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개요
1) 감독
2) 원작
Ⅱ. 육하원칙과 상징
1) WER
2) WANN
3) WO
4) WAS
5) WIE
6) WARUM
7) 상징
Ⅳ. 결론
1) 감독
2) 원작
Ⅱ. 육하원칙과 상징
1) WER
2) WANN
3) WO
4) WAS
5) WIE
6) WARUM
7) 상징
Ⅳ. 결론
본문내용
뻔할 뿐더러, 정보들을 캐내기 위해 모진 고문을 받게 될 것이다.. 어쩌면 히틀러가 측근들에게 나누어주는 독약은 신체의 손상이나 모진 고문없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세상을 뜰 수 있는 선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해보았다.
- 충성심을 표현하는 매개체 : 독약자살을 선택한 자들이 히틀러, 그리고 자기 자신, 또 국가라는 이름의 나치즘에 대한 충성심을 표현하는 매개체라고 해석할 수 있다.
- 암묵적으로 강요된 죽음 : 히틀러의 측근들이 살아남아 생포당하게 되면 히틀러의 많은 정보들이 적에게로 넘어갈 것이 뻔하다. 히틀러 자신은 죽었지만, 그는 자신의 패배란 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이기에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의 자신의 패배 또한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로 자신의 정보가 적에게 넘어간다는 것은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정보를 소유하고 있는 측근들이 생포 전에 죽음을 택하게 함으로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5. 히틀러의 죽음
- 히틀러는 패전에 임박해서도 결코 협상이나 항복을 하지 않고 스스로 '몰락'을 선택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히틀러는 패배를 하는 일이 있더라도 결코 항복은 하지 않을 것임을 그 이전부터 자주 언급했다고 하는데, 히틀러는 적군이 독일 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군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제국 내의 교통 및 통신시설, 산업 및 상하수도 시설, 생필품등을 모두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릴 정도로 자국민들의 안위나 생존보다는 자신의 이념을 위한 전쟁에 더욱 큰 비중을 둔다. 어쩌면 그의 죽음이라는 것은 마지막 죽음마저도 누군가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자신의 죽음까지도 자기 자신이 선택을 한 입장이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6. 융에와 소년병
- 전쟁터에서 전쟁을 직접 몸으로 체험한 소년병과 벙커안에서 전쟁을 겪은 융에가 서로 만나 힘을 합쳐 베를린을 탈출하게 된다. 시종일관 이어지던 어두운 영화의 분위기는 둘의 만남으로 인해 밝게 전환된다. 도랑에 처박혀있던 자전거를 꺼내와 한적한 길을 달리는 장면은 '몰락'해가던 독일의 재건의 희망에 빗대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융에와 소년병의 만남은 겉으로 보기에는 전후세대들의 새로운 출발만으로 해석이 되겠지만 이 역시 오묘한 속임수를 사용하고 있다. '희망'을 품고 새로운 독일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이, 새로운 독일의 재건의 주체가 왜 하필이면 소년병과 융에인가 라는 것이다. 소년병과 융에는 히틀러의 사람이다. 소년병은 히틀러에게 광신적인 충성을 바쳤었고, 융에는 히틀러의 최측근으로 그를 매우 인간적이고 친근하게 느낀다. 어쩌면 이러한 장치속에 담긴 속뜻은 독일의 재건이 네오나치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 아닐까.
Ⅳ. 결론
'몰락'을 감상하면서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이 영화는 겉과 속이 다르다.' 이다. 겉으로는 히틀러의 인간적임, 비록 피해자의 입장 하지만 전쟁의 비극, 또 전범국의 입장에서 반성과 뉘우침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상 속에 담긴 의도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 담긴 융에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젊음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 말은 자신이 아무리 전쟁에 관련이 없었고,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고 해도 그 전쟁은 독일인의 만행이었으니 반성을 해야만 한다는 말이다. 영화의 앞, 뒤에 융에의 진심어린 눈물을 배치함으로써 영화는 '반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서의 사람들은 과연 전쟁의 비극성과 독일의 반성을 느끼게 됐을까, 아니면 그동안 다루어지지 않았던 '인간' 히틀러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하였을까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히틀러의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측면을 그린다는 것은 금기에 속했다. 하지만 그를 깨뜨렸다는 것은 앞으로 나치시대에 대한 성찰을 약화시키는 극단적인 현상을 불러 일으킬 수 있기에 위험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몰락'촬영 당시 신나치인물 수십명이 몰래 엑스트라 아르바이트를 지원해 영화에 등장하였다고 한다. 그 중 한명은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히틀러와 악수할 때였다'며 자신의 엑스트라 아르바이트 경험을 자랑했다. 단지 해프닝에서 그칠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역사와 현재, 그리고 영화의 환상과 실제의 실체의 매우 중요한 연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영화는 비참한 최후만을 보여줄 뿐, 나치 독일이 최후에 이르기까지의 그들의 행보를 생략하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비참한 최후에 대한 동정심만이 강조된 나머지, 나치 독일을 옹호하는 정서를 관객들에게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몰락'은 '전쟁영화'이다. 그렇다면 '몰락'이 다루고 있는 '전쟁'에 대해서도 이야기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기상 그들의 전쟁은 '나치독일'과 '연합군'의 전쟁이어야 하지만, 영화는 철저하게 독일인의 시각에서 그려지며, 나치와 독일국민을 따로 떼어놓고 본다. 그래서 독일인이 아닌 나치당을 가해자로, 평범한 독일국민을 피해자로 그려놓았다. 독일인의 만행인 유태인 학살같은 이야기들은 전혀 다루지 않고 독일 내부에서만, 독일인을 해치는 나치당 또는 그들과 너무나도 다른 올바른 독일인들이 묘사되며 전쟁을 일으킨 사람과 피해자를 독일인 내부에서만 가르고 있다. 또한 히틀러 개인 차원, 그리고 히틀러 주변 인물들의 시선에서 그려진 히틀러만이 묘사되어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언급만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정치의 미학화'에 대해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신 적이 있는데, 이 영화 역시 정치의 미학에 속하는 영화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화라는 것은 대중의 감정을 자극한다. '몰락'이라는 영화가 신나치 등장에 청신호가 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홀로코스트를 빼놓고는 히틀러를 이야기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몰락'은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영화가 다루는 '전쟁'의 희생자도 유대인이 아닌 독일인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나치에 대한 반성을 가져오기 보다는 나치를 옹호하는 입장을 부르거나, 혹은 독일인들이 자신을 가해자가 아닌 희생자로 내세우는 경향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 충성심을 표현하는 매개체 : 독약자살을 선택한 자들이 히틀러, 그리고 자기 자신, 또 국가라는 이름의 나치즘에 대한 충성심을 표현하는 매개체라고 해석할 수 있다.
- 암묵적으로 강요된 죽음 : 히틀러의 측근들이 살아남아 생포당하게 되면 히틀러의 많은 정보들이 적에게로 넘어갈 것이 뻔하다. 히틀러 자신은 죽었지만, 그는 자신의 패배란 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이기에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의 자신의 패배 또한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로 자신의 정보가 적에게 넘어간다는 것은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정보를 소유하고 있는 측근들이 생포 전에 죽음을 택하게 함으로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5. 히틀러의 죽음
- 히틀러는 패전에 임박해서도 결코 협상이나 항복을 하지 않고 스스로 '몰락'을 선택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히틀러는 패배를 하는 일이 있더라도 결코 항복은 하지 않을 것임을 그 이전부터 자주 언급했다고 하는데, 히틀러는 적군이 독일 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군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제국 내의 교통 및 통신시설, 산업 및 상하수도 시설, 생필품등을 모두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릴 정도로 자국민들의 안위나 생존보다는 자신의 이념을 위한 전쟁에 더욱 큰 비중을 둔다. 어쩌면 그의 죽음이라는 것은 마지막 죽음마저도 누군가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자신의 죽음까지도 자기 자신이 선택을 한 입장이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6. 융에와 소년병
- 전쟁터에서 전쟁을 직접 몸으로 체험한 소년병과 벙커안에서 전쟁을 겪은 융에가 서로 만나 힘을 합쳐 베를린을 탈출하게 된다. 시종일관 이어지던 어두운 영화의 분위기는 둘의 만남으로 인해 밝게 전환된다. 도랑에 처박혀있던 자전거를 꺼내와 한적한 길을 달리는 장면은 '몰락'해가던 독일의 재건의 희망에 빗대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융에와 소년병의 만남은 겉으로 보기에는 전후세대들의 새로운 출발만으로 해석이 되겠지만 이 역시 오묘한 속임수를 사용하고 있다. '희망'을 품고 새로운 독일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이, 새로운 독일의 재건의 주체가 왜 하필이면 소년병과 융에인가 라는 것이다. 소년병과 융에는 히틀러의 사람이다. 소년병은 히틀러에게 광신적인 충성을 바쳤었고, 융에는 히틀러의 최측근으로 그를 매우 인간적이고 친근하게 느낀다. 어쩌면 이러한 장치속에 담긴 속뜻은 독일의 재건이 네오나치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 아닐까.
Ⅳ. 결론
'몰락'을 감상하면서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이 영화는 겉과 속이 다르다.' 이다. 겉으로는 히틀러의 인간적임, 비록 피해자의 입장 하지만 전쟁의 비극, 또 전범국의 입장에서 반성과 뉘우침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상 속에 담긴 의도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 담긴 융에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젊음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 말은 자신이 아무리 전쟁에 관련이 없었고,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고 해도 그 전쟁은 독일인의 만행이었으니 반성을 해야만 한다는 말이다. 영화의 앞, 뒤에 융에의 진심어린 눈물을 배치함으로써 영화는 '반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서의 사람들은 과연 전쟁의 비극성과 독일의 반성을 느끼게 됐을까, 아니면 그동안 다루어지지 않았던 '인간' 히틀러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하였을까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히틀러의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측면을 그린다는 것은 금기에 속했다. 하지만 그를 깨뜨렸다는 것은 앞으로 나치시대에 대한 성찰을 약화시키는 극단적인 현상을 불러 일으킬 수 있기에 위험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몰락'촬영 당시 신나치인물 수십명이 몰래 엑스트라 아르바이트를 지원해 영화에 등장하였다고 한다. 그 중 한명은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히틀러와 악수할 때였다'며 자신의 엑스트라 아르바이트 경험을 자랑했다. 단지 해프닝에서 그칠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역사와 현재, 그리고 영화의 환상과 실제의 실체의 매우 중요한 연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영화는 비참한 최후만을 보여줄 뿐, 나치 독일이 최후에 이르기까지의 그들의 행보를 생략하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비참한 최후에 대한 동정심만이 강조된 나머지, 나치 독일을 옹호하는 정서를 관객들에게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몰락'은 '전쟁영화'이다. 그렇다면 '몰락'이 다루고 있는 '전쟁'에 대해서도 이야기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기상 그들의 전쟁은 '나치독일'과 '연합군'의 전쟁이어야 하지만, 영화는 철저하게 독일인의 시각에서 그려지며, 나치와 독일국민을 따로 떼어놓고 본다. 그래서 독일인이 아닌 나치당을 가해자로, 평범한 독일국민을 피해자로 그려놓았다. 독일인의 만행인 유태인 학살같은 이야기들은 전혀 다루지 않고 독일 내부에서만, 독일인을 해치는 나치당 또는 그들과 너무나도 다른 올바른 독일인들이 묘사되며 전쟁을 일으킨 사람과 피해자를 독일인 내부에서만 가르고 있다. 또한 히틀러 개인 차원, 그리고 히틀러 주변 인물들의 시선에서 그려진 히틀러만이 묘사되어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언급만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정치의 미학화'에 대해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신 적이 있는데, 이 영화 역시 정치의 미학에 속하는 영화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화라는 것은 대중의 감정을 자극한다. '몰락'이라는 영화가 신나치 등장에 청신호가 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홀로코스트를 빼놓고는 히틀러를 이야기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몰락'은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영화가 다루는 '전쟁'의 희생자도 유대인이 아닌 독일인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나치에 대한 반성을 가져오기 보다는 나치를 옹호하는 입장을 부르거나, 혹은 독일인들이 자신을 가해자가 아닌 희생자로 내세우는 경향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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