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실학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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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실학사상의 발생요인
2. 실학자들의 관심분야
3. 실학의 성격에 대한 논의
4. 본인의 입장
맺 음 말

본문내용

심지어 신분제의 붕괴가 절정에 올랐다는 소위 조선 후기 신분제 붕괴론자들이 강조하고 있는 18∼19세기인 조 선 후기에 있어서도 시대이념은 거의 유일한 儒敎에 두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들 신분제 붕괴론자들은 근대적 성 격의 하나인 평등사상이 조선 후기에도 맹아적 발아가 있었다고 보고 그러한 근대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조선의 신분제를 강력하 게 비판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공노비의 해방, 노비신공의 감면, 노비종모법의 시행 등으로 실학자의 개혁안이 부분적이 지만 채택되어 그 실시를 보게 되었다는 것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일련의 조치들은 신분제 붕괴 내지는 신분 해방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유학의 이상 사회로의 구현인 민본정치로의 복귀 속에서의 민의 평등을 이야기한 것이지 , 다시 말해서 이른바 '君君臣臣父父子子'로 대표되는 유교이념의 실현을 염원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당시 민의 대리자인 임금 마저도 노비를 양반으로 올려준다든지 평민을 양반으로 올려준다든지 하는 등의 행위는 절대로 할 수없었음을 밝혀 둔다.
(3) 근대지향적 성격
실학자들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민본적 이상사회를 지향하고 있었으나 그들의 여러가지 제도적 개혁 론과 商工장려, 기술수용론 등은 결과적으로 근대지향적인 성격을 내포하고 있었다. 경세치용학파의 토지제도 개혁론에서 근대적 성향이 표출되었고 이용후생학파의 상공업 및 화폐경제의 발달촉구라든가 경영의 합리화, 외국무역의 주장 등에서 근대지향성이 강하게 나타난 것이었다. 또한 士農工商의 분업과 전문성, 賤業觀·末業觀을 부정하는 직업윤리관의 설정 등은 등질적 국민경제 의 성립을 지향한다는 면에서 근대적인 요소이었다. 이러한 여러가지 주장들은 韓末 개화파 사상가들에게 직접 간접으로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실학의 근대적 요소가 더욱 드러나 보이게 한 것이었다.
맺 음 말
이상으로 조선 후기의 실학에 대한 이해증진을 위해 실학의 성격을 중심으로 실학 사상의 발생 요인, 실 학자들의 관심분야와 실학의 성격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고 先學의 견해들을 종합한 본인의 입장을 전개하였다.
결론적으로 실학은 조선 후기에 당면한 사회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당시 선구적 지식인들에 의해 전개된 유교적 이상 사회로의 복귀를 바라는 염원에서 이루어진 학문으로써 역할) 유교적 이상정치인 민본정치와 왕도정치 로의 시대정신의 精華 차원이었지, 조선 후기 신분제 붕괴설에 입각한 신분제 철폐론 등을 주장한 실학자는 없었다고 본다.
을 하였으며, 후대의 개화 사상과 애국계몽운동의 사상적 연원을 이루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 문헌
김영호,「실학」『한국사론 4 (조선후기)』에 所收, 국사편찬위원회,
1986
반제동,『조선시대사론강』, 서울, 교문사, 1995
최완기,『조선시대사의 이해』, 서울, 느티나무, 1992
유형원외, 강만길외 역,『한국의 실학사상』, 서울, 삼성출판사, 1994
주홍성·이홍순·주칠성 공저, 김문용·이흥용 역『한국철학사상사』,
서울, 예문서원,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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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02.04.13
  • 저작시기2002.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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