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서양문화 B형 - ‘규정과 지배’로서의 서양문명 “서양 문명”에 대해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은 어떠했는지를 먼저 서술한 후에, 제국주의에 의해서 삶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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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현대의 서양문화 B형 - ‘규정과 지배’로서의 서양문명 “서양 문명”에 대해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은 어떠했는지를 먼저 서술한 후에, 제국주의에 의해서 삶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론

본론
1, 식민주의와 문화
2, 탈식민주의
3, 문명 밖 충돌과 문명 내부 충돌
4, 일제 식민지 통치에 활용된 동화주의 1) 프랑스의 동화정책 2) 일본의 동화정책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夷地, 현재의 북해도)와 남쪽의 유구국(琉球國, 현재의 오키나와)을 완전히 일본의 영토에 편입시켰다. 청일전쟁의 승리의 대가로 대만도 식민지로 획득하였다. 조선에 대해서도정한론에서부터 시작하여 줄곧 침략을 시도해왔으며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1910년 드디어 조선을 병합하며 오랫동안 꿈꾸어온 조선지배의 숙원을 달성하였다. 일본은 1910년 조선을 병합하면서 ‘완전히 그리고 영구히’지배할 것을 천명하며 일시동인(一視同仁)·내지연장주의(內地延長主義)·내선융화(內鮮融和)·내선일체화(內鮮一體化)·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 등을 표방하면서 조선을 통치하였다. 이것은 곧 ‘조선의 일본화’를 통하여 북해도나 오키나와처럼 일본의 한 지역으로 편입시켜 조선을 영원히 지배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는 동화정책으로 개념화되어, 단순한 정책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지배원리로 작용하여 민족문화 및 민족성의 말살에서부터 민족차별, 추방, 혼거, 조선어 사용금지, 일본어 상용, 창씨개명, 잡혼정책(혼혈정책), 강제적 신사참배 등 다양한 정책 등의 정책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조선지배는 제국주의 열강의 ‘경제적 수탈’이라는 보편적 식민지 통치정책과 함께 일본 식민지 통치 정책의 특징인 동화주의가 작용하여 식민지 모국의 요구와 민족적 저항 등의 현실과 연동되면서 구체적으로 정책화되어 나타났다. 여기에서 다른 일반과 구별되는, 일본 식민지 통치 정책의 성격과 한국사에서의 식민지 시기의 특수한 역사적 성격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영원한 지배를 위한 동화정책은 일본과 조선과의 특수한 관계 속에서 설정되는 것이었다. 곧 인종적·문화적 근친성, 지정학적 근접성과 운명공동체적 인식, 오랜 역사적 관계 속에서 배태된 열등의식, 귀소본능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동화정책은 조선적인 모든 것의 파괴·해체를 뜻한다. 민족적·문화적 동질성과 정체성, 혈연·지연의 공동체적 통합성, 조선 민족의 생물학적 특질까지도 파괴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일제는 근대화와 문명화라는 미명하에 조선 문화를 폭력적으로 파괴시켜나갔다. 조선어 사용을 금지하였고 조선 역사를 왜곡시켜 일본의 역사에 편입시키기도 하였다. 황국서사·신사참배를 강제하여 정신적·종교적 일본화를 획책하였고 민족성 말살의 최후의 단계로써 창씨개명을 자행하였다. 일본인의 조선에의 이주와 조선인의 만주 방출을 통하여 조선에서의 혼거(混居)정책을 취하였고 결혼장려라는 미명하에 양 민족 간의 생물학적 혼혈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전시기에 노무자, 군위안부, 군인 등으로 강제 연행하여 전쟁 소모품화 함으로써 민족말살을 획책하기도 하였다. 이렇듯이 일제의 동화정책은 조선사회를 철저히 분열시킴으로써 비로소 가능한 것이었다. 전통사회가 근대적이든 봉건적이든 간에 그것이 하나의 독립된 민족공동체로서 갖는 동일성과 통합성 그리고 정체성을 모든 분야에서 해체시켜야만 했다. 프랑스의 식민지 통치 정책은 간접통치이건 직접통치이건 간에 사회경제적 수탈을 기본 목적으로 한 것으로 피지배민족의 민족 보존은 당연한 일로서 인정했으며, 민족문화운동에 대해서는 그것이 직접적인 독립운동이 아닌 한 방관적 태도를 취했다. 프랑스는 동화정책에 의거하는 직접통치방식을 취했다 하더라도 원주민의 민족보존운동에는 방관적이었으며, 민족문화운동에 대해서도 그것을 교육을 통해 통제하고 프랑스식 문화체제를 이식하려는데 그쳤다. 그러나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정책은 사회경제적 수탈에 그치지 않고, 이민족을 말살·소멸시켜 스스로의 제국 내의 종속신분층으로 만드는 데 중점을 둔 악랄한 성격의 것이었다. 특히 한민족에 대해서는 한국인이 민족의식을 가지는 것 그 자체를 두려워하여 그 민족정신을 없애기 위해 기만적인 ‘내선일체(內鮮一體)’란 슬로건 밑에 동화정책에 의거하는 철저하고도 무자비한 식민지 교육이 감행되었다.
결론
내가 생각하는 서양문명은 데카르트의 이성과 계몽주의의 인간 존엄성에 대한 신뢰로 대표되는 합리성과 이성적인 문화였다. 하지만 실제의 20세기는 폭력과 야만의 확대 과정이었고, 가장 문명화되었다는 식민지배 세력들이 식민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야만을 문명화하겠다는 구실로 사용한 도구가 폭력의 무기였다. 그 가운데 인간의 폭력성이 야기한 가장 불행한 사건으로 베트남 전쟁을 들고 있으며 권력을 유지하는데 있어 폭력은 필수적인 요소로 파악되었다.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라고 말한 중국의 혁명가 마오쩌둥의 견해는 폭력은 곧 권력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음을 함축한다.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사람들이 담론의 권력을 휘둘러진 국가를 명령하는 것처럼 보일 때 그 결과를 단순히 담론 내에서만 일어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실제 권력이 담론을 통해 수행되고 있고, 이러한 권력은 실제적인 결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사유노선의 원조는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이다. 니체는 사람들은 우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결정하고 그 다음 자신의 목적에 사실들을 맞춘다고 말한 바 있다.“궁극적으로 인간은 사물에서 그 자신이 사물에 의미를 부여한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모든 지식은 ‘권력의 의지’의 표현이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절대적인 진리나 객관적인 지식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어떤 특정의 철학이나 과학이론이 그 시대의 지식인들이나 정치적 권위자들, 지배엘리트계급들, 또는 지배적인 지식의 이론가들에 의해 수립된 진리의 설명에 어울리는 경우에만 그것을 ‘진리’로 인식하게 된다. 식민주의/제국주의자들의 폭력은 토착민에 대한 경멸과 그것의 정당화에 기초한 식민지 활동이 그들의 침략의 칼끝에서 진행되고, 그로 인해 보존되어야 할 유수한 곳곳의 세계문명마저 야만의 행위로 무수히 파괴되며 진보와 성취란 이름으로 포장된다. 이들은 오랜 식민 개척 역사를 통해 토착민들의 고유한 문화적 관습과 전통을 야만의 행위로 명명하고 이를 철저히 유린하는 행위를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참고문헌
- 규정과 지배. 마흐무드 맘나니 지음/최대희 옮김. 창비. 2017
- 김정락(외), 현대의 서양문화, 방송대 출판문화원,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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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7.11.23
  • 저작시기2017.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39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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