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문화 신곡[단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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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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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다.
이 이교도적인 시인 [베르질리우스]의 역할은 한편으로 보면 단테가 그에게서 인간 사회의 이상적이며 결정적인 시적 형식을 실현시킨 로마제국의 시인이었다는 사실과, 다른 한편에서 보면, 단테가 중세기의 모든 사람들처럼 그가 신동의 탄생을 노래한 목가시를 해석하여 볼 때, 그리스도의 강림을 예언한 자가 그였다고 생각한 때문이란 점으로써 설명될 수 있다.
베르질리우스가 모든 시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사람들이 흠모하던 위대한 시인이었던 고로 그의 서사시 《아에네이스》가 차지하는 문학적 위치는 아주 높았다. 따라서 단테도 그의 문학적 후광을 입어 자신의 작품은 물론 자신의 명성이 그처럼 드높아지게 하고픈 세속적인 욕망이 강렬하게 베르질리우스를 안내자로 택했다는 추측도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안내자가 누구이건 그가 가리키는 의미는 마찬가지다. 아무튼 단테의 안내자로서의 베르질리우스는 인간 지성의 최고이자 이성을 상징한다. 성모의 뜻에 따라 베아트리체가 성 루치아를 움직여 베르질리우스를 <어두운 숲>에서 방황하는 단테를 구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깐 단테가 비록 베르질리우스의 안내를 받아 순례를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느님의 사랑의 힘에 의한 것이라는 말이다. 즉, 회개와 속죄를 통해서 단테를 구원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의미에서 베르질리우스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께로 인도한 모세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는 아우에르바흐의 의견은 참으로 훌륭하다. 베르질리우스는 지옥과 연옥에서 깊은 지식과 고귀한 통찰력을 발휘해 시인을 인도하고 또 그가 갈망하는 바를 풀어 준다. 이 라틴의 시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나 윤리학 등도 통달하고 있기에 단테의 갈망을 넉넉히 풀어 줄 수 있다. 한 마디로 표현해서,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초라한 영혼을 잘 인도할 만한 자질을 충분히 갖고 있다.
내 이미 여기에 한 번 와 본 것이 사실이어늘
그것은 저 잔인한 에리톤이 망령들을
그들의 육체에 되불어 놓은 마술 때문이었다.
나로부터 살이 없어진 지 얼마 안 되어
그녀는 유다의 원에서 한 영혼을 빼내려고
나를 저 담벽 안으로 들어가게 했었다.
그 원은 가장 낮고 어두운 곳이며
모든 것을 돌리는 하늘에서 가장 먼 곳이나
내 그 길을 잘 아는지라 너는 마음 편히 하라.
―<지옥편> 9곡 22∼30
베르질리우스는 단지 안내만 해 주는 것으로 그의 소임을 다 하기 않고 단테에게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자세하고도 정확한 설명을 해 줄 수 있을 정도로 박식하다. 그러나 인간의 지성과 이성은 한계성을 갖는다. 그가 연옥에 와서 당황하는 것도 바로 이 한계성 때문이다. 아무래도 인간의 능력은 신성을 지닐 수 없는 법, 연옥엔 하느님과 마주 통하는 지상 낙원이 있기에 지옥의 영혼인 그가 당황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예를 들면,
고개를 숙이고 더 이상 말없이 괴로운 모습이었다.
―<연옥편> 3곡 45
그리고,
이어 그분이 얼굴을 아래로 숙이고서
마음 속으로 갈 길을 헤아리고 있는 동안에
―<연옥편> 1곡 55∼56
아무 말도 못 하고 어리둥절하는 베르질리우스를 지옥에서는 볼 수 없다. 더더구나 눈을 아래로 숙이고 난처한 표정을 짓는 베르질리우스는 없었다. 이미 말했듯이 연옥은 천국보다는 못 해도 고귀한 신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곳엔 적어도 천국에 올라갈 자격이 있는 망령들이 때를 기다리며 속죄하며 기구하는 곳이기에 영원토록 지옥에 운명지어진 베르질리우스에겐 한없이 힘겨운 안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연옥이 지상 낙원에 이르면 단테의 안내는 베르질리우스보다 뛰어난 분이자 가치 있는 영혼인 베아트리체가 맡는 것이다.
또 불 속에서나마 언젠가 복받은
사람들 곁에 가리라는 희망을 안고 있기에
만족해 하는 영혼들을 보게 될 것이다.
너 복받은 영혼들에게 오르고 싶다면,
나보다 가치 있고 훌륭한 영혼이 하실 것이니
널 그분과 함께 놔 두고 난 떠나리라.
―<지옥편> 1곡 118∼123
연옥을 안내하고 나면 베르질리우스가 나타내는 인간의 이성은 할 일을 다했으니 길을 하느님의 학문(신학)에게 양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음의 구절을 읽어 보자.
계단이란 계단은 모조리 우리 밑으로
뻗어져 있었고 우리들은 맨 위층계에
이르렀을 때, 베르질리우스가 날 응시하며
말했다. "아들아, 너는 순간과 영원의
불을 보았다. 이제 나로서는 더 이상
알지 못하는 곳에 네가 온 것이란다.
지성과 재주로써 널 여기에 이끌어 왔다.
가파르고 비좁은 길을 벗어났으니
이제부터는 네 기쁨을 안내자로 삼거라.
네 이마를 다시 비춰 주는 해님을 보라.
또 여기 땅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풀잎들과 꽃들 그리고 작은 숲들을 보라.
너에게 내가 오도록 눈물로 하소연하던
저 아름다운 눈이 기쁨에 젖어 오는 동안
넌 앉아 있을 수도 그들 속으로 갈 수도 있다.
내 말이나 눈치를 더 이상은 기다리지 말라.
너의 의진는 자유롭고 바르며 건전하니
그 뜻대로 하지 않으면 잘못을 범한다.
네 머리 우에 왕관과 면류관을 씌운다.
―<연옥편> 27곡 124∼142
아름다운 눈은 베아트리체를 가르킨다. 단테를 구원하기 위해서 성 루치아를 움직여 베르질리우스를 보냈던 베아트리체이다. 시인이 그토록 그리던 영원한 여성인 그녀가 이제부터는 단테를 직접 안내하기 위하여 나타난 것이다. 단테가 그녀를 대함에 있어 필요한 에비지식들을 갖추게끔 한 자는 베르질리우스이지만, 이제는 그의 도움이 필요 없게 되었다. 베아트리체의 출현과 함께 <연옥편>은 대단원을 이루고 《신곡》 전체가 활기를 찾는다. 이제까지보다는 다른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하는 동기가 될 뿐만이 아니라 행복한 결말의 문이 점점 열리기 때문이다. 항상 겁에 질리며 나약하기만 하던 단테에게 힘과 용기가 어느 새 생긴다. 그는 이제 에덴 동산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나 단테는 아직도 어머니를 그리는 어린애 같은 심정으로 베르질리우스를 찾으며 그의 가르침을 받고자 한다. 이제 라틴의 시인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 때 여인의 목소리가 단테의 주의를 끈다.
단테여, 베르질리우스께서 가신다고
아직은 울지 마오, 아직은 울질랑 말아요.
<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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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27페이지
  • 등록일2002.06.29
  • 저작시기2002.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7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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