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역사분야에서 민의식의 성장, 소통론(정조의 소통, 정조의 토지개혁안에 나타난 민본의식, 정약용의 민권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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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보고서] 역사분야에서 민의식의 성장, 소통론(정조의 소통, 정조의 토지개혁안에 나타난 민본의식, 정약용의 민권의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문제의식
2. 민의식의 성장
1) 정조의 소통
2) 정약용의 토지개혁안에 나타난 민본의식
3) 정약용의 민권의식
3. 비판 (결론 및 전망)

본문내용

의해 추대되는 존재로서 민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또한 그는 백성들이 토지로 인해 고통 받는 모습을 보며 토지개혁안을 주장하였는데, 이는 토지의 소유는 왕이 하지만 이는 기득권의 토지를 몰수하기 위한 명분일 뿐 실질적 소유는 백성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민의식이 상당 부분 성장하였음을 보여준다. 통치의 근간으로서 누구보다 민에 대해 애정을 갖고 그들과 소통하고자 했던 정조와 민을 위한 세상을 꿈꾼 정약용은 조선의 민의식 성장에 기여한 대표적인 인물로서 역사적으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민의식의 성장은 매우 이례적이었으며 지속적이지 않았다. 특히 정약용이 주장한 토지개혁안은 조선 시대에 시행되지 않았다. 정약용은 귀향을 간 후 학문에 정진하며 새로운 세상, 더 나은 조선에 대한 많은 학문적 업적을 남겼으나, 이는 당시 사회에서는 결코 실행될 수 없었다. 이는 당시 조선이라는 사회에서 민의식이 성장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민의 삶을 바꿀 만큼의 영향력을 갖지 못하였음을 의미한다. 이는 왕정국가가 가질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한계이며, 518년의 조선 역사에서도 이를 내재적으로 극복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참고문헌
- 한상권, 2012, 「순암 안정복의 사회사상 - 민에 대한 인식을 중심으로」,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한상권, 2009, 「갈등과 소통 : 1779년 정조의 영릉 거둥」, 「국학연구」 14, 한국국학진흥원
- 한상권, 2009, 「백성과 소통한 군주, 정조」, 「역사비평」, 역사비평사
- 김용헌, 2001, 「정약용의 민본의식과 민권의식」, 「퇴계학」 12, 안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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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22.02.09
  • 저작시기2022.0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16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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