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지역 유적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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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산청지역 유적답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전)구형왕릉
Ⅱ. 단성에서의 농민항쟁
Ⅲ. 단성향교
Ⅳ. 문익점과 면화시배지
Ⅴ. 단속사(斷俗寺)터
Ⅵ. 남명 조식과 산천재
Ⅶ. 내원사(內院寺)

본문내용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에는 연꽃무늬와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위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하단까지 깨져 약 3분의 1정도가 없어져 버렸다. 대좌 중앙의 구멍에 있었던 사리호(舍利壺) 표면에 기록된 글에는 신라 혜공왕 2년(766)에 비로자나불상을 조성하여 석남암사에 모신다는 내용이 있다. 이 불상은 비로자나불상의 가장 빠른 조성 예로 조각사 편년 및 사상사 연구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 영태2년명납석제사리호 : 국보 제233호
영태2년명납석제사리호 표면에 음각된 명문을 통해 정확한 제작연도가 영태2년(신라 혜공왕 2년 : 766년)이라는 것이 밝혀진 이 사리호는, 경남 산청군 지리산 남쪽 해발 900m에 위치했던 폐사지 석조비로자나불의 대좌 중대석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체부에는 3조의 세선을 돌렸으며, 정간(가로, 세로줄)없이 각 행이 8자∼11자로 구성된 15행의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영태2년 병오7월2일 법승, 법연의 두 스님이 과거를 받들어 두온애랑을 위하여 석조 비로자나불을 이루고 무구정광다라니경과 함께 석남암 관음암에 봉안하였다. 두온애랑과 스님들 그리고 이것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의 삼악(탐냄, 성냄, 어리석음)도의 업보가 없어지고 부처가 되기를 원한다.\"는 명문의 내용을 통하여 사리호와 불상의 정확한 제작 년대와 내력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불상대좌석에 법사리를 봉안한 최초의 사례로 알려졌으며 비로자나불이 우리나라에 조성된 연도를 기존의 9세기 보다 1세기 앞당기게 된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표기 자체가 이두문으로 이루어짐으로써, 불교미술과 더불어 어문학 등의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높이 : 14.5cm 몸통지름 : 12.3cm .
* 비로자나 개념과 유래
비로자나불은 밀교의 금강계(金剛界) 오불(五佛)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중앙에 위치하는 것으로 대승불교의 중심 경전인 『화엄경(華嚴經)』이나 『범망경(梵網經)』의 주존불로 등장하며 『대일경(大日經)』, 『금강정경(金剛頂經)』과 같은 중기밀교 계통의 경전에서도 본존불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범어인 Vairocana는 광명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광명이 모든 곳에 두루 비치며 그 불신에는 모든 세계를 다 포용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즉 비로자나를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의 중심을 이루는 광대한 세계관의 주체라고 말한다. 이러한 진리 그 자체인 법신을 불상으로 형상화 한 비로자나를 모신 전각을 대적광전(大寂光殿) 혹은 대광명전(大光明殿)이라 부른다.
비로자나불의 성립과 기원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지만 광명신(光明神), 태양신(太陽神)으로써의 성격에 입각해 인도 고대 신화에 나오는 광명의 신인 아수라(Asura)의 이미지를 계승하여 등장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아수라는 고대 페르시아 조로아스터교의 최고의 광명신인 Ahura Mazda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한다. 비로자나불은 초기불교경전인 『雜阿含經(잡아함경)』등에 서도 태양을 상징하거나 아수라왕으로서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비로자나불의 개념은 태양이 지닌 특성에 비유하여 ‘온 세계의 모든 것을 두루 비추어 어둠을 없애주고 그 광명은 항상 빛나고 생멸하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고대 인도에서 유래되었다. 이는 곧 비로자나불의 지혜의 빛이 세상의 모든 것을 밝게 해준다는 것을 나타내며 무한한 지혜를 의미한다.
<금강계 밀교 대일여래>
『화엄경(華嚴經)』에서의 비로자나불은 설법의 주체는 아니었는데 『대일경(大日經)』, 『금강정경(金剛頂經)에 이르러 직접 설법을 펼치는 경주로써 등장한다. 즉 그전까지 이루어져왔던 법신불의 개념을 좀 더 발전시켜 단순한 철학상의 원리나 이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비로자나불이 제법(諸法)의 근본이며 모든 생명의 근원임을 명확히 밝혔으며, 관념상의 이불(理佛)에 불과했던 비로자나불을 구체적인 모습으로 그려낸 것이다. 밀교에서의 비로자나불, 즉 대일여래는 보살형으로 표현되는데 금강계의 대일여래는 지권인을 하고 있으며 태장계의 대일여래는 법계정인을 하고 있다.
<태장계 밀교 대일여래>
우리나라에서는 8세기 중엽 화엄사상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불교 문화권에서 최초로 지권인의 여래형 비로자나불과 보살형 비로자나불의 도상이 각각 등장하였으나, 이후 보살형의 비로자나불은 거의 만들어 지지 않고 여래형 비로자나불상이 주류를 이루는 독특한 전개를 보인다 한다. 이러한 이유는 우리나라의 비로자나 불상이 화엄종을 바탕으로 하여 조성되었기 때문인데, 밀교의 지권인 비로자나불상의 도상을 차용하여 화엄종 본존으로써의 비로자나불을 조성한 것이다. 그래서 통일신라시대 9세기 무렵부터 화엄종의 주존불로서 봉안되기 시작한 비로자나불상은 화엄교리를 바탕으로 성립된 선종에서도 역시 주존불로서 봉안되어 통일신라 이래 고려시대까지 한국불교의 주존격으로 주류를 형성하며 활발하게 조성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밀교가 크게 성행하지 않아 대일여래의 비로자나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비로자나불상의 도상특징을 요약하면,
첫째, 조성사상은 화엄사상을 위주로 선과 밀교사상이 가미되어 있고, 화엄종의 주존불이며 선종과 밀교의 주불도 된다.
둘째, 수인은 지권인 협시보살은 문수 보현보살이다.
* 통일신라시대 비로자나 불상
통일신라시대의 비로자나불상이 밀교의 영향아래 성립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지권인 비로자나불상이 밀교의 대일여래가 아닌 화엄종의 주존으로 언급되기 시작하였으며 한국 비로자나불의 성립시기에 대해서는 중기밀교경전인 『금강전경』이 중국에서 750년에 번역된 것에 의거하여 한국에서 9세기 초기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보았으나, 1983년 경남 산청군 내원사(內院寺)의 석남암사(石南巖寺)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사리호의 명문을 통해 영태2년에 조성된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한국비로자나불상의 성립시기가 기존보다 한 세기나 올라가 8세기 중엽에 이미 성립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를 계기로 한국 비로자나불상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여래형 지권인 비로자나불상으로써는 한국 최고의 예이자, 중국, 일본에서도 그 유래가 없는 동아시가 최고의 예로, 여래형 지권인 비로자나불상의 도상이 한국 고유의 독창적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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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24.02.25
  • 저작시기20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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