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 스며든 일제 잔재에 대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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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현대 사회에 스며든 일제 잔재에 대한 탐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1. 연구 배경
2. 연구의 목적
3. 연구 방법과 제한점

Ⅱ. 이론적 배경
1. 일제강점기의 시대적 배경
2. 일제강점기의 문화적 측면의 변화

Ⅲ. 일제강점기의 잔재가 현재까지 남아있는 모습
1. 언어
2. 놀이 문화
3. 유곽 문화

Ⅳ. 결론
1. 연구 결과
2. 현재 실태에 대한 개선 방안
3. 연구의 가치

V. <참고문헌>

VI. 【붙임】 … 일제강점기의 잔재에 대한 인식 조사 설문지

본문내용

서 유래한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고무줄 놀이는 ‘시모노사리’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고무줄 놀이는 사전 상에 한국놀이라고 분류 되어 있고 사전 어디에도 일제강점기에 대한 언급은 찾을 수 없다. 사전 상에 기록이 되어있어도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예 사전에 기록이 되어있지 않은 경우도 있는 것으로 보아 문제가 상당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어린 시절에 향유했던 놀이들에 비해 화투, 당구는 성인들이 주류가 되는 놀이이다. 명절에 친척들끼리 화투를 하는 모습, 당구장에서 당구를 두는 모습 등을 보면 이 놀이들이 우리의 삶에 매우 밀접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또한 화투는 인터넷으로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종의 도박으로도 전락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고 당구는 아예 단독적으로 당구장이 존재하여서 많은 사람들이 당구장을 즐겨 찾는 모습으로 보아 이 두 놀이가 상업적인 부분에서도 매우 활성화 되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과연 화투와 당구가 일본의 문화라는 것을 알고 하는 것일까. 이것에 대해서도 인식의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고등학교 학생 324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대부분의 학생들이 ‘화투’와 ‘당구’를 주변에서 쉽게 접한다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놀이 문화들이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로 유입된 놀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약 86%의 학생들이 잘 알지 못하였다. 화투와 당구와 친근할 뿐이지, 이것들이 우리나라의 전통 문화가 맞는지, 다른 나라에서 유래한건지 등의 그 이상의 인식에 대한 정도는 매우 낮다는 심각성을 보여주었다.
화투의 경우에는 인터넷 사전에 ‘이 화투는 일본에서 들어온 까닭으로 일본풍이 짙다 하여 항일·반일의 민족적 감정으로 일제 말기와 광복 후 몇 해 동안은 거의 하지 않았으나 그 뒤 조금씩 사용되다가 현재는 가장 성행하는 대중놀이로 정착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화투 [花鬪]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라고 언급 되어 있다. 사람들은 ‘대중놀이’라고 언급 되어있는 이 화투가 초반에는 사람들이 항일의 감정으로 몇 해 동안은 거의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또한 다시 성행하였다는 점으로 보아 화투가 일본의 문화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물론 화투를 즐겨 하는 사람들 중 몇몇은 화투가 일본으로부터 유래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화투를 잘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화투가 일본의 문화라는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만이 문제가 아니라 과거에 화투가 도박으로 전락하여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대부분이 모른 채 이 피해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당시‘화투’가 도박으로 전락했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다는 사실을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약 14% 정도의 학생들만 이에 대해 알고 있었다.
19세기 말엽이 되자 일본인들은 개항장의 여러 곳에 화투국(花鬪局)을 설치했고, 조선인들은 여기에서 돈을 잃는 경우가 허다했다. 황현(黃玹)은 \'매천야록\'에서 \'일본인이 각 항구에 화투국을 설치하여 도박을 했는데, 한 판에 많은 돈을 따고 잃었으므로 파산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고 한탄했다. 친일파들의 화투 도박도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었다. 그들은 이완용의 집에 모여 자주 화투판을 벌였으며, 을사오적 중 한 명인 이지용은 희대의 화투대왕으로 유명했다.’ [부산일보], 류승훈의 부산 돋보기 - 개항과 화투, 2016.2.24.
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화투를 좋은 문화라고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개선하지 않은 채 정확하지 못한 인식을 바탕으로 현재까지도 화투를 즐기고 있는 것은 큰 문제로 삼을 수밖에 없다.
당구의 경우, 현재 많은 사람들이 당구를 오락의 목적으로 접하고 있기 때문에 당구장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장소이다. 이러한 당구장에서 현수막이나 액자 형태로 흔히 내걸려 있는 당구 병법을 볼 수 있다. 당구 병법이란 당구장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상황을 반어와 과장으로 담아낸 글모음이다. ‘가급적 후꾸루를 쳐서 상대방의 기를 죽인다. 수시로 말 겐세이를 해서 상대방의 정신을 흐트린다. 후꾸루는 필히 장타로 연결한다. 장타 치고 난 후 완벽한 디펜스를 한다. 이긴다고 생각하는 게임은 차(음료수)를 주문한다. 큰 게임에 승리한 후 동전계산은 보조한다. 철저한 스포츠정신에 입각하여 겐세이와 일치기를 병행한다. 어려운 공은 긴 인타발로 상대방의 심기를 흐트린다. 상대방의 삑사리는 박장대소로 응수한다. 돈이 걸린 게임에는 친구 및 부모형제도 버린다.’ 헤럴드경제, 조용직 기자, 당구장 필수 상식 ‘당구 병법’ 순화하자, 2014.4.5.
같은 것이 그 예시이다. 여기서 ‘후꾸루’란 입김으로 분다는 의미, ‘겐세이’란 견제의 의미, ‘디펜스’는 방어의 의미, ‘인타발’은 시간적인 간격의 의미, ‘삑사리’는 실수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 예시에서 일본어가 빈번하게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당구병법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 약 76%의 학생들이 당구 병법 내에 들어있는 일본어가 거슬린다고 답해주었으나 이것을 당구가 일본의 문화였다는 사실과 연관 짓는 학생들은 전혀 볼 수 없었다.
이제까지는 처음부터 일본에서 유입되어서 향유되었던 놀이들을 다루었다면, 지금부터는 우리나라의 전통놀이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리나라의 전통놀이와 일본의 전통놀이 간에 매우 유사한 점이 많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전통놀이 마저 일본의 놀이와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의 술래잡기와 일본의 오니곳코, 우리나라의 공기와 일본의 오테다마, 우리나라의 팽이치기와 일본의 코마 등 이름만 다른 같은 놀이라고 해도 될 만큼 매우 비슷하다. 그러나 이것은 일제강점기 시대와 관련 없이 우리나라와 일본이 같은 동아시아에 위치한 나라일 뿐만 아니라 서로 인접해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므로 우리의 고유의 놀이를 일본의 문화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또한‘쎄쎄쎄’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손뼉치기의 경우에는 이 \'쎄쎄쎄\' 란 말이 일본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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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24.01.18
  • 저작시기202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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