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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나 있을까.
“그때 괭이바다에는 살찐 대구가 많이 잡혔는데 어민들은 한동안 대구를 안먹었어. 사람고기를 먹어서 그렇게 살이 찐 걸로 생각했거든?” 1.[학살의 흔적을 찾아]
2.[해안에 떠밀려온 시체들]
3.[피학살자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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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에는 어느 언론이나 인권·시민단체도 관심이 없는 듯 하다.
노근리의 빗장을 가 열었다고 해서 우리 국군과 경찰에 의해 자행된 보도연맹의 진실마저 남의 나라 언론에 맡겨둘 순 없지 않은가. 1. [곳곳에 학살 흔적]
2. [정치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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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은 보도연맹원이 당한 학살사건과 비교하면 별 것이 아니다”면서, “진주지역 보도연맹원 학살은 진주의 특무대장 탁소령이 저지른 만행이며, 좌익제거라는 미명하에 친일파들이 독립운동가 같은 정적제거에 그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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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과 경찰이 자행한 이 미증유의 비극은 어떻게 해야 하나.
부끄러우니 그냥 덮어버리자 할 것인가. 이거야 말로 정말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 아닌가. 1.[최초의 학살사건 기록]
2.[아쉬웠던 국회 진상조사]
3.[독재도 무너졌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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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면서 총질을 했는데, 상황이 끝난 후 군인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헤엄쳐 설진리 해안에 닿았다. 그리곤 밤새도록 걸어서 진동의 집에 도착했고, 다시 잡히지 않기 위해 부산으로 도망쳤다고 했다.
그는 윤씨보다 일곱 살이 많았는데, 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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