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 성례전 요약 (Sacrament of the Lords Su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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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성찬 성례전 요약 (Sacrament of the Lords Supper)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성찬 제정의 말씀(마 26:26-29; 막 14:22-25; 눅 22:19-20; 고전 11:23-26)은 ‘주님의 만찬’을 시작할 때 사용되며, 이 제정사의 봉독은 성찬 성례전에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개혁주의 예배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명령을 성찬 제정의 말씀으로 사용하고 있다.
개신교에서는 고전 11장24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는 말씀을 통해 ‘기념’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동방 정교에서는 ‘나를 기념하여 이 예를 행하라’고 하여 ‘예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질적으로 원어에서 ‘기념’보다는 ‘예식’을 강조한다는 사실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제정의 말씀은 주님의 만찬의 시작 부분, 집례자에 의해서 떡이 나누어지고 잔이 나누어질 때 중 한 곳에서 봉독할 수 있다.
결론
말씀과 성만찬의 조화를 생각해 보면, 말씀의 사역에서 선포의 주제는 그리스도이다. 그리고 성례전의 사역에서 경험되는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이다. 하나님의 교회의 말씀과 성례전의 사역이 끊임없이 역동적인 관계성을 유지해 왔고, 앞으로도 유지한다고 할 때에, \"강단과 식탁\"은 하나의 실체, 곧 그리스도를 가르킨다. James White, 김운용 옮김,「성례전」, (예배와 설교 아카데미, 2006), 24-25
기독론의 깊은 인식 없이 이 둘의 조화나 연대를 논하는 것은 항상 불완전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찬의 수용은 개신교 예배에 있어서 \'말씀의 신학\'을 강화해주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것을 위해 설교는 \'성령의 임재를 통한 그리스도의 임재의 사건\'으로 실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말씀에서 경험된 그리스도가 성찬을 통해서 재확인 될 때 살아있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 교회의 정체성에 대한 실마리는 교회의 말씀의 사역과 성례전의 사역, 혹은 예배 안에서 설교와 성만찬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성을 나타낼 때 풀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의 본질적인 두 사역이 그리스도를 매개로 동일한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할 때, 교회는 다원주의 문화 속에서 기독교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 적절하며 효과적인 대답을 줄 수 있다. 이성민, “말씀과 성례전의 조화”「호서신학」,「(호서대학교 지구촌 선교 신학 연구소, 1996), 49-51.
나가며
Mission을 가지고.....
부활의 주님이 교회에 오실 때에는, 바베트가 유틀란드 해변가에서 조그만 신앙공동체를 위해 생각해 냈던 잔치보다도 훨씬 더 큰 잔치를 여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마을의 남자와 여자처럼 우리는 간혹 우리 앞에 오셔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 모든 것을 주시는 그분이 누구인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같이 우리는 정원지기로 잘못 알 때가 있고, 엠마오로 가던 글로바와 그의 친구처럼 우리는 주님을 전혀 알아채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성찬상에 나아오는 많은 사람이 어떻게 보면 바베트의 손님들과 같은 모습일 수 있습니다. 성찬에 대해 별로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적대시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그 식사를 먹지 않으려고 심지어 오기 전에 미리 마음의 결심을 한 채 말입니다. 성찬에 대한 너무 진지한 태도를 보입니다. 또 타협할 수 없는 것으로 봅니다. 그들의 의도야 물론 선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베트의 잔치에서 보듯이, 잘못 알고 온 만찬 손님들에게는 그 잔치가 특유하며 대단히 소중한 것임을 권위있게 제대로 설명해 주고 증명할 잔치의 설명자 -그 영화에서는 장식을 단 군장교의 -가 필요합니다. 그러한 해석의 임무가 바로 설교자에게 위임된 것입니다.
우리가 명백히 말해 주지 않는다면, 과거의 오해는 계속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찬은 승리하신 어린양의 혼인잔치이기보다는 불쌍한 예수를 위한 장례식으로 계속 이해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이것을 행하라’ 명하신 성찬을 별로 내키지 않는 의무감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부활하신 주가 임하신 가운데 떡을 가져 감사하고, 떼어서 나누는 기쁨의 행위임을 알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랜 동안의 껄끄러운 감정도 성찬상의 교제로 인하여 사라질 것이고, 새로운 즐거움이 서로 안에서 느껴질 것입니다. 유약한 옛 신앙공동체는 마을 길거리에서 춤을 출 것입니다. 그때 성찬상에서 우리는 “보라, 내가 새 일을 이루리라, 옛 것은 지나갔다. 너희 안에 이미 새 것이 있다.”라고 선언하는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참고문헌
1. 동양서적
은준관, 「실천적 교회론」,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9)
정장복, 「예배학 개론」, (종로서적, 1985)
민장배,「예배학」, (세화출판사, 2009)
장성우, 「성례전」, (대전: 한성신대출판부, 1992)
독일 성서 공회, 「관주해설 성경전서」, (서울: 대한성서공회, 2005)
박태식, “예수의 최후의 만찬”「종교신학 연구」, (서울: 서강대학교 종교신학 연구소, 1996).
정장복, “사도전승에 나타난 성찬 성례전 연구의 현재적 조명”「장신논단」(서울: 장로회신학교, 1997)
이성민, “말씀과 성례전의 조화”「호서신학」, (호서대학교 지구촌 선교 신학 연구소, 1996).
한국 기독교사 연구회,「한국 기독교의 역사」, (서울: 기독교 문화사, 1989).
장성우, “성만찬 떡 재료에 관한 고찰”, 『연구논문집』, (한성신학대학, 1997).
2. 번역서적
White James, 김운용 옮김,「성례전, “Sacraments as God\'s Self Giving”」, (예배와설교아카데미, 2006)
월레스 로널드 S. 지음 정장복 옮김. 「칼빈의 말씀과 성례전」,(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스투키 로렌스 훌 , 김순환 옮김,「성찬, 어떻게 알고 실행할 것인가」, (서울: 대한 기독교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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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9.02.02
  • 저작시기20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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