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 전주 완주지역 답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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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진안 전주 완주지역 답사자료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진안지역
진안개관 · 마이산 · 탑사 · 마이산과 일월오악도 ·

Ⅱ. 전주 · 완주지역
전주개관 · 완주개관 · 화암사 · 송광사
위봉산성과 위봉사

본문내용

아미타여래와 약사여래가 안치되어 있다. 전면5간, 측면3간의 팔작지붕 다포계 건물로서, 「대웅전(大雄殿), 의창군서(義昌君書)」, 라는 편액(扁額)이 걸려 있다. 의창군은 선조의 8남이며, 광해군의 아우로서, 인조 15년(1636)에 세운 송광사개창비(松廣寺開創碑)의 비문(碑文)을 썼다. 아마도 이때에 쓴 것으로 보이며, 이는 대웅전 건립년대에도 참고가 된다. 그러나, 「성상즉위구년정사육월초이일기(聖上卽位九年丁巳六月初二日記)」라는 상량문(上樑文)이 있는바, 이는 철종 8년 정사(丁巳)인 것 같다. 건물내 서벽에는 불탱화(佛幀畵)가 있는데, 「함풍칠년정사십일월초육일(咸豊七年丁巳十一月初六日)」이라 적혀있다. 이는 건물 중수 년대인 철종 8년이다.
3) 송광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 보물 1247호
송광사 대웅전에는 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왼쪽에 약사여래좌상, 오른쪽에 아미타여래좌상을 봉안하고 있다. 삼존불 모두 나발의 머리 위에 육계가 있고 이마에는 백호가 있다. 얼굴 모습은 원만하며 법의는 양쪽 팔에 걸쳐 흘러내리면서 무릎을 덮고 있다. 석가여래좌상은 항마촉지인을 짓고 있고, 약사여래좌상은 오른손을 어깨높이 가까이 들고 엄지와 중지를 잡고 있으며, 왼손은 무릎에 놓아 약합(藥盒)을 들고 있다. 아미타여래좌상은 오른손을 어깨 가까이 들어 엄지와 중지를 잡고 있으며, 왼손은 무릎에 놓아 엄지와 중지를 잡고 있다.
삼존불에서 복장 유물이 수습되었는데 석가여래좌상에서는 은으로 만든 원통형 사리함이, 약사여래좌상과 아미타여래좌상에서는 놋쇠로 만든 사리함이 발견되었으며, 길이 286㎝, 너비 43.5㎝의 조성기 1매씩이 발견되었다.
조성기 첫머리에 ‘숭정14년 숭덕6년 세차신사 6월 29일 불상조성시주목록(崇禎十四年 崇德六年 歲次辛巳六月二十九日 彿像造成施主目錄)’이라 하여 1641년(인조 19)에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존불로는 가장 크고 조각이 우수하며, 역사적 배경과 함께 승장인 각성(覺性)의 지휘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이다.
5. 위봉산성과 위봉사
5-1. 위봉산성
2006년 4월 6일에 사적 제471호로 지정되었다. 1675년(숙종 1)에 축성하고, 1808년(순종 8)에 관찰사 이상황(李相璜)이 중수하였다. 유사시에 전주 경기전(慶基殿)에 있는 태조의 영정과 시조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한 것으로 동학농민운동 때 전주부성(全州府城)이 동학군에 의해 함락되자 태조의 영정과 시조의 위패를 피난시킨 일이 있다.
당시의 규모는 너비 3m, 높이 4~5m, 길이 16㎞이며, 서·동·북 3개 소의 성문과 8개의 암문이 있었고, 성 안에는 4~5개의 우물과 9개의 못을 팠다. 지금은 성벽 일부와 전주로 통하는 서문만이 남아 있는데, 문 위에 있던 3칸의 문루(門樓)는 붕괴되어 없어지고 높이 3m, 너비 3m의 아치형 석문만 남아 있다. 전주 8경의 하나로 성 안에는 위봉사가 있고, 북방 수구처에는 위봉폭포가 있다.
<위봉폭포>
<위봉산성>
5-2. 위봉사(圍鳳寺)
<위봉사 전경>
가) 연혁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이 절은 604년(무왕 5)에 서암대사(瑞巖大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하지만 1868년(고종 5)에 보련(布蓮)이 쓴「극락전중건기」에 의하면 창건연대는 분명하지 않다고 전제한 다음, 신라 말기에 최용각(崔龍角)이라는 사람이 이곳에 와서 보니 세 마리의 봉황새가 절터를 에워싸고 싸움을 하므로 위봉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1359년(공민왕 8)에는 나옹(懶翁)이 이절의 주위가 처음 보는 경승지임을 알고 크게 중창하였는데, 당시의 규모는 28동이었고 암자도 10동이나 되는 대가람이었다. 1911년에는 선교31본산(禪敎三十一本山)의 하나로 전라북도 일원의 46개 사찰을 관할하였으나, 여러 번의 화재로 인하여 지금은 그 규모가 매우 축소되었다. 1990년에 위봉선원을 짓고 삼성각을 보수하였다. 1991년에는 나한전을 중건하고 일주문을 세웠다. 1994년에는 극락전을 건립하여 아미타여래상을 봉안하였으며, 2000년에는 범종각을 지었다.
나) 사찰의 배치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인 보광명전(普光明殿)과 극락전· 관음전· 나한전· 삼성각· 위봉선원· 나월당(羅月堂)· 일주문· 요사채가 있다. 세조 때 포효대사가 지은 「보광명전현판기」에는 이 절의 당우 수가 32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 중 보광명전은 보물 제608호로서, 내부에는 중앙에 개금(改金)한 석가여래좌상이 안치되어 있고 좌우에 여러 구의 입불(立佛)이 있는데, 이 중에는 육환장을 든 지장보살이 있다. 보광명전 내부의 천개(天蓋)가 정교하고, 거대한 후불탱화가 있으며, 뒷벽에는 문이 장치되어 있는데 열어보면 높이 3m 정도의 인자하고 아름다운 백의관음상(白衣觀音像)이 있다. 이는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의장(意匠)이다. 또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된 요사채는 조선말에 건축한 것으로 익공식아자형(翼工式亞字形)이다. 이 밖에도 나옹이 중건할 때 축조한 삼층석탑이 있고, 절에서 위봉폭포로 가는 300m 지점에 벽허당(碧虛堂) 등의 부도(浮屠) 4기가 있다.
다) 보광명전 : 보물 제608호
빛을 두루 비춘다는 뜻을 가진 이 건물은 아미타삼존불상을 모시고 있다. 건축 수법으로 보아 17세기경에 지은 건물로 추정하며 ‘보광명전(普光明殿)’이라 적힌 현판은 조선 순조 28년(1828)에 쓴 것이라고 한다.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3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의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건물 안쪽은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우물천장으로 꾸몄다. 불단 위쪽으로 운룡(雲龍)과 여의주 모양의 구슬을 장식한 닫집을 만들어 놓아 불상에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안쪽 뒷벽에 그린 백의관음보살상을 비롯한 여러 불화와 비교적 채색이 잘 보존된 금단청은 차분하고 아늑한 법당 안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우수한 옛 채색기법과 조선시대 목조 불전건축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되는 문화재로 평가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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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24.02.24
  • 저작시기20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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