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는 명칭으로 자신들을 부를 수 있었다(로마 1,7; 16,15; 1고린 1,2; 2고린 1,1; 13,12; 필립 1,1).
혈연적으로 맺어진 가족 안에서만 헌신적 삶의 관계가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상관없는 남이나 원수를 향해서도 청정한 몰아적 사랑이 건네지고 온갖 차별이 철폐된 평등한 삶이 공동체 차원에서 실현되는 사실에 입각해서 초대 신자들은 ‘성도’라는 자의식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이다.
3. 오늘의 교회공동체를 위한 교훈
교회공동체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자신있게 주장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교파로 사분오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은 교단역시 집단 이기주의에 의한 지리멸렬상을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인구의 4분의 1을 넘어서는 1000만 이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부정부패가 거의 극도에 이르다시피한 현실에 교회공동체와 신자들이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공동체와 개별 신자들은 분열되고 부도덕한 민족사회의 현실에 직면하여 형식적으로가 아니라 진정으로 ‘내탓이요’를 고백하면서 누구보다 먼저 철저히 회개하고 복음의 진리를 생활코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부정부패를 단호히 배격하고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이기주의와 권위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범교회적 차원에서 진지하게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
성도적(聖徒的)이고 봉사적(奉仕的)인 자세를 실천으로 신빙성 있게 제시할 때에만 교회공동체는 하느님 나라로서의 정체성을 만방에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혈연적으로 맺어진 가족 안에서만 헌신적 삶의 관계가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상관없는 남이나 원수를 향해서도 청정한 몰아적 사랑이 건네지고 온갖 차별이 철폐된 평등한 삶이 공동체 차원에서 실현되는 사실에 입각해서 초대 신자들은 ‘성도’라는 자의식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이다.
3. 오늘의 교회공동체를 위한 교훈
교회공동체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자신있게 주장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교파로 사분오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은 교단역시 집단 이기주의에 의한 지리멸렬상을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인구의 4분의 1을 넘어서는 1000만 이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부정부패가 거의 극도에 이르다시피한 현실에 교회공동체와 신자들이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공동체와 개별 신자들은 분열되고 부도덕한 민족사회의 현실에 직면하여 형식적으로가 아니라 진정으로 ‘내탓이요’를 고백하면서 누구보다 먼저 철저히 회개하고 복음의 진리를 생활코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부정부패를 단호히 배격하고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이기주의와 권위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범교회적 차원에서 진지하게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
성도적(聖徒的)이고 봉사적(奉仕的)인 자세를 실천으로 신빙성 있게 제시할 때에만 교회공동체는 하느님 나라로서의 정체성을 만방에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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