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증과학의 철학적 기초

목차

I. 들어가는 말: 서양철학의 주류(主流)
II. 실증과학을 정초하는 철학의 연원: 존재론
III. 실증과학을 정초하는 철학적 사유내용
IV. 맺음말

본문내용

근대의 자연과학은 이 공간적 측정내용에서 물리적 공간 요소마저 사상하고 그것을 그저 양(量)으로만 표상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 양을 수(數)로 표현하며 양적 관계를 수학적으로 정식화하게 된다. 인과적 기계적 법칙들은 모두 양적 내용을 담는 공식으로 표현되는데, 그 공식은 더 나아가 다시 수학적 관계를 수용할 수 있는 것이다. 자연법칙을 수학적 관계로 정식화함으로써 우리는 과학적 지식을 극도의 정확성을 갖는 지식으로 정련(精鍊)시킬 수가 있고; 이렇게 함으로써 그 법칙에 의해 파악되는 현상 및 사태를 사유공간 속에서 매우 용이하게 변경, 조작할 수가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실제로 경험해 보지 않고도 엄밀한 관찰과 실험을 한 것과 다름없는 경험내용을 추정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견을 가리키는 것이요, 지식의 유용성은 여기서 극대화된다. 실증과학이 그 탐구대상 및 그에 대한 이론을 수학화가 가능한 물리적 탐구대상 및 그에 대한 이론으로 환원시키는 이유 또는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여기서 우리는 근대 실증과학이 딛고 서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철학적 전제와 만나게 되는데, 자연에 관한 감각적 경험의 대상(혹은 내용)을 수학적 관계 또는 법칙 속에 담을 수 있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얼핏 보면, 감각적 경험 내용이란 외부의 사물에 대한 잡다하고 무질서한 임의적인 것이요, 수학적 법칙이란 엄밀한 필연성을 갖는 사유형식인 것같은데, 어떻게 전자가 후자에 수용되는 걸까?
우선 우리는 수나 수학적 관계나 법칙이 그저 사유의 대상에 그치는 사유내용 혹은 사유의 산물이라고 보아서는 안되고 오히려 그 자체 독자적으로 존립하는 어떤 관계로 보아야 될 것같다. 그것이 사유의존적 내용이나 산물로 오인되는 이유는, 그것이 실질적 세계 속에서 이 세계에 대한 감각적 경험과 더불어 주어지며 이를 통해서 인식되기보다는, 오히려 실질적 세계에 대한 경험을 떠난 사유 자체 속에서 인식되기 때문이다. 세계경험 가운데서는 수학적 인식이 도리어 방해받는 경우가 많다. 수학적 대상이 사유의 산물이 아니라 독자적 관계라는 것은 우리의 수학적 사유가 왕왕 오류를 범하고 이를 교정한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우리의 주관적 사유가 임의로 거스를 수 없는 완고한 저항이 거기에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의 독자성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경험 속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해서 수학적 대상이 실질적 세계와 무관한, 그로부터 유리되어 있는 것은 또한 아니다. 수학적 관계나 법칙은 실질적 세계 속에 그 근본관계로서 내재해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물질적 자연현상의 법칙성을 수학적으로 정식화하는 것이 설명되기 어려울 것이다. 실질적 세계에 내재해 있으면서도 실질적 세계에 대한 경험을 통하지 않고서 그것을 '선천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의 존재방식과 인식주관의 사유방식이 광범하게 합치하기 때문이다.
물리적 세계에 대한 경험내용을 공간적인 것으로 환원시켜 측정하고 그것을 다시 순수한 양으로 환원시키고, 급기야는 그 양적 규정들 간의 관계를 수학적으로 정식화시키는 작업은 공간적, 분석적, 논리적 사고의 극치를 이루는 것으로, 근대 실증과학의 실용적 위력의 핵심적 토대가 되는 철학적 사유라 할 수 있겠다.
IV. 맺음말
이상에서 우리는 서양의 근대 실증과학이 어떤 토양에서 싹이 터서 어떤 영양을 먹고 성장했는지를 구명해 보았다. 이로써 이 글의 소임은 끝났다고 본다. 이제 끝으로, 현대의 여러 철학이론들 가운데 이러한 실증정신을 가장 충실히 반영하며 실증과학을 더욱 촉진시킬 것들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고; 이러한 철학적 정초가 앞으로 야기시킬 최악의, 그러나 가능한 문화적 결과는 어떤 것일지, 상징적 어귀로 몇 가지 항목을 나열해 보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가. 현대의 실증주의적 철학이론
1. 인간의 심성을 물리적 속성으로 환원시키려는 '환원주의적 물리주의'
2. 인간의 사회성, 도덕성을 생물학적 사실로 환원시키려는 '사회생물학'
3. 인식의 규범을 인식활동의 자연적 사실로 환원시키려는 '자연주의적 인식이론'
1) 심리학적 사실로 환원시키려는 '자연주의 인식론'
2) 생물학적 사실로 환원시키려는 '진화론적 인식론'
3) 물리화학적 사실로 환원시키려는 '인공지능 이론'
나. 실증주의적 철학의 문화적 결과
1. 정신의 신체화, 인간의 동물화, 당위의 본능화
2. 문화의 자연화, 공동체의 기계화
3. 철학의 과학화, 가치의 사실화, 학문의 공업화, 대학의 공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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