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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미 군정의 자유주의자들과 노동문제 전문가들은 민주적 또는 자주적 노동조합이라는 개념을 신뢰하였습니다. 그들은 한국의 노조운동으로부터 정치세력을 분리하여 노동조합을 노동자의 진정한 대표기관으로 만들려 했습니다만, 전평이 모험적인 극좌노선으로 불법적인 투쟁을 감행함에 따라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지향 교수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립니다. 만일 전평이 정치 우선주의를 떠나 온건한 좌파 노동조직으로서 경제투쟁을 추구했더라면 미 군정으로서는 그를 탄압할 적절한 구실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미 군정이 추구한 여운형과 김규식을 지도자로 하는 좌우합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해설을 달 수 있습니다. 이윽고 1947년 미국에서 트루만선언이 나오는 등, 냉전이 사실상의 열전으로 달구어지면서 모든 낭만적 시도의 가능성은 봉쇄되고 맙니다. 미국은 미운 오리와도 같은 이승만을 협력자로 선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미국은 끝까지 망설이고 주저하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처음부터 단호하게 김일성을 자신의 대리인으로 선정하였던 소련의 스탈린과는 전혀 딴판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의 깃발이 요란스럽게 펄럭이는 가운데 다른 이념이나 정치세력이 존속할 수 있는 가능성은 처음부터 닫혀 있었습니다. 김일성종합대학이 세워지는 것이 언제입니까. 1946년 7월이지요. 그런데 남한은 어떠하였습니까. 그런 절대 카리스마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는 크게 말해 미국의 이해관계를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조정과 타협의 여지는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그 자체의 속성으로 인해 끝까지 봉쇄되지 않았습니다.
요컨대 해방 당시 한반도의 주민집단에게는 민족이니 계급이니 하는 외래 기원의 정치 원리를 극복하면서 스스로를 잘 단합된 질서체로 통합할만한 문명능력은 아직 성립해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주체적 조건이 미비된 가운데 한반도의 남과 북에서는 곧바로 냉전에 돌입하게 되는 두 강대국이 점령군으로 진주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협력자들에 의해 상이한 원리의 두 나라가 건립되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만, 민족의 분단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를 그 비극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께서는 앞서 소개한 교과서의 이야기가 왜 엉터리인지를 납득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엉터리 이야기는 하루 빨리 교과서에서 추방되어야 합니다.
이영훈 (서울대 교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공동편집자)
미 군정이 추구한 여운형과 김규식을 지도자로 하는 좌우합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해설을 달 수 있습니다. 이윽고 1947년 미국에서 트루만선언이 나오는 등, 냉전이 사실상의 열전으로 달구어지면서 모든 낭만적 시도의 가능성은 봉쇄되고 맙니다. 미국은 미운 오리와도 같은 이승만을 협력자로 선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미국은 끝까지 망설이고 주저하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처음부터 단호하게 김일성을 자신의 대리인으로 선정하였던 소련의 스탈린과는 전혀 딴판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의 깃발이 요란스럽게 펄럭이는 가운데 다른 이념이나 정치세력이 존속할 수 있는 가능성은 처음부터 닫혀 있었습니다. 김일성종합대학이 세워지는 것이 언제입니까. 1946년 7월이지요. 그런데 남한은 어떠하였습니까. 그런 절대 카리스마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는 크게 말해 미국의 이해관계를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조정과 타협의 여지는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그 자체의 속성으로 인해 끝까지 봉쇄되지 않았습니다.
요컨대 해방 당시 한반도의 주민집단에게는 민족이니 계급이니 하는 외래 기원의 정치 원리를 극복하면서 스스로를 잘 단합된 질서체로 통합할만한 문명능력은 아직 성립해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주체적 조건이 미비된 가운데 한반도의 남과 북에서는 곧바로 냉전에 돌입하게 되는 두 강대국이 점령군으로 진주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협력자들에 의해 상이한 원리의 두 나라가 건립되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만, 민족의 분단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를 그 비극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께서는 앞서 소개한 교과서의 이야기가 왜 엉터리인지를 납득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엉터리 이야기는 하루 빨리 교과서에서 추방되어야 합니다.
이영훈 (서울대 교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공동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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