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구조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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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구조
2.바울의 신학적 관점
3.바울의 대적자들의 논쟁과 정체
4.중요한 단락들의 주석

본문내용

아니라 율법을 승인하고 해석하기 위해서 오셨는데 사실 그 메시야는 제2의 모세이다 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보기에 갈라디아서 여러 군데에서 십자가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는데 모름지기 선동자들은 십자가의 구원론적인 의미를 깊이 깨닫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이 십자가의 메시지를 상당히 경히 여긴 것 같다.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바울은 갈3장 등에서 십자가를 굉장히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또한 그들은 성령이 오신 것도 율법의 순종을 유발시키기 위해서 오셨다라고 주장한다. (겔36:27에 근거해서) 갈4:25에서 시내산언약과 지금 있는 예루살렘이 연결이 되어 있는데 그것은 선동자들이 사라 -이삭 -시내산언약의 라인에 예루살렘을 포함시켰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할례 받은 유대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된 예루살렘교회는 새로운 메시야 공동체의 중심부였다. 이 교회에서는 예수님의 제자들 (야고보, 베드로, 요한)이 굉장한 사도적 권위를 행사하고 있었고 또한 그들의 생각에는 이 예루살렘교회에서 바울의 복음과 사도직의 신적 기원이 부인이 되었다.
그러므로 선동자들이 볼 때에 사라 -이삭 -시내산언약 -예루살렘 이 라인이 아브라함의 진짜 아들들을 대표한다. 아브라함의 주어진 약속들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자손들만이 참 하나님의 백성으로 간주된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다 하는 것은 참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 믿는자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논쟁했다. 그러나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와 네 자손들 안에서 모든 민족이 복을 받으리라고 약속을 하셨으니까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만일 이방인들이 아브라함의 참 자손이며 약속의 상속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유대인들처럼 할례를 받고 율법을 순종해야 된다. 즉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할례와 율법중에서 할례를 더 긴급하게 받으라고 강요한 것 같다
왜냐면 창17:10-14에 보면 할례가 언약의 표로써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가족에 속한 모든 남자에게 그것을 받으라고 엄히 명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례를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에서 떨어져 나간다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저주이다.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저주가 임한다고 했다. 또 왜 할례를 받으라고 요구했느냐하면 할례를 받은자는 전 율법을 지킬 의무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아마 내 생각에는 이와 관련해서 선동자들이 사도행전 16:3에 보면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한 것을 근거로 해서 바울자신도 할례를 전파했다라고 이야기 했을 것이다. 갈5:11에서 바울이 자기가 할례를 전하지 않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상에서 내가 재구성한 선동자들의 논쟁은 구약과 유대인의 문헌들 위에 튼튼한 기초를 두고 있다. 바로 여기에 대적자들의 논쟁의 힘이 있다. 이러한 강력한 논쟁을 가지고 선동자들은 많은 갈라디아교인들이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도록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되자 갈라디아교회내에 혼란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갈5:13,14에서 바울이 사랑을 강조하고 6:1,2에서도 그렇게 이야기 한다.
이제 우리가 갈라디아서에서 선동자들의 성공이 그들의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논쟁에 기인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만 가지고는 성공할 수 없고 뭔가 다른게 있었을 것이다. 그 성공에 암암리에 공헌한 것은 갈라디아교회내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을 때 갈라디아교인들은 믿음에 서 있을 수 있었는데 바울이 떠나자 그들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불안을 쌓이게 되었다. 그렇다고 한번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로 했으면 믿는거니까 자기들의 전통적인 종교의식에 참여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유대교 회당에도 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뿌리가 뽑히게 되었다. 그러니까 벧전2,3장에 보면 이렇게 사회적으로 뿌리가 뽑힌자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그렇게 쓴것같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아주 불안정한 상황에 처해 있는 갈라디아교인들이 불안해 있는데 할례와 율법을 받아들임으로써 로마사회에서 묵인하는 유대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아주 기쁜 소식이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이 세대에서 하나님나라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종말론적인 개념이지만 사회적인 개념도 된다. 그래서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구분이 있어야 한다.
* 대적자들의 정체
지금까지 말한 것을 간단히 말하면 대적자들이 바울과는 달리 그리스도의 사건을 말하기는 했지만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믿고 선포했다. 그 다음에 그들은 사라-이삭-시내산언약-예루살렘 이 라인만이 아브라함의 참 자손을 대표한다고 주장을 했다. 다음 아브라함의 진짜 아들들이 되기 위해서는 할례와 율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갈라디아교인들에게 강요를 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을 비추어 볼 때 선동자들은 유대인이었고 그리스도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Johnes Munk란 사람은 그들이 갈라디아교회내에서 자생한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의 대적자 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근거 없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갈라디아서에 보면 갈라디아사람들 하고는 구분이 된 외부에서 침입해 들어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멍크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F.C Bauer란 사람은 정반합의 논리로써 사도들의 복음을 정 으로 하고 이방그리스도인들의 복음을 반으로 대치시켰다. 그리고 그런 틀에 대치해서 바울의 대적자들이 유대그리스도인들인 것은 사실인데 그들이 사도들의 신학적인 지지를 받고 파송되었다고 이해했으나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갈 2:1-10을 보면 예루살렘 사도들이 대적자들의 신학을 지지하지 않고 바울의 복음의 정당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갈1:2과 4:25-26에서 예루살렘이 자주 언급이 되고 바울이 예루살렘과의 거리를 계속 유지하는 이야기를 쓰는데 이것들을 보면 그 대적자들이 예루살렘교회와 어떤 형태로든지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결 론
바울의 대적자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우파(보수파)와 관계를 갖고 있는 유대 그리스도인들 이었을 것이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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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10.16
  • 저작시기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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