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序
Ⅱ. 왜왕의 도독제군사호 요청
1. 내용
2. 의미
3. 소결
Ⅲ. 5세기의 한일관계
1. 칠지도
2. 광개토대왕비문
Ⅳ. 결론
Ⅱ. 왜왕의 도독제군사호 요청
1. 내용
2. 의미
3. 소결
Ⅲ. 5세기의 한일관계
1. 칠지도
2. 광개토대왕비문
Ⅳ. 결론
본문내용
했고, 칠지도도 선물의 개념으로 하사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5세기 백제의 문화는 일본의 문화를 앞서고 있고, 그리고 금동신발이나 금동관모가 백제와 왜 두 지역 모두에서 발견되는 것을 보아 백제는 일본에 문화를 전파하고 과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광개토왕릉비문
광개토왕릉비문에서 논란이 되는 부분은 신묘년조이다. 훼손된 글자를 넣지않고 해석을 하면 ‘백제와 신라는 원래 고구려의 속민으로 조공을 했는데, 신묘년에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신라를 치고 신민으로 삼았다. 이에 영락 6년에 왕이 몸소 수군을 인솔하여 백잔국을 토벌했다.’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훼손된 글자를 東이라고 추측하여 해석하면 백제가 신라를 토벌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영락이 백잔국을 토벌했다는 구절도 논리적으로 이해 할 수 있고, 이후 왜가 백제와 동맹을 맺고 한반도에 지원군을 보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왜가 한반도에 지원군을 보내는 대가로 동맹관계의 강화를 위해서 칠지도를 주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Ⅳ. 결론
『송서』 왜국전에 의하면 왜의 5왕들이 한반도 남부에 대한 지배권을 뜻하는 도독제군사호를 요청했고, 이는 478년 무왕 때 승인되었다. 그러나 이는 한반도의 지배를 의미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왜가 한반도에서 활동을 했다는 것을 짐작케는 한다. 그리고 칠지도나 광개토왕릉비문을 참고했을 때, 왜는 백제가 우호관계를 맺고, 고구려에 대항했을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오래 지속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하면 장수왕이 427년 평양으로 천도를 했고 남진정책의 의지를 보였기 때문에 백제로서는 신라뿐만 아니라 왜와의 더욱 더 긴밀한 관계가 필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왜 무왕이 송에 보낸 표문에서도 고구려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5세기의 한일관계는 백제와 왜가 대항하여 고구려에 맞서는 형국이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윤여동, <의문의 기록 송서 왜국전>, 2008
이재석, 『송서』 왜국전에 보이는 왜왕(무) 상표문에 대한 검토, 2004
홍성화, 한일고대사 유적답사기, 463쪽, 2008
서보경, 5세기의 고구려와 왜국 송서 왜국전의 왜왕무 상표문에 나타난 ‘고구려 정토’ 문제를 중심으로, 2006
경향신문, “한·일 고대사 뇌관 ‘칠지도’ 제작연도 369년 아닌 408년”, 2009
노중국, 5세기 한일관계사-<송서> 왜국전의 검토-,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
광개토왕릉비문
광개토왕릉비문에서 논란이 되는 부분은 신묘년조이다. 훼손된 글자를 넣지않고 해석을 하면 ‘백제와 신라는 원래 고구려의 속민으로 조공을 했는데, 신묘년에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신라를 치고 신민으로 삼았다. 이에 영락 6년에 왕이 몸소 수군을 인솔하여 백잔국을 토벌했다.’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훼손된 글자를 東이라고 추측하여 해석하면 백제가 신라를 토벌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영락이 백잔국을 토벌했다는 구절도 논리적으로 이해 할 수 있고, 이후 왜가 백제와 동맹을 맺고 한반도에 지원군을 보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왜가 한반도에 지원군을 보내는 대가로 동맹관계의 강화를 위해서 칠지도를 주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Ⅳ. 결론
『송서』 왜국전에 의하면 왜의 5왕들이 한반도 남부에 대한 지배권을 뜻하는 도독제군사호를 요청했고, 이는 478년 무왕 때 승인되었다. 그러나 이는 한반도의 지배를 의미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왜가 한반도에서 활동을 했다는 것을 짐작케는 한다. 그리고 칠지도나 광개토왕릉비문을 참고했을 때, 왜는 백제가 우호관계를 맺고, 고구려에 대항했을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오래 지속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하면 장수왕이 427년 평양으로 천도를 했고 남진정책의 의지를 보였기 때문에 백제로서는 신라뿐만 아니라 왜와의 더욱 더 긴밀한 관계가 필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왜 무왕이 송에 보낸 표문에서도 고구려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5세기의 한일관계는 백제와 왜가 대항하여 고구려에 맞서는 형국이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윤여동, <의문의 기록 송서 왜국전>, 2008
이재석, 『송서』 왜국전에 보이는 왜왕(무) 상표문에 대한 검토, 2004
홍성화, 한일고대사 유적답사기, 463쪽, 2008
서보경, 5세기의 고구려와 왜국 송서 왜국전의 왜왕무 상표문에 나타난 ‘고구려 정토’ 문제를 중심으로, 2006
경향신문, “한·일 고대사 뇌관 ‘칠지도’ 제작연도 369년 아닌 408년”, 2009
노중국, 5세기 한일관계사-<송서> 왜국전의 검토-,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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