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없음.
본문내용
신자는 끊임없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인간간의 지속적이며, 생동감 있는 교통이 가능하게 된다. 이 때 인간은 신적인 사랑에 불타오르고, 하나님을 찾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현상과 함께 순결한 상태가 이루어진다. 기도의 순수성은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과 정신의 순수성과 일치되는데, 정신이 정욕에 의해 지배당할 때, 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으며, 하나님의 은총 또한 받을 수 없다.
팔라마스는 모세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의 존재가 변모된 것처럼 기도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본질적인 것이고, 기도하는 동안에 육으로부터 영으로의 변모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기도하는 동안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되지 않은 빛을 통해 피조된 것들을 포기하는 정욕으로부터의 자유를 얻게 되며, 하나님과 합일되는 ‘탈아’의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탈아’는 자신이 성령 안에서 창조주의 영광을 바라보는 상태로서 자신을 초월하여 창조 안에 계시한 하나님과 만나는 상태이며, 이것이 바로 신화의 경지인 것이다.
Ⅲ. 결론
인간으로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문제는 아직도 많은 논쟁거리가 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팔라마스는 이러한 사실을 경험에서 발견하였으며, 영성의 전통 가운데에서 명확하게 설명하고자 하였다. 하나님에 대한 이해, 즉 본질과 에너지의 분리를 팔라마스가 가장 먼저 주장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본질과 에너지에 대한 이해를 체계적으로 종합한 점은 팔라마스가 동방신학에 얼마나 큰 공헌을 한 인물인지 다시금 느끼게 한다.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철저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에 헤시카즘을 통한 신화의 가능성과 그 실천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기도의 모습들 및 삶의 모습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팔라마스는 신화의 완성을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에만 한정하지 않고, 지금 여기서 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하였다.
개신교 및 가톨릭의 신학은 하나님 나라와 종말을 지향한다. 이는 역사의 장을 통해 전개되며, 결국 하나님이 정한 때에 이루어질 오메가 포인트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가톨릭이나 개신교의 신학에 있어서는 종말론이 무척이나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동방정교회의 답은 가톨릭이나 개신교의 그것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동방정교회는 신화의 과정을 통해 인간으로부터 하나님에 이르는 수직적인 운동을 말하고 있다. 인간의 구원이 종말론적인 완성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이루어질 가능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이래로 에큐메니칼을 통한 교회 협력의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교회 간의 일치와 협력에 대해 말하려면 서로가 가진 신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며,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진지한 대화가 필요하다.
얼핏 보아서는 가톨릭 및 개신교의 종말론과, 동방정교회의 신화는 물과 기름 사이의 관계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접점은 있을 수 있으되, 둘 사이의 조화와 융합은 상당히 어려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당장은 둘 사이의 조화와 융합이 어려워 보일지라도,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한 깊은 대화와 신학적 토론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이 둘 사이의 조화와 융합도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Ⅳ.참고문헌
블라디미르 로스끼,『동방교회의 신비신학에 대하여』, 한국 장로교 출판사, 2003
Meyendorff, John. Gregory Palamas: The Triads. N.Y,: Paulist Press, 1983.
박영모, “필로칼리아에 나타난 헤시카즘 이해” 감리교신학대학 석사학위 논문, 2002.
송정석, “그레고리 팔라마스의 헤지카즘 전통에 대한 연구” 장로회신학대학 석사학위 논문, 1996.
팔라마스는 모세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의 존재가 변모된 것처럼 기도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본질적인 것이고, 기도하는 동안에 육으로부터 영으로의 변모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기도하는 동안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되지 않은 빛을 통해 피조된 것들을 포기하는 정욕으로부터의 자유를 얻게 되며, 하나님과 합일되는 ‘탈아’의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탈아’는 자신이 성령 안에서 창조주의 영광을 바라보는 상태로서 자신을 초월하여 창조 안에 계시한 하나님과 만나는 상태이며, 이것이 바로 신화의 경지인 것이다.
Ⅲ. 결론
인간으로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문제는 아직도 많은 논쟁거리가 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팔라마스는 이러한 사실을 경험에서 발견하였으며, 영성의 전통 가운데에서 명확하게 설명하고자 하였다. 하나님에 대한 이해, 즉 본질과 에너지의 분리를 팔라마스가 가장 먼저 주장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본질과 에너지에 대한 이해를 체계적으로 종합한 점은 팔라마스가 동방신학에 얼마나 큰 공헌을 한 인물인지 다시금 느끼게 한다.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철저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에 헤시카즘을 통한 신화의 가능성과 그 실천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기도의 모습들 및 삶의 모습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팔라마스는 신화의 완성을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에만 한정하지 않고, 지금 여기서 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하였다.
개신교 및 가톨릭의 신학은 하나님 나라와 종말을 지향한다. 이는 역사의 장을 통해 전개되며, 결국 하나님이 정한 때에 이루어질 오메가 포인트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가톨릭이나 개신교의 신학에 있어서는 종말론이 무척이나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동방정교회의 답은 가톨릭이나 개신교의 그것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동방정교회는 신화의 과정을 통해 인간으로부터 하나님에 이르는 수직적인 운동을 말하고 있다. 인간의 구원이 종말론적인 완성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이루어질 가능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이래로 에큐메니칼을 통한 교회 협력의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교회 간의 일치와 협력에 대해 말하려면 서로가 가진 신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며,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진지한 대화가 필요하다.
얼핏 보아서는 가톨릭 및 개신교의 종말론과, 동방정교회의 신화는 물과 기름 사이의 관계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접점은 있을 수 있으되, 둘 사이의 조화와 융합은 상당히 어려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당장은 둘 사이의 조화와 융합이 어려워 보일지라도,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한 깊은 대화와 신학적 토론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이 둘 사이의 조화와 융합도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Ⅳ.참고문헌
블라디미르 로스끼,『동방교회의 신비신학에 대하여』, 한국 장로교 출판사, 2003
Meyendorff, John. Gregory Palamas: The Triads. N.Y,: Paulist Press, 1983.
박영모, “필로칼리아에 나타난 헤시카즘 이해” 감리교신학대학 석사학위 논문, 2002.
송정석, “그레고리 팔라마스의 헤지카즘 전통에 대한 연구” 장로회신학대학 석사학위 논문, 1996.
키워드
추천자료
운동과탄수화물의관계
우주의 신비
생명이란 무엇인가? 를 읽고
태권도의 도덕적 교육 효과
레크레이션과 놀이
국가와 윤리
현대인의 스트레스 유형과 원인 및 대처방안
지식의 형태와 유형
[미국교육개혁][미국교육제도][미국교육과정][미국교육철학]미국교육의 목표, 미국교육의 제...
인간과심리 1A)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이론에 대해 논하시오 (이론적배경,주요개념,이론고찰,시...
Rosemarie Rizzo Parse- 인간되어감 이론
식품조리의 예비작업과 조리방법, 생식품의 조리방법(The principle of Cook)
[소방학] 연소의 범위에 대하여
[무기화학실험] 코발트 착화합물(NO2) - 코발트(Ⅲ) 착화합물의 합성을 통한 착이온 조성 제어...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