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에 있어서 정의와 양심: 이론적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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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정의의 원천으로서의 양심
3. 맺는 말

본문내용

적으로 하고 있다. 타락되기 이전의 인간은 교육에 의하여 정의롭고 덕있는 시민으로 성장하게 된다. 반면에 편협한 인간의 이성에 근거하여 자기이익만을 추구하는 타락한 인간으로 하여금 정의를 따르게 하려면 우선적으로 정치제도가 요구되나, 그 정치제도에 관한 합의도 최소한의 양심에 대한 호소 없이는 불가능하다. 양심의 발현을 목표로 하는 교육은 인간을 자연스럽게 보장게임'의 구조로 유도한다. 그러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은 정치영역에 있어, 항상 죄인의 딜렘마'에 봉착하게 된다. 인간의 이성 그자체만으로는 이 딜렘마를 극복할 수 없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이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죄인의 딜렘마'는 보장게임'으로 변환된다.
3. 맺는 말
루소는 자연법학자(Natural Law Theorists) 및 계몽철학자(French Philosophes)들의 정의관에 반대한다. 그들은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며, 이성에만 의존해서 정의와 덕의 원칙을 도출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합리적인 인간은 공공선을 위하여 자기 이익을 포기할 줄 알며, 그렇지 못한 인간은 동물과 다름없으며, 따라서 인간사회에서 추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루소는 그들의 주장을 다음과 같은 논리로 반박한다. 첫째, 인간은 이성만의 존재가 아니라, 이성과 양심의 존재이다. 양심은 이성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이성의 기간 (age of reason) 이전에 잠자고 있던 양심은 이성의 발달과 더불어 일깨워지고 계발되지만, 일단 계몽된 양심은 신의 목소리 (the divine voice of conscience)로서 항상 진실되며, 오류에 빠지기 쉬운 이성을 진리로 인도한다. 둘째, 인간의 자기애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정의원칙은 관념상으로 존재할 수 있을지라도, 사람들이 실제적으로 정의로운 행동들 하게끔 유도하지 못한다. 정의원칙을 아는 것과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이러한 루소의 논리는 아마도 양심의 존재를 부인하는 자연법학자나 계몽철학자에 의해 거부될지도 모른다. 루소도 이러한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으나 다음과 같이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인정하고 인지하는 이 원칙 [역자 - 이성과 독립하여 양심이 존재한다는 원칙] 을 부인하는 사람은 그 원칙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원칙이 존재한다고 주장할 때, 우리도 그들만큼 합리적인 기반에 서 있는 것이며, 더욱이 우리는 우리의 편에 내적 증거자와 양심의 소리 (the inner witness and the voice of conscience)를 가지게 된다.
Emile, p. 290.
이와 같은 루소의 자연법학자나 계몽철학자의 정의관에 대한 반박논리는 칸트나 롤즈의 정의관에 공히 적용될 수 있다. 여기서는 일단 롤즈의 경우만 보기로 하자. 롤즈가 공정으로서의 정의원칙을 도출하기 위하여 설정한 중요한 개념적 장치는 원초적 입장, 개인의 합리성, 사회계약론적 방법론 등이다. 이러한 것들을 루소의 논리에서 본다면 다음과 같이 비판받을 것이다. 우선, 원초적 입장(the original position)은 인간의 본성적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자연상태 (the state of nature)와 질적으로 다른 가상적 상태이다. 알란 블룸(Allan Bloom)이 지적하듯, 롤즈는 인간적이고 정치적인 고려를 함에 있어서 자연(nature)이라는 기준을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Allan Bloom, Justice: John Rawls Vs. The Tradition of Political Philosophy, in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Vol. LXIX (June 1975), p. 651.
루소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연적 인간의 모습이 사라진 원초적 입장은 의도된 정의원칙이 도출될 수 있도록 고안된 인위적 상황에 불과한 것이다. 둘째, 롤즈는 인간의 합리성을 경제합리성이라는 보다 편협한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다. 질투심이 없는 가운데 기본재의 획득에만 관심을 갖는 합리적 인간은 타인에 대해 무관심하게 된다. 루소는 반문할 것이다. 어떻게 남에게 무심한 사람이 나와 남의 도덕관계를 규율하는 정의원칙을 도출할 수 있겠냐고? 셋째, 롤즈는 계약론적 접근방법을 절차적인 것으로만 인식하여 공정성으로서의 정의를 도출하기 위한 형식논리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루소에 있어서 계약론적 접근 방법은 배경조건의 도움 없이는 정의원칙을 산출해 내지 못한다. 배경조건이란 다름 아닌 종교를 통한 사회성의 감성'의 함양, 다시 말하면, 양심의 각성을 말한다. 양심의 작용이 전제되지 않은 계약론적 접근 방법은 무용한 것이며, 설혹 양심의 작용이 배제된 가운데 정의원칙이 도출되었다하더라도 그 원칙은 관념으로 머무를 뿐이고 행동의 실천적 지표로 되기 어렵다.
결론을 내려보자. 일견 역설처럼 들리겠지만, 양심을 기반으로 하는 루소의 정의관은 이성을 기반으로 하는 이성주의자들의 정의관보다도 더욱 논리적이다. 양심은 이성의 한계를 일깨워 주며, 우리를 최상의 인간가능태 (the highest human possibility)로 인도한다. 양심은 누구에게나 내재하며, 약간의 지식만 있으면 -예를 들면 옳음과 그름에 관한 관념 (the notion of good and bad) - 쉽사리 누구나의 영혼 속에서 완전하게 만개 되기 때문에, 양심에 근거한 정의관은 인간의 합리성에 근거한 정의관보다, 보다 쉽고 설득력 있게 보다 많은 평범한 사람에게 이해되고 실행되어질 수 있다. 정의를 따를까 말까 망설이는 상황에서 합리적 개인이 당면하는 죄수의 딜렘마'는, 양심적인 인간의 경우 손쉽게 해결된다. 그가 정의의 문제를 보장게임'의 구도 안에서 생각하는 한, 그는 마음 편하게 혹은 행복한 마음으로 정의를 따르고 실천에 옮기게 된다. 장기적인 차원에서 그에 필요한 것은 용기(courage)'이다. 양심적인 행동을 많이 하게 되면 용기도 늘어날 것이고, 늘어난 용기는 다시 양심적인 행동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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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06.19
  • 저작시기20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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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196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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