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의 이해] 술의 기원, 한국 술의 역사_고대시대부터 해방 후까지, 식민지 시대의 주세법, 식량확보를 위한 금주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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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문화의 이해] 술의 기원, 한국 술의 역사_고대시대부터 해방 후까지, 식민지 시대의 주세법, 식량확보를 위한 금주령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술의 기원

3. 한국 술의 역사
1) 고대시대
2) 삼국시대
(1) 고구려
(2) 백제
(3) 신라와 통일신라
3) 고려시대
(1) 고려시대의 대표주
(2) 고려시대에 유입된 외래주
4) 조선시대
(1) 조선 시대의 대표주
(2) 조선 시대 유입된 외래주
5) 조선조 말
6) 식민지시대
7) 해방 후

4. 식민지 시대의 주세법
1) 주세법
2) 주세령 제정(1916년)
(1) 최저생산량 설정을 통한 영세 주조업자의 축출
(2) 자가용주의 주종별 제조금지 및 통제규정의 신설
(3) 주조업 공장의 제한적인 규모 확대

5. 식량확보를 위한 금주령
1) 노동과 술
2) 일상속의 커뮤니케이션과 음주

6.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세액을 부과하고 일정 한도 내에서 자가용주 면허 제도를 부여하여 주종에 따라 차별정책을 폈다. 주세수탈이 체계적으로 이뤄지려면 조선주와 같은 재중소비주의 시장상품화가 선결조건이었다. 그런데도 비조선주에 대해 자가용주 제조를 전면 금지한 것과 달리 조선주의 자가용주 제조를 제한적으로 인정한 것은 자가 소비용으로 빚어먹던 관습을 유예기간 없이 억누를 경우에 나타날 역효과를 감안해야 하고 밀주단속에 필요한 행정력을 구비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자가용주 제조면허제도와 자가용 주세제의 규정은 두 가지 목적을 관철하기 위한 것이었다. 첫째 강제성을 희석시키면서 오랜 관습을 일단 수용하고 동시에 세수입 효과도 거두고, 둘째 영업용 주세보다 훨씬 높은 고율의 과세부과, 면허를 주더라도 차별과세를 총해 소량 제조로 적극 유도함으로써 자가용주 제조를 시장기구로 전환시키려는 것이었다.
(3) 주조업 공장의 제한적인 규모 확대
효율적인 주세수탈과 주조업 통제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가용주 제조를 통제 금지 시켜 주류의 생산과 소비를 분리시키고 영세 주조업을 정리 축출하여 대자본의 지배로 유도할 필요가 있었다. 통제 곤란한 각 지방의 전통적인 민속주도 존재할 필요가 없었다.
5. 식량확보를 위한 금주령
국가 권력이 음주를 향한 욕망을 꺾어버린다면, 즉 앞으로 1년 동안, 혹은 석 달 동안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고, 술을 마실 경우 감옥에 가둔다면, 또한 이런 조치가 수시로 발동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조선시대엔 이런 적이 많았다. 국가는 자주 금주령을 발동하여 개인의 음주를 금지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알코올은 주로 곡물과 과일에서 얻기 때문이다. 벌꿀이나 용설란 같은 것이 없지는 않지만 대종을 이루는 것은 역시 곡물과 과일이다.
술은 곡물을 ‘낭비’한다. 말하자면 주 식량을 낭비하는 것이다. 술은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밥은 먹지 않으면 곤란해진다. 경제체제가 전적으로 농업 위주였던 조선시대에 곡물의 안정적 확보는 곧 정치-경제 체제의 안정과 연결되는 문제였다. 흉년이 들었을 때 곡물의 낭비는 곧 많은 사람들의 아사를 불러온다. 그러니 곡물이 술로 낭비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전통이 이어져서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쌀로 막걸리를 담글 수 없었다.
즉, 조선시대엔 흉년이 되는 해에 금주령이 강하게 발동되었던 것이다. 천재지변이라든지 화재와 같은 재난, 국상 등이 있으면 전국민이 근신하는 의미에서 금주령이 발동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조선에선 500년 동안 금주령이 국가의 기본정책으로 유지됐다.
6. 술의 사회사
1) 노동과 술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생활필수품은 노동에 의해 마련된다. 인간의 육체적 노동은 많은 양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이 에너지는 보통 음식물 섭취로써 충당된다. 사람이 직접 자연을 경작하는 전통적 농업노동의 경우, 도시에서의 사무노동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많은 양의 칼로리가 소비된다. 이를 위해 가장 손쉬운 방법이 식사의 양을 늘리는 것이다. 술은 이 새참과 함께 필수적인 음료수가 된다. 새참때 논두렁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는 광경은 농촌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각인되어 왔다. 뿐만 아니라 집을 짓는 목수들이 잠깐 일손을 놓고 마시는 소주도 마찬가지이다. 이때의 술은 다른 음식과 같이 생산노동의 효율성을 높이는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기능한다. 즉 술은 생산노동의 중요한 원천이 된다. 따라서 그것은 유한계급이 풍류와 멋으로 즐기는 여가의 술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른바 술의 생산적 기능을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술의 이러한 생산적 기능 때문에 작업현장에서의 음주는 사무직 노동자의 커피 브레이크처럼 당연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농사일이나 집짓는 일은 물론 갖가지 공사나 수리를 하는 기술자들 중에 아직도 잠깐의 휴식을 한두 잔의 술로 채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음주는 힘든 작업의 주기에서 크게 들이키는 긴 호흡과도 같은 것이다.
2) 일상속의 커뮤니케이션과 음주
매일의 삶이 일과 여가로 이루어진 과정이라고 할 때, 술과 음주는 그 둘을 있는 가교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그런데 이러한 가교의 구체적 모습은 어떤 것인가? 우리는 그것을 일상적 교류의 중요 매체가 술이라는 것을, 그리고 음주 그 자체가 하나의 강력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점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술은 타인과의 교류에서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한다. 물론 술에 대한 규범이나, 사적 영역에 대한 사회 전체 수준의 문화적 특성에 따라 상당한 편차가 나타날 수 있다. 극단적인 예로, 종교적인 이유로 완전금주의 규범을 공식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술을 매개로 하는 공동체 형성을 논의하는 자체가 넌센스라 할 수 있다. 술이 친목을 돋우는 적극적 기능을 하는데도 사회 전체의 생활문화가 개인주의적일 때와 집합주의적일 때는 음주 양태가 동일할 수 없다. 개인주의적 생활 원리가 존중되는 사회에서는 술에 의한 정적인 유대도 일정한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반면에 집합주의가 지배적인 생활문화의 경우, 술자리에서의 개인의 입장은 존중되기보다 전체의 화목을 위해 무시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만취형 술자리와 서양의 절제된 음주문화의 차이를 단순히 폐습과 건전문화의 발로라고 단정짓기보다 생활문화의 질적 차이에서 설명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6. 맺음말
술의 기원 및 술의 역사에 대해 시대적으로 알아 보았다. 술의 역사를 시대적으로 나누어서 알아봄으로써, 술과 역사와의 관계에 대해 충분히 이해 할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식민시대에 주세법과 주세령에 대해서는 그동안 배워보지 못한 새로운 사실들을 알수 있는 계기 였고 술의 사회사에서는 문화와 술의 관계에 대해서 한번쯤 다시 생각해볼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글을 계기로 앞으로 바람직한 음주문화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정대성 저 우리 술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지혜, 이회문화사 2006
정동효 저, 우리나라 술의 발달사, 신광출판사 2004
조정형 저, 다시 찾아야할 우리의 술, 서해문집 2010
이종기 저, 술 이야기, 다할미디어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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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6.23
  • 저작시기2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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