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색_운수좋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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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해 천천히 발을 질질 끌다시피하며 걸음을 옮긴다. 다 죽어가는 얼굴로 어디 피할 길이 없냐는 듯 두리번거리며 집을 향해 억지로 발을 끌던 이대리. 앞에서 걸어가는 체격 좋은 남자의 엉덩이에서 하얀 김이 뿜어져 나온다. 이대리는 얼른 달려가 남자의 팔을 끌며 알은 채를 한다.
“어이, 방귀쟁이. 너 지금 또 뀌었지?”
“어, 이대리. 어떻게 알았냐? 소리도 안났는데. 냄새났냐?”
“외투 밖으로 엉덩이께에 하얀 김이 나는 걸 보고 알았지. 한 잔 하자.”
# 호프집-잔비어스
호프집은 훈훈하고 뜨뜻했다. 이대리는 노가리 구운 냄새며 늘어놓은 안주탁자에 깔려 있는 과일안주와 통닭을 보자 점심도 잊고 차가운 빗속을 다닌 자신에게 무엇이든 먹여줘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통닭 두 마리와 생맥주 1000을 시키고 그 전에 먹을 노가리를 한 접시 주문했다. 강냉이 두 접시를 순식간에 퍼다 먹고도 모자랐던 이대리는 노가리가 나오자마자 머리부터 씹어 넘긴다. 1000한 잔이 금방 비워졌다. 또 두 잔을 시켜 한 잔씩 마셨다. 빈 속에 들이킨 맥주 탓에 창자가 찌릿하고 눈이 금방 뜨거워지며 배가 좀 불러오는 것도 같았다. 이대리는 통닭이 나오는데 시간이 좀 걸리자 두부김치를 시키며 또 1000 한 잔을 더 시킨다.
“또 먹어? 벌써 우리가 넉 잔을 마셨어. 지금까지 시킨 것만 해도 5만원이 넘어.”
“5만원이 뭐 대순가? 오늘 내가 계약을 무더기로 따냈어. 참 오늘 운수가 좋았거든.”
“그래 몇 건이나 했는데?”
“계약만 3건, 400짜리 두 건이랑 3000짜리 한 건, 도합 3400만원어치 계약을 했단 말이지.”
“와, 운수 좋은 날이었네. 그 운 좀 받아보자. 이번에 또 다시 대형마트 셔틀 운행이 재개되잖냐. 정치인 개새끼들, 표 잡을라고 별 짓을 다하느라 결국 남의 생계나 파탄 내더니 다시 이럴 거였어. 그 때 부모님이 밭 팔아준 돈으로 차 샀는데... 그 때 제값만 받고 팔았어도 빚은 안졌을텐데. 그래서 다시 한 번 해보려고.”
“곧 선거철인데 또 셔틀 운행 금지 안시킬까?”
“정치인들이 새대가리냐. 교통난 때문에 셔틀 운행 재개한 게 이번이 두 번짼데. 이번엔 휴일 특근 제한한댄다. 영세 공업하는 놈들이 또 한 3000명쯤 뒤지겠지.”
“셔틀버스 살 돈은 있는 거야?”
“트럭 팔아야지. 어차피 빚 내서 산거라 팔아봤자 얼마 안돼지만. 학원 버스 하던 분이 학원이 망해서 내놓았는데 그걸로 보증금 주고 월급 담보 잡혀서 사야지.”
“좋아, 좋아. 내가 악수 한 번 해주지. 내 기운 받고 좋은 다시 시작해봐라. 어이, 여기 1000 한 잔 더 줘요.”
“자네, 취했어. 이제 그만 해. 나도 이제 술 좀 줄여야겠어. 요즘 속이 쓰리다 못해 아프기까지 하다고.”
맥주집 알바생은 히히 웃고 방귀쟁이를 보며 문의하는 듯이 눈짓을 했다. 이대리는 이 눈치를 알아보고 화를 버럭내며,
“야, 왜 더 안 가져와. 내가 돈이 없을 줄 알아?”
하고 역정을 내며 오만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알바생 앞에 펄쩍 집어던졌다. 그 탓에 동전이 잘그랑 하며 떨어진다.
“이대리, 돈 떨어졌어. 왜 돈을 막 끼얹어.”
방귀쟁이는 이런 말을 하며 돈을 줍는다. 이대리는 취한 중에도 돈을 찾느라 눈을 부릅뜨고 가게 바닥을 내려보다가 갑자기 제 하는 짓이 역겹다는 듯이 고개를 소스라치게 들고 더욱 성을 내며
“이 원수엣 돈! 이 육시를 할 돈!”
하며 팔매질을 친다. 벽에 맞아 떨어진 돈은 맥주잔에 튕겨나가면서 쨍하고 울었다.
1000 두 잔이 또 쉴 틈 없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우스운 얘기 하나 할까? 내가 오늘 영업을 하느라 신사동을 나가지 않았겠어. 거기서 또 가망고객을 만들어보려고 택시승차장에 갔다가 여대생인지 텐프로인지 알 수 없는 아가씨를 만났거든. 그래서 전화번호를 따려니까 ‘왜 남을 이렇게 귀찮게 굴어!’ 이러는 거 있지. 왜 남을 이렇게 귀찮게 굴어!”
이대리가 여자흉내를 내며 소리를 지르니 가게 안의 다른 손님들도 같이 웃는다. 그 웃음소리가 잦아들기도 전에 이대리는 훌쩍훌쩍 울기를 시작한다.
“금방 웃던 사람이 우는 건 또 뭐야?”“마누라가 죽었어.”
“뭐, 마누라가 죽다니, 언제?”
“언제겠어. 오늘이지.”
“야, 거짓말 마.”
“거짓말은 왜. 진짜로 죽었어. 정말로... 마누라 시체를 집에 뻐들쳐놓고 내가 술을 먹다니, 내가 죽일 놈이야. 죽일 놈이야. 엉엉”
방귀쟁이는 흥이 조금 깨진 얼굴로
“진짜인지 농담인지 알 수가 없네. 그러면 집으로 가. 가.” 하고 팔을 잡아당긴다. 이대리는 손을 뿌리치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에 웃음을 담는다.
“죽기는 누가 죽어. 죽기는 왜 죽어. 생떼같이 살아만 있다. 밥을 죽이고 있지. 인제 나한테 속았다.”
하고 어린애 모양으로 손뼉을 치며 웃는다. 방귀쟁이는 그런 이대리에게 얼른 돌아가라고 권하지만 이대리는 기어이 1000 한 잔을 더 마시고야 일어선다.
# 집
약국을 나선 이대리의 손에는 활명수 한 병이 들려있다.
“내 집 마련이 뭐 대수라고... 대체 이게 얼마나 한다고 이걸 못사먹는단 말야.”
약국의 형광불빛이 유리문을 넘어 맞은편 담벼락을 비추고 있다. 담벼락에는 ‘뉴타운 망할 타운 너도나도 쪽박신세’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사진 위에는 붉은 스프레이가 칠해져 있다. 이대리를 따라 카메라가 비추는 동네는 수년 동안 손보지 않은 낡은 대문의 단독주택들이 좁고 굽은 골목을 따라 즐비하다. 전봇대 위로 전선과 각종 통신용 케이블이 뒤엉켜 보안등을 가리고 있다. 이대리는 똑같은 대문의 집을 여러 채나 지나쳐서야 어느 문 하나를 발로 뻥 차며 들어선다. 집에선 이상스레 고요한 분위기 속에 아기의 못먹어서 뱃속부터 올라온 빽빽 우는 소리만 들린다.
“하늘같은 서방님이 왔는데 어여 일어나봐. 그렇게 원하던 생명보험 하나 들어줄게.”
아내를 발로 찬다. 반응이 없자 머리를 안고 흔든다. 우려했던 상황이 현실로 인식되자 남자는 아내의 머리를 껴안고 오열하기 시작한다.
“이 계약서를 왜 보지를 못하니. 왜 보지를 못하니... 남들은 상속세 내려고 드는 생명보험을 넌 장례치를 돈 마련하려고 들겠다고 했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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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11.20
  • 저작시기2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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