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고려 사회의 사회 성격론
고려 시대의 관료제(官僚制)
(1) 관료가 되는 방법
① 과거제(科擧制)
② 음서제(蔭叙制)
③ 천거제(薦擧制)
(2) 고려 시대 관료제의 성격
고려 시대의 문벌귀족(門閥貴族)
(1) 문벌귀족의 정의와 성격
(2) 문벌귀족의 세력 기반
(3) 귀족 사회의 동요
귀족제설
관료제(官僚制)설
고려사회의 지배층 귀족인가 관료인가?
@참고자료
고려 시대의 관료제(官僚制)
(1) 관료가 되는 방법
① 과거제(科擧制)
② 음서제(蔭叙制)
③ 천거제(薦擧制)
(2) 고려 시대 관료제의 성격
고려 시대의 문벌귀족(門閥貴族)
(1) 문벌귀족의 정의와 성격
(2) 문벌귀족의 세력 기반
(3) 귀족 사회의 동요
귀족제설
관료제(官僚制)설
고려사회의 지배층 귀족인가 관료인가?
@참고자료
본문내용
거제를 통한 신분상승이 매우 제한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이상 고려시대가 귀족사회였음을 증거하는 제도들을 살펴보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고려는 특정 문벌가문들이 제도를 이용 혹은 자위적으로 변용하면서 정부의 요직을 점유하고 국가를 운영해간 귀족사회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음서제와 공음전시법과 같은 귀족적 특권의 제도화가 유지될 수 있었으며, 과거제 조차도 귀족제적인 방향에서 운영하여 갔다고 생각되는 것이다.이들은 음서제,공음전과 같은 특권을 지니며서 폐쇄적,보수적인 모습을 띠어간다.
관료제(官僚制)설
현대적 의미에서 관료제란 전문적인 능력을 소유함으로써 임명된 행정관(관료)이, 국민에 대한 민주책임의 보장을 면제받고, 정치지도를 행하는 통치기구를 말한다.
고려의 관리체제에 대해 심도있게 반론이 제기 된 것은, 1970년 박창희가 <고려시대 귀족제 사회설에 대한 재검토>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였다. 그는 기존의 학설에 대해 몇가지 반론을 들어 고려의 문벌은 귀족적 세습이 아니라 과거를 통해 형성된 것이라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고려는 광종조부터 시행된 과거제를 바탕으로 과거관료들을 조직적으로 등용함으로써 능력을 근본으로 하는 관료제를 수립하였고, 과거제가 정착, 발전하는 성종조에 가서는 관료제가 더욱 확대되었다. 그는 이를 막스웨버의 이론을 빌려 “가산관료제”라 일컬었다.
고려가 관료제 사회임을 뒷받침하는 증거 중, 가장 먼저 내세우는 것은 바로 과거제(科擧制)의 시행이다. 강력한 전제군주 국가를 수립하려 했던 광종이 충량하고 유능한 신하를 양성하기 위해 시행했을 것으로 보이는 이 과거제는, 그 시행자체가 고려사회가 세습이 아닌, 능력에 의거한 관리선발을 추구했음을 보여준다. 아무튼 광종이 착안한 관료사회는 성종조에 들어서면서 완성된다. 과거제가 보다 안정, 확대 시행되었으며, 이미 중앙 정치주도 관료는 과거파가 상당수였다. 또한 과거제를 시행함에 있어 응시자는, 그 가문이나 문벌에 개의치 않고 공정하게 채점했다는 점 또한 괄목할만하다. 과거제가 목종 - 현종을 거치면서 또 한차례 발전한 것을 감안한다면, 이미 고려사회는 능력에 의해 선발된 과거파들에 의한 <관료제 사회> 였음을 인지하지 않을 수 없다.
고려가 관료제 사회임을 부정하는 요소로 음서와 공음전시등 제도적 특권을 든다. 하지만 이 또한 완벽히 관료제를 부정한다고는 볼 수 없다. 우선 음서제는 말 그대로 공신의 덕을 기리기 위해 후손에게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주는 제도 일뿐이다. 즉, 이는 제도적인 장치일 뿐, 특정 신분층의 특권을 명시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음서로 처음 진출하는 직위는 고관이 아니란 점도 중요하다. 음서제는 “관리”가 되는 길일 뿐, 고관으로 승진까지 보장하고 있지는 않다는 말이다. 고관이 되려면 똑같이 경쟁을 해야하며, 능력으로 승진을 해야한다. 음서로 관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응시하는 사례등은 음서가 결코 고관까지 탄탄대로를 보장해주지 않음을 암시한다. 음서제가 특권층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결과론 적인 생각일 뿐, 음서제 자체가 귀족사회를 형성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음서제와 공음전은 특권층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가 아니라, 공신들의 공을 치하하기 위한 제도 인 것이다.
고려사회의 지배층 귀족인가 관료인가?
어떤면에서 과거제와 음서제는 서로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과거제는 아무래도 개인의 능력을 중시하는 제도이다.뛰어난 인재를 선발해 관리로 삼기위한 제도가 과거제라 할 수 있다.반면 음서제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가문이라는 출신 배경이다.좋은 가문의 자손들이 계속해서 권력을 세습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일종의 특권 귀족층을 위한 제도라는 성격이 강하다.그렇다면 고려 사회를 움직였던 지배층은 과연 관료였을까 아니면 귀족이었을까?
귀족을 주장하는 입장에 따르면 고려 사회는 무엇보다 출생 신분이 강조된 신분제 사회였음을 주목해야 한다.즉 가문이나 문벌이 좋은 귀족들이 정권을 차지하고 국가를 운영한 사회였다.그리고 귀족들은 이러한 지위를 그의 자손들에게 계속해서 세습시킬 수 있었다.특히 이러한 귀족 사회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이 대체로 5품 이상의 관리들이다.이들에게는 음서 등의 브혜가 주어졌던 것이다. 반면에 관료가 고려를 이끌었다고 보는 사람들은 과거제를 주목한다.과거 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능력이다.고려시대에선 과거제를 통해 관리가 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길이었다.과거 시험을 통해 선발된 새로운 인재들은 왕권을 떠받치는 관료 사회를 만들게 된다.이 주장에 따르면 과거제가 처음 실시된 광종대부터 관료제 사회가 성립되기 시작해 성종대 이후 더욱 강화되고 발전되어갔다는 것이다.즉 고려는 시험을 통해 선발된 관료들이 정치를 주도한 관료제 사회였다는 주장이다.
사실 고려시대 귀족이란 개념은 다소 모호하다는 문제점이 있다.그러나 고려사회에서는 가문이나 문벌이 권력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였음은 분명하다.과거제 역시 결코 개인 능력만을 시험하는 제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여기에는 가문 등의 출신 성분이 많이 작용했다.어느 정도는 개인의 능력이 반영되었지만 출세의 중요한 배경은 가문이었던 것이다.고려의 지배층은 피의 상속을 통해 권력의 상속을 보장받기도 했던 것이다.
고려사회 지배세력의 성격에 대해 문벌 귀족제설과 관료제론을 고찰해 보았다.
고려 지배층의 성격을 밝히려는 논의는 관직으로 진출하는 주된 방법인 과거제와 음서제 중에서 어느 것이 보편적이고 일반적이었나 하는데 대한 시각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그 제도들이 각각 문벌 귀족제설과 관료제론을 적절하게 뒷받침해 주는 효율적인 기능을 수행하였는가 하는 점이 논쟁의 초점이었다. 고려시대는 신라 골품제사회나 조선 양반사회의 중간적 단계였다. 따라서 혈연 중심적 사회에서 능력 우대의 사회로 이행해 가는 발전기였던 것이다. 이러한 과도기적 상황에서 시험을 통한 과거제와 조상의 음덕으로 관직에 나아가는 음서제라는 두 가지 제도를 동시에 운영한 것이 고려시대가 가지는 특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자료
영화처럼 읽는 한국사 (명진출판) 저자
이상 고려시대가 귀족사회였음을 증거하는 제도들을 살펴보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고려는 특정 문벌가문들이 제도를 이용 혹은 자위적으로 변용하면서 정부의 요직을 점유하고 국가를 운영해간 귀족사회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음서제와 공음전시법과 같은 귀족적 특권의 제도화가 유지될 수 있었으며, 과거제 조차도 귀족제적인 방향에서 운영하여 갔다고 생각되는 것이다.이들은 음서제,공음전과 같은 특권을 지니며서 폐쇄적,보수적인 모습을 띠어간다.
관료제(官僚制)설
현대적 의미에서 관료제란 전문적인 능력을 소유함으로써 임명된 행정관(관료)이, 국민에 대한 민주책임의 보장을 면제받고, 정치지도를 행하는 통치기구를 말한다.
고려의 관리체제에 대해 심도있게 반론이 제기 된 것은, 1970년 박창희가 <고려시대 귀족제 사회설에 대한 재검토>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였다. 그는 기존의 학설에 대해 몇가지 반론을 들어 고려의 문벌은 귀족적 세습이 아니라 과거를 통해 형성된 것이라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고려는 광종조부터 시행된 과거제를 바탕으로 과거관료들을 조직적으로 등용함으로써 능력을 근본으로 하는 관료제를 수립하였고, 과거제가 정착, 발전하는 성종조에 가서는 관료제가 더욱 확대되었다. 그는 이를 막스웨버의 이론을 빌려 “가산관료제”라 일컬었다.
고려가 관료제 사회임을 뒷받침하는 증거 중, 가장 먼저 내세우는 것은 바로 과거제(科擧制)의 시행이다. 강력한 전제군주 국가를 수립하려 했던 광종이 충량하고 유능한 신하를 양성하기 위해 시행했을 것으로 보이는 이 과거제는, 그 시행자체가 고려사회가 세습이 아닌, 능력에 의거한 관리선발을 추구했음을 보여준다. 아무튼 광종이 착안한 관료사회는 성종조에 들어서면서 완성된다. 과거제가 보다 안정, 확대 시행되었으며, 이미 중앙 정치주도 관료는 과거파가 상당수였다. 또한 과거제를 시행함에 있어 응시자는, 그 가문이나 문벌에 개의치 않고 공정하게 채점했다는 점 또한 괄목할만하다. 과거제가 목종 - 현종을 거치면서 또 한차례 발전한 것을 감안한다면, 이미 고려사회는 능력에 의해 선발된 과거파들에 의한 <관료제 사회> 였음을 인지하지 않을 수 없다.
고려가 관료제 사회임을 부정하는 요소로 음서와 공음전시등 제도적 특권을 든다. 하지만 이 또한 완벽히 관료제를 부정한다고는 볼 수 없다. 우선 음서제는 말 그대로 공신의 덕을 기리기 위해 후손에게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주는 제도 일뿐이다. 즉, 이는 제도적인 장치일 뿐, 특정 신분층의 특권을 명시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음서로 처음 진출하는 직위는 고관이 아니란 점도 중요하다. 음서제는 “관리”가 되는 길일 뿐, 고관으로 승진까지 보장하고 있지는 않다는 말이다. 고관이 되려면 똑같이 경쟁을 해야하며, 능력으로 승진을 해야한다. 음서로 관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응시하는 사례등은 음서가 결코 고관까지 탄탄대로를 보장해주지 않음을 암시한다. 음서제가 특권층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결과론 적인 생각일 뿐, 음서제 자체가 귀족사회를 형성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음서제와 공음전은 특권층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가 아니라, 공신들의 공을 치하하기 위한 제도 인 것이다.
고려사회의 지배층 귀족인가 관료인가?
어떤면에서 과거제와 음서제는 서로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과거제는 아무래도 개인의 능력을 중시하는 제도이다.뛰어난 인재를 선발해 관리로 삼기위한 제도가 과거제라 할 수 있다.반면 음서제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가문이라는 출신 배경이다.좋은 가문의 자손들이 계속해서 권력을 세습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일종의 특권 귀족층을 위한 제도라는 성격이 강하다.그렇다면 고려 사회를 움직였던 지배층은 과연 관료였을까 아니면 귀족이었을까?
귀족을 주장하는 입장에 따르면 고려 사회는 무엇보다 출생 신분이 강조된 신분제 사회였음을 주목해야 한다.즉 가문이나 문벌이 좋은 귀족들이 정권을 차지하고 국가를 운영한 사회였다.그리고 귀족들은 이러한 지위를 그의 자손들에게 계속해서 세습시킬 수 있었다.특히 이러한 귀족 사회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이 대체로 5품 이상의 관리들이다.이들에게는 음서 등의 브혜가 주어졌던 것이다. 반면에 관료가 고려를 이끌었다고 보는 사람들은 과거제를 주목한다.과거 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능력이다.고려시대에선 과거제를 통해 관리가 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길이었다.과거 시험을 통해 선발된 새로운 인재들은 왕권을 떠받치는 관료 사회를 만들게 된다.이 주장에 따르면 과거제가 처음 실시된 광종대부터 관료제 사회가 성립되기 시작해 성종대 이후 더욱 강화되고 발전되어갔다는 것이다.즉 고려는 시험을 통해 선발된 관료들이 정치를 주도한 관료제 사회였다는 주장이다.
사실 고려시대 귀족이란 개념은 다소 모호하다는 문제점이 있다.그러나 고려사회에서는 가문이나 문벌이 권력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였음은 분명하다.과거제 역시 결코 개인 능력만을 시험하는 제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여기에는 가문 등의 출신 성분이 많이 작용했다.어느 정도는 개인의 능력이 반영되었지만 출세의 중요한 배경은 가문이었던 것이다.고려의 지배층은 피의 상속을 통해 권력의 상속을 보장받기도 했던 것이다.
고려사회 지배세력의 성격에 대해 문벌 귀족제설과 관료제론을 고찰해 보았다.
고려 지배층의 성격을 밝히려는 논의는 관직으로 진출하는 주된 방법인 과거제와 음서제 중에서 어느 것이 보편적이고 일반적이었나 하는데 대한 시각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그 제도들이 각각 문벌 귀족제설과 관료제론을 적절하게 뒷받침해 주는 효율적인 기능을 수행하였는가 하는 점이 논쟁의 초점이었다. 고려시대는 신라 골품제사회나 조선 양반사회의 중간적 단계였다. 따라서 혈연 중심적 사회에서 능력 우대의 사회로 이행해 가는 발전기였던 것이다. 이러한 과도기적 상황에서 시험을 통한 과거제와 조상의 음덕으로 관직에 나아가는 음서제라는 두 가지 제도를 동시에 운영한 것이 고려시대가 가지는 특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자료
영화처럼 읽는 한국사 (명진출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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