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와예술 B형] 미술전시회를 관람한 후 관람기를 쓰시오. 관람기에는 전시의 개요(A4용지 1장 반 이하)와 전시 작품에 대한 감상을 포함시키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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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취미와예술 B형] 미술전시회를 관람한 후 관람기를 쓰시오. 관람기에는 전시의 개요(A4용지 1장 반 이하)와 전시 작품에 대한 감상을 포함시키시오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전시의 개요

2. 폴 고갱에 대해(Paul Gauguin. 1848∼1903)

3. 타히티 시대의 작품 경향

4. 폴 고갱의 미술전시 작품에 대한 감상

5. 시사점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둔 신이 여신인 히나였다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타히티 신화주제의 그림과 조각에서 히나의 위치가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고, 또한 히나 혼자만을 경배의 대상인 우상으로 표현하고 있는 조각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타로아와 함께 혹은 테파투와 함께 묘사되던 히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강렬한 이미지의 형상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와 같이 히나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이는 이유 중의 하나는 폴리네시아인들의 히나에 대한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히나는 폴리네시아의 신들 중에서 유일한 여신으로 모든 신의 어머니로 섬겨진다. 또한 폴리네시아에는 신과 사람과의 본질적인 차이란 없으므로 히나는 인류의 조상 어머니로 믿어져 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신화의 인물은 고갱에게 익숙한 서양식 사고체계로는 타히티식 마리아로 여겨졌을 것이고 또한 그의 주관심사였던 장대한 여성 이미지에 부합하는 것이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즉 둔중하고 조각적 인체를 가지며 화면을 압도하던 장대한 여인의 모습이 이제는 히나라는 이름을 달고 고갱의 작품세계에 등장하여 인류의 조상 어머니로서의 풍요로운 번식력의 상징으로, 또한 죽음 뒤의 부활을 관장하는 전능한 심으로써 군림하고 있다.
2) 자연환경과 원초적 색채
고갱의 색채에 있어서는 종래의 인상주의적 색채분할이론과 그것을 화폭에 적용시켰을 때 필촉의 분할에서 오는 색조의 미묘한 진동과 뉘앙스를 거부하며 색채가 지니는 고도의 강도를 살리기 위해 큼직하게 구획된 색면을 위주로 하여 각 색면 상호간의 서로 다른 순색의 대비를 추구한다. 그의 그림은 회색조와 갈색조의 그림은 찾아 볼 수 없다. 일체가 색조가 아닌 색채로 되어 있다. 브르타뉴 시기에는 고독 속에 잠겨 기법상의 문제에 열중하고 있었던 고갱은 나는 가는 붓만 쓰고 있습니다. 다른 붓을 쓰면 옆의 색과 혼합되거 든요 라고 말한다. 그는 그림에 있어서 가는 붓으로 그렸고 색채는 될 수 있는 한 엷게 칠하였다. 고갱은 1885년 그의 친구 「슈페네커」에게 보낸 편지에서 회화에 있어 표현한다는 것은 묘사한다는 것과 다르다, 그래서 나는 암시적인 색채를 더 좋아하게 되고 또 구성 면에 있어서 채색되어진 아이디어에 의한 상징을 더 좋아한다. 고 했다. 그의 채색은 무엇보다도 색의 독립적인 힘의 효과와 색이 주는 심리적 영향을 근거로 삼아서 외부의 표현보다 심리적인 내용의 표현을 전개시켜 나갔다. 「녹색의 그리스도」(1889)(도판21)는 청색과 녹색의 미묘한 농담으로 그려진 밤의 세계 속에서 머리 위의 수건이나 선명한 수염의 주황색 처리로 대조적인 색조를 이루게 하면서도 그 색마다의 역할이 잘 나타나고 있다. 푸른 하늘, 초록빛 황혼, 나무들 모두는 보라색 땅과 한덩어리가 되어 있고, 보라색 땅과 크리스트는 어둠 속에서 황토 주황빛 머리에 둘러 싸여 있다. 내면적인 세계를 색으로 환원시켜 전해주는 이 작품은 강한 주황색과 대조를 이루며 그의 내면의 고독과 슬픔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색에 대한 감수성이 예리했던 고갱은 색과 색의 색조를 통해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게 하고색 자체 내에서도 내면의 세계를 표출해 내었다고 할 수 있겠다.
4. 폴 고갱의 미술전시 작품에 대한 감상
폴 고갱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번 전시회는 고갱의 3대 대표작품이 함께 전시하는 다시없는 기회라 전시회 기간 중에 꼭 가리라 마음먹었던 전시회이다. 일요일에 갑작스럽게 가게된 전시회였는데 날씨도 너무 좋고 여유로워 덕수궁 돌담길도 걷고 고갱 전시회도 보고 기분 좋은 날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여는 고갱전시회를 보게 되다니 꿈만 같다. \'타이티의 여인들\' 때문에 타이티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아마 많을 것이다. 고갱이 타히티로 가게 된 것도 파리 만국박람회에 소개된 타이티의 모습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천국일 줄 알았는데 이미 관광지가 되어버린 타이티는 그의 머릿속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고 경제적으로 어렵고 몸마저도 아파 행복하기보다 고통속에서 보냈다. 게다가 말년에는 사랑하는 딸의 사망소식을 듣고 절망에 빠진다. 죽기 전에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려 했던 작품이 제목도 긴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이다. 4미터나 되는 대작으로 그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작품이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고독을 벗삼아 살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삶이 더 행복했을까? 그림그리는 일이 그의 가슴을 움직이는 모터였으므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그림이 필요했던 것일까? 어쨌든 예술가들에게 고통은 창작의 거름임에 틀림없다.
서울시립미술관, 6월 14일부터 9월 29일까지다. 회화, 조각 등 모두 60여점이 전시된다고 하니 고갱의 미술세계를 일별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고갱의 작품과 관련된 현대예술가들의 작품도 함께 전시되었다. 그럼으로써 과거와 현재가 소통하는 기회가 제공되었다. 고갱의 삶은 서머싯 모옴이 쓴 소설 <달과 6펜스>에 간접적으로 드러나 있다. 주식중개인이었는데, 마치 소명 받듯 화가로 변신했다. 빈센트 반 고흐와 특별한 우정을 나누었고, 그 우정은 나중에 큰 상처를 남겼다. 고흐는 그 상처 때문에 자신의 귀를 자른다. 고갱은 어릴 때 페루에 살았다. 그가 화가의 절정기 때 폴리네시아에 머물며 비유럽적인 문화에 매혹된 것은 아마 유아기의 경험과 관련 있을 것이다. 고갱이 지금도 사랑 받는 이유는 대개 폴리네시아에서의 원시적인 색깔의 상징 때문일 터다. 이번 전시회에선 그런 원시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설교 후의 환상\'이 나를 맞는다. 붉은 바탕색과 여인들의 흰 모자 색이 대비되며 독특한 느낌이 난다. 흰 모자는 그가 살던 지방의 전통적인 것이다. \'황색 그리스도\', 고갱의 대표작이다. 대표작은 대표작이라서 더 자세히 보게 된다. 그러나 나의 마음을 가장 끌어당긴 작품은 \'낚시하는 부르타뉴 사람들\'이다. 작은 개울처럼 보이는 물가에서 마을 사람 대여섯이 낚시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인데 색감이 눈길을 끌 뿐더러 사람들 속에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는 것만 같다. 나는 이 그림을 여러 번 보고 오랫동안 그 앞에서 서성였다. 고갱은 35세까지 주식 중개인으로 살다가 35세부터 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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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9.04
  • 저작시기2013.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77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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