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터 노예가 된다. 따라서 노에는 수단인 동시에 올바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태어날 때부터 노예가 된 사람과 정복 전쟁에 의해 노예가 된 사람을 확연히 구분했다. 그는 전자를 노예로 인정했을 뿐 후자는 노예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을 힘으로 제압했다고 해서 그 양자간의 우열이 본성적으로 결정되었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민권의 불평등성을 믿었다. 그에 의하면 시민권이 부여되는 자격은 지배할 수도 있고 받을 수도 있는 인간의 능력을 의미했다. 즉 시민은 정의로운 행정에 참여하는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갖는다. 그러므로 시민은 정치 집회와 법정에 출석할 수 있을 정도로 적합한 기질과 인품뿐만 아니라 시간적인 여유도 가져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이유에서 노동자도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시간도 없고 적합한 정신이 계발되지도 않았을뿐더러 그들이 정책 과정에 참여한다고 해서 이익을 얻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5.43 선한 정부와 혁명
아리스토텔레스가 누차 강조한 점은 국가란 인간의 도덕적이며 지적인 완성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국가는 가족들과 마을들을 완전하고 자족적인 생활로 일체화시키며 따라서 우리는 국가를 통해 행복하며 명예로운 삶을 추구할 수 있다. 정의로운 정부 형태와 사악한 정부 형태를 구분한다면 어떻게 될까. 전자의 경우에는 선한 통치자들이 만민의 선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반면에 후자의 경우에는 사악한 통치자들이 자신들의 사적인 영리만을 추구하는 것이다. 어떤 형태를 취하든지 간에 정부는 정의와 적절한 평등의 개념에 기초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민주제가 기초하는 가정은 어떤 면에서 평등한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도 평등해야 한다는 가정이다. 즉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평등해야 한다.” 는 가정에 기초한다. 반면에 과두제는 한 가지 측면에서 불평등한 모든 사람은 모든 면에서도 불평등하다고 가정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민주론자들이나 사람은 모든 면에서도 불평등하다고 가정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민주론자들이나 과두론자들이 수적으로 열세를 차지하게 되면 그 시대의 통치 철학도 그들의 이상과 불일치하게 되며 따라서 혁명을 자극하게 된다. 여기서 바로 혁명의 샘이 솟구치기 시작한다. “이 혁명적 감정의 보편적이며 주된 원인은 평등에 대한 갈망이다. 즉 그때 사람들은 그들 이상이 다른 사람들과 평등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는 오만과 탐욕이나 공포와 소심 같은 다른 원인들도 간과하지 않았다. 이러한 혁명의 원인들을 제시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각각의 정부 형태는 혁명을 적절히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예를 들면 왕은 무자비한 행위를 피해야 하며 귀족제는 부유한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소수의 부유한 사람들에 의한 통치를 피해야 할 것이다. 결국 만일 국가가 백성으로 하여금 훌륭한 삶이라고 여길 만한 행복을 성취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활 조건을 만들어 주지 못한다면 그들은 항상 국가를 비판할 수 있다.
5.5 예술 철학
플라톤에 있어서 예술이란 본질적으로 모방 즉 자연에 대한 모방의 문제였고 아리스토텔레스도 동일하게 이러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플라톤은 몇 가지 형태의 예술에 대해 그토록 경멸적이었다. 그 이유는 예술 작품이란 진리로부터 적어도 세 단계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참된 실재는 이데아인데 그 모방을 초상화로 그린다는 것은 모방의 모방이 되어 진리로부터 세단계나 떨어져 있기 때문인 것이다. 결국 플라톤의 예술관은 예술의 인식적 측면에 집중돼 있었고 따라서 진리에 몇 단계 떨어진 예술은 지식을 왜곡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편적인 형상이 구체적인 사물들 속에만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예술가는 보편적인 것들을 직접 취급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연유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의 인식적 가치를 주장한 것이다. 그에 의하면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기 때문에 자연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 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시와 역사를 비교하면서 시의 인식론적 측면을 강조 하였다. 즉 특수한 인간과 사건을 취급하는 역사와는 달리 시는 인간의 근본을 다루며 보편적이고 경험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시는 역사보다 더욱 철학적이며 보다 높은 수준에 있다. 왜냐하면 시는 보편적인 것을 표현하려 하며 역사는 개별적인 것을 표현하려 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의 보편성이 의미하는 것은 어떤 형태의 사람이 어떤 경우에 개연성이나 필연성의 법칙에 따라 말하고 행위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시가 지향하는 것은 이러한 보편성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 따르면 예술은 인식론적 가치 이외에도 매우 중요한 심리학적 의미를 갖는다. 우선 예술은 인간 본성의 심층 구조를 반영하기 때문이며 바로 이러한 점이 인간과 동물을 구별해 주며 모방에 대한 본능을 심어 준다. 사실상 유년 시절부터 인간의 학습은 모방을 통해 이루어진다. 인간은 그것을 찬찬히 뜯어봄으로써 학습할 수 있고 “아, 그것은 바로 저것이구나.”라고 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사시와 비극과 희극에 대해 자세히 분석하고 있으며 그 각각의 구성 요소와 기능을 제시하고 있지만 후세에 가장 영향력을 미친 것은 그의 비극에 대한 언급이다. 그는 특히 비극의 감정적인 측면을 강조했고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개념에 집중했다. 이 개념은 비극을 통하여 우리가 우리의 감정을 제공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그것은 우리의 심층적 감정들을 대행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발산 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의미하는가? 이 두 경우 모두에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는 것 같다. 즉 심층적이고 거대한 고통에 대한 예술가들의 모방은 청중의 가슴에 공포나 연민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그러한 감정을 추방하고 더 나아가서는 관객의 영혼을 정화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한다. “비극은 어떤 행동의 모방이다, 공포나 연민을 모방하여 이러한 감정들을 적절히 추방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민권의 불평등성을 믿었다. 그에 의하면 시민권이 부여되는 자격은 지배할 수도 있고 받을 수도 있는 인간의 능력을 의미했다. 즉 시민은 정의로운 행정에 참여하는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갖는다. 그러므로 시민은 정치 집회와 법정에 출석할 수 있을 정도로 적합한 기질과 인품뿐만 아니라 시간적인 여유도 가져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이유에서 노동자도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시간도 없고 적합한 정신이 계발되지도 않았을뿐더러 그들이 정책 과정에 참여한다고 해서 이익을 얻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5.43 선한 정부와 혁명
아리스토텔레스가 누차 강조한 점은 국가란 인간의 도덕적이며 지적인 완성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국가는 가족들과 마을들을 완전하고 자족적인 생활로 일체화시키며 따라서 우리는 국가를 통해 행복하며 명예로운 삶을 추구할 수 있다. 정의로운 정부 형태와 사악한 정부 형태를 구분한다면 어떻게 될까. 전자의 경우에는 선한 통치자들이 만민의 선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반면에 후자의 경우에는 사악한 통치자들이 자신들의 사적인 영리만을 추구하는 것이다. 어떤 형태를 취하든지 간에 정부는 정의와 적절한 평등의 개념에 기초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민주제가 기초하는 가정은 어떤 면에서 평등한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도 평등해야 한다는 가정이다. 즉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평등해야 한다.” 는 가정에 기초한다. 반면에 과두제는 한 가지 측면에서 불평등한 모든 사람은 모든 면에서도 불평등하다고 가정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민주론자들이나 사람은 모든 면에서도 불평등하다고 가정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민주론자들이나 과두론자들이 수적으로 열세를 차지하게 되면 그 시대의 통치 철학도 그들의 이상과 불일치하게 되며 따라서 혁명을 자극하게 된다. 여기서 바로 혁명의 샘이 솟구치기 시작한다. “이 혁명적 감정의 보편적이며 주된 원인은 평등에 대한 갈망이다. 즉 그때 사람들은 그들 이상이 다른 사람들과 평등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는 오만과 탐욕이나 공포와 소심 같은 다른 원인들도 간과하지 않았다. 이러한 혁명의 원인들을 제시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각각의 정부 형태는 혁명을 적절히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예를 들면 왕은 무자비한 행위를 피해야 하며 귀족제는 부유한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소수의 부유한 사람들에 의한 통치를 피해야 할 것이다. 결국 만일 국가가 백성으로 하여금 훌륭한 삶이라고 여길 만한 행복을 성취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활 조건을 만들어 주지 못한다면 그들은 항상 국가를 비판할 수 있다.
5.5 예술 철학
플라톤에 있어서 예술이란 본질적으로 모방 즉 자연에 대한 모방의 문제였고 아리스토텔레스도 동일하게 이러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플라톤은 몇 가지 형태의 예술에 대해 그토록 경멸적이었다. 그 이유는 예술 작품이란 진리로부터 적어도 세 단계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참된 실재는 이데아인데 그 모방을 초상화로 그린다는 것은 모방의 모방이 되어 진리로부터 세단계나 떨어져 있기 때문인 것이다. 결국 플라톤의 예술관은 예술의 인식적 측면에 집중돼 있었고 따라서 진리에 몇 단계 떨어진 예술은 지식을 왜곡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편적인 형상이 구체적인 사물들 속에만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예술가는 보편적인 것들을 직접 취급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연유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의 인식적 가치를 주장한 것이다. 그에 의하면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기 때문에 자연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 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시와 역사를 비교하면서 시의 인식론적 측면을 강조 하였다. 즉 특수한 인간과 사건을 취급하는 역사와는 달리 시는 인간의 근본을 다루며 보편적이고 경험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시는 역사보다 더욱 철학적이며 보다 높은 수준에 있다. 왜냐하면 시는 보편적인 것을 표현하려 하며 역사는 개별적인 것을 표현하려 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의 보편성이 의미하는 것은 어떤 형태의 사람이 어떤 경우에 개연성이나 필연성의 법칙에 따라 말하고 행위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시가 지향하는 것은 이러한 보편성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 따르면 예술은 인식론적 가치 이외에도 매우 중요한 심리학적 의미를 갖는다. 우선 예술은 인간 본성의 심층 구조를 반영하기 때문이며 바로 이러한 점이 인간과 동물을 구별해 주며 모방에 대한 본능을 심어 준다. 사실상 유년 시절부터 인간의 학습은 모방을 통해 이루어진다. 인간은 그것을 찬찬히 뜯어봄으로써 학습할 수 있고 “아, 그것은 바로 저것이구나.”라고 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사시와 비극과 희극에 대해 자세히 분석하고 있으며 그 각각의 구성 요소와 기능을 제시하고 있지만 후세에 가장 영향력을 미친 것은 그의 비극에 대한 언급이다. 그는 특히 비극의 감정적인 측면을 강조했고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개념에 집중했다. 이 개념은 비극을 통하여 우리가 우리의 감정을 제공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그것은 우리의 심층적 감정들을 대행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발산 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의미하는가? 이 두 경우 모두에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는 것 같다. 즉 심층적이고 거대한 고통에 대한 예술가들의 모방은 청중의 가슴에 공포나 연민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그러한 감정을 추방하고 더 나아가서는 관객의 영혼을 정화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한다. “비극은 어떤 행동의 모방이다, 공포나 연민을 모방하여 이러한 감정들을 적절히 추방할 수 있도록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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