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배경사(그리스-로마철학)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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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약배경사(그리스-로마철학)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철학이란?
2. 철학의 대상
3. 그리스 철학
4. 그리스 철학의 기본 사상가들
5. 로마 철학

본문내용

유일한 선은 덕을 가지는 것이며, 부나 가난, 건강이나 병, 삶이나 죽음 등 다른 모든 것은 아무 관계도 없다. 모든 덕은 올바른 인식에만 기초한다. 즉 자제는 올바른 선택에 대한 인식, 인내는 무엇을 참아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 정의는 '분배'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기초한다.
모든 악의 원인인 정념은 무엇이 참으로 좋은지를 잘못 판단한 결과이다. 세계는 신의 로고스(본래의 뜻은 '말' 또는 '이야기'임)가 지배한다. 이 로고스가 세계를 완벽하고 질서있게 유지한다. 인간은 이 질서에서 벗어나거나 이 질서에 저항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질서를 교란할 수는 없고 자신을 해칠 뿐이다.
2) 에피쿠로스 학파
제논과 같은 시대의 에피쿠로스는 제논에 반대한 사람으로 여겨지는데, 이는 여러 면에서 타당하다. 스토아 학파가 쾌락과 고통은 인간의 행복에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가르친 반면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행복한 생활의 본질로 삼았다. 스토아 학파는 신의 섭리가 있다고 믿었으나 에피쿠로스는 신들이 인간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두 철학은 이처럼 대조적이지만 몇 가지 중요한 면에서는 똑같다. 비록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좋은 생활의 기준으로 삼았지만 결코 방탕한 생활과 주색잡기를 옹호하지는 않았다. 그가 생활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주장한 것은 소박한 쾌락이었다.
로마 시인 루크레티우스 카루스(BC 95경~55)는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De rerum natura〉라는 시에서 에피쿠로스가 인류를 모든 종교적 두려움에서 해방시킨 사람이라고 찬양했다. 에피쿠로스 자신도 이러한 해방이 자기 철학의 1가지 목적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비록 그가 신들은 너무나 탁월하므로 번거롭게 유한한 생명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고 가르쳤지만, 인간은 신들을 완전한 존재로 바라보는 일이 중요하고 그래야만 완전성에 접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에피쿠로스주의가 방탕한 생활을 정당화한다고 오해하기 시작한 것은 로마 시대에 들어와서였다.
3) 회의주의와 그 밖의 학파
엘리스의 피론이 창시한 회의주의 학파는 아무도 어떤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없으며, 자기가 감각으로 지각한 것이 환상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피론은 자기 생각의 실천적 결론을 철저히 수행했다. 심지어 그는 거리를 걸을 때 마차나 그 밖의 장애물을 주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충실한 제자들이 항상 따라다니며 그가 다치지 않게 했다고 한다.
피론을 지지한 후기 인물인 섹스토스 엠피리코스(AD 2~3세기)는 〈독단론에 맞서 Pros dogmatikous〉라는 대작을 써 이전 철학자들의 글을 광범위하게 인용했는데, 그 덕분에 사라져버렸을지도 모를 많은 글이 보존되었다. 데이비드 흄과 이마누엘 칸트는 고대철학에 관한 대부분의 지식을 섹스토스 엠피리코스의 저서에서 얻었다.
BC 4세기에 생긴 아테네의 모든 철학 학파와 분파는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이교도적 성격을 이유로 AD 529년 폐쇄 명령을 내린 고대 말기까지 계속 남아 있었다. 약 1,000년에 걸친 이 기간에 늘어난 새 학파는 신 피타고라스주의와 신플라톤주의뿐이었다. 그중에서 신 플라톤주의가 철학의 역사에는 훨씬 더 중요했다.
신 플라톤주의는 주로 플로티노스의 연구에서 나온다. 플로티노스는 저서를 발표하지 않았지만, 그의 철학은 제자 포르피리오스가 그의 글을 정리하여 묶어 내놓은 〈엔네아데스 Enneads〉를 통해 알려져 있다. 비록 신플라톤주의는 플라톤을 연구함으로써 나온 것이지만 당시의 종교적·신비적 경향과 일치하는 본질적으로 새로운 철학이다. 플로티노스는 존재에 여러 층이 있다고 가정했다. 그중 가장 높은 층은 일자(一者) 또는 선(善)의 층이며 이 두 층은 동일하지만 인간의 언어로 묘사할 수는 없다.
신 플라톤주의의 이후 역사는 극도로 복잡하다. 포르피리오스는 플로티노스 철학의 윤리적 요소를 강조했지만 그의 제자 시리아 칼키스의 이암블리코스(330경 죽음)는 신플라톤주의를 신 피타고라스주의와 혼합함으로써 존재의 층 또는 일자로부터 유출단계를 늘렸으며, 그결과 전통 그리스 신들을 자기체계 안에 통합할 수 있었다.
이 학파의 또 하나의 분파는 아이데시오스가 소아시아 서쪽에 있는 페르가몬에서 세웠다. 아이데시오스는 오르페우스교 같은 고대 그리스 신비종교들을 다시 일으키려고 힘썼다. 유스티니아누스가 529년 아테네에 있는 모든 철학 학파를 폐쇄한 뒤에도 이교 철학은 계속 남아 그리스도교 철학과 신학의 발달에 영향을 끼쳤지만 점차 소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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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15.09.23
  • 저작시기2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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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98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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