세계화가 가속화 되어 국가가 약화되어도 민족의 소멸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 하고 있다. 대체되지 않는 한 그럴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그 의미나 기능은 계속해서 변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변화의 방향과 양상은 어떠할 것인가?
5. 기존에 부족이 종족으로 종족이 민족으로 통합되면서 내부의 경계가 없어지는 예를 생각해보면 세계화 가속이 지속되어 민족 의미가 대륙별 또는 계급별로 재편되거나 좀 더 큰 광역의 민족개념이 생성될 수도 있을까?
아니면 초국가적 자본에 기획된 초인류 인종(수퍼인종)에 의해 다시 재편될 것인가?
세계화의 가속은 경계를 강화하여 민족(종족)의 문제를 부단히 생산하기도 하겠지만, 더 많은 인종적 혼합이 이루어져 민족문제를 희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