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새의 선물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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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은희경 새의 선물을 읽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자기애는 타자 부정에 그치지 않고 타자의 도구화로 진행되는 것이다. 세상에 홀로 서 있는 단독자로서의 자기인식, 그들의 비밀을 다 알고 있다 자처하는 분리된 내면의 ‘바라보는 나\'의 독자적인 파악과 결단은 결국 마주보는 수평적 관계에서 타자를 한 차원 밑에 두고 관찰하고 도구화하는 ‘타자의 사물화’로 이어지게 된다.
욕탕 속에 뚱뚱한 몸을 척 부려 놓고 누워있는 모습이 어쩌면 삶은 밤 속에 들어 있는 살진 밤벌레 같기도 했다.
이모가 두 팔로 머리를 싸안고 똥개처럼 옆 걸음을 치면서 슬금슬금 정지로 들어오자마자.
그 말에 반색을 하는 이모의 표정은 밥그릇을 보고 할머니의 치마꼬리에 달려드는 해피와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 흔들리는 꼬리 때문에 해피는 제 감정을 절대 감추지 못한다. 이모의 벌어지는 입도 마찬가지이다.
목욕을 마친 이모는 물에서 씻어 막 건져낸 자두처럼 싱싱하다.
밤에 돌아다니는 계집들은 사내들한테는 익혀놓은 음식이라고 그렇게 말을 해도 들어먹어야 말이지.
작중화자인 진희에게 있어 타자의 존재는 벌레 음식 똥개 등의 사물에 비유된다. 특히 여기서 사물에 비유되는 타자가 모조리 여성이라는 점은 특이하다. 유사 이래, 남성의 타자로 존재해 왔던 여성이라는 존재가 이제 타자의 타자로서 서열화 된 채로 자리매김 되는 것이다. 담임선생님이던 노처녀의 모습은 ‘살진 밤벌레’로, 이모는 ‘똥개’로 작중화자에게 비춰진다. 선생님을 벌레로 격하시키는 그녀의 비유법은 이모에 관한 한 더욱 잔인하다. 진희의 눈에 비친 이모는 행복할 때나 불행할 때 그 어느 경우에도 ‘똥개’를 벗어나지 못한다. 행복할 때는 입을 벌리고 꼬리를 흔드는 해피로, 겁먹었을 때는 옆걸음 치는 해피로, 이모의 보조관념은 오로지 개 한 마리에 고착된다.
이모가 개의 비유에서 겨우 벗어났을 때,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불행한 운명의 비유이다. ‘씻어 막 건져낸 자두’, ‘익혀놓은 음식’이라는 표현은 결국은 누구에게 먹히고야 말 그녀의 운명을 암시한다. 남성 중심적인 지식과 권력의 체계, 그 대상물로서의 여성의 육체라는 양분법이 이 비유법에서 고스란히 실천되는 것이다. ‘생각함으로써 존재하는’ 유일한 인간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는 화자의 단정은 타자를 조정하려는 욕망으로 이행된다. 인간을 직접 조정하려는 화자의 욕망은 의식 속에서는 선생님의 화형식으로, 실천형으로써는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친구를 똥통에 빠뜨리는 것으로 드러난다.
상상 속에서 자행해버린 그 대담한 화형식 이후였다... 나의 잔혹성은 상상력 속에서 맹렬한 기세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음모에 사정없이 불을 놓았다.
그동안 삶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나의 위악적인 실험에 장군이는 언제나 자발적으로 생체를 제공해왔다.
지식, 교육의 상징인 선생님에게서 음모를 빼내어 불태우는 화자의 상상 속에는 교육자의 위선에 대한 통쾌한 응징이 숨어있다.
작중화자는 그녀를 좋아하는 장군이를 실험대상으로 두 번의 실험을 한다. 실험 목적은 장군 엄마의 자만심, 즉 유복자를 키우며 그 아들을 장군으로 부르는 과부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는 것이다. 그 실험은 일차적으로 아들을 똥통에 빠지게 하고 다음으로 그 어머니가 그것을 씻게 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장군이로 하여금 과부인 자신의 어머니와 노총각인 최 선생님의 정사장면을 목도하게 하는 것으로 주인공의 실험은 절정에 이른다. 장군이를 도구로 하여 그 엄마의 자만심과 허위의식을 철저하게 벗겨내는 것이다. 실험 주체인 나는 타자의 치부를 드러내기 위해 또 다른 화자를 고용한 셈이다. 그런데 그 두 타자가 모자관계라는 데 실험의 비극성과 잔혹성이 있다.
그렇게 그악스럽게 개들의 교미를 중단시켜놓고 시원하다는 듯이 대야를 탈탈 털던 장군이 엄마는 지금 자기의 신방에 찬물을 끼얹은 아들에게 욕을 퍼붓고 있었다.
저 지경으로 살면서 양잿물 한 번 마시지 않는 것이 차라리 이상했다.
타자(광진테라 아줌마)의 생활을 ‘저 지경’으로 비하하면서 그에 ‘양잿물 한 번 마시지 않는 것이 차라리 이상했다’는 판결을 내리는 것에서 주체의 권력을 또 한 번 드러낸다. 스스로 ‘이 지경’에 이른 나는 ‘저 지경’의 타자를 마음껏 능멸한다. 타자를 평가하는 데 있어 ‘각성된 나 / 미각성된 타자’라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선언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동네 사람들의 모든 비밀과 속내를 꿰뚫고 있다고 말하는 유아독존의 화자는 타자와의 관계를 수평선상에 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위에 위치하고 그 아래를 보고 있다는 식으로 보기 때문에 애초에 그 소통의 창구는 막혀 버리고 만다. 결국 세상과의 소통 단절로부터 시작된 자아 분리는 냉소적인 세상의 관찰을 거쳐, 다시 그 소통의 창구를 막아버리는 순환의 고리로 연결되는 것이다.
Ⅴ. 나가며
은희경에 대해 누군가는 ‘자기방어의 도전적인 처세술’이라고 평하며 진정한 문학, 진정한 글쓰기로 대중을 인도할 매개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하였다. 또한 젊은 나이에 등단한 은희경에게 문학적 성숙이 결여되었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은희경의 글쓰기 방식, 즉 냉소농담탈페미니즘 등 나름의 70~80년대를 탈피한 방식이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 또한 지나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임을 볼 때, 지적되는 부분 중 일부는 개선될 수도 있겠지만, 그녀의 작품 <새의 선물>과 같이 60년대의 인간 군상을 60년대가 아닌 90년대의 눈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개성적 시각 또한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Ⅵ. 참고 문헌
김주연,「모순과 그 힘 : 은희경 론」, 동서문학, 1997.
방민호評,「성장, 죽음, 사랑, 그리고 통속의 경계 : 은희경신경숙공지영의 소설」, 동서문 학, 1998.
작가 은희경 http://100.naver.com/100.nhn?docid=701201
http://cafe.naver.com/readbook.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266942
은희경,『타인에게 말 걸기』, 문학동네,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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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9.08.18
  • 저작시기2019.8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109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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