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과학의 관계
본 자료는 2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해당 자료는 2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2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문내용

구별해야 합니다. 한 가지 방법은 아래로부터 이야기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위로부터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아래로부터의 이야기는 공통적인 당시의 환경을 가지고 있는 공동체의 세계관에서 시작합니다. 그들이 최종적인 기준이 됩니다. 반면에 위로부터의 이야기는 위로부터오는 계시에 기초하며 이것이 그 공동체의 세계관을 형성합니다. 신학적 사고의 최종적인 기준은 말씀과 행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계시하시는 삼위 하나님의 존재입니다. 행동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로고스로서 객관적인 실재는 그 공동체를 위한 규범적인 구조를 형성합니다. 그러나 그 역은 진리가 아닙니다. 아래로부터의 이야기는 모두 우리의 삶의 이야기의 표현으로서 예비적 이야기에 속합니다. 그러나 위로부터의 이야기는 모든 이야기의 진정한 주체로서 하나님의 객관적인 실재에 근거하며 우리는 이것을 예비적인 이야기(Pre-story)에 대비하여 원형적 이야기(Prato-story)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로고스는 자연의 프로그램과 역사의 시나리오를 형성할 수 있는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행위로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로고스는 일차적인 수준에서 원형적 이야기입니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계시된 사건을 증명하는 공동체의 이야기 진술은 진정으로 우리의 예비적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도 원형적 이야기에 속하며 2차적인 수준에서도 정확히 원형적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첫번째 수준의 하나님의 로고스의 원형적 이야기에 참여할 때에 원형적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신학자들은 2차적 수준의 원형적 이야기의 중심에서까지 자연의 프로그램과 역사의 시나리오를 읽습니다. 그것은 일차적 수준의 하나님의 로고스의 원형적 이야기가 이차적 수준으로 그 자신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환언하면, 그것은 삼위하나님의 전체 구원사에서 구성된 틀 안에서 창조와 종말론의 빛 안에서 자연과 역사를 보는 것입니다.
현금의 과학은 우주의 시작과 종말을 이론적으로 취급하기 시작했습니다. 과학은 그 자체로 자연의 프로그램을 읽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 신학과 과학의 대화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론
칼 바르트는 그의 교회교의학에서 창조에 대해서 아주 담대히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J. Cocceijus의 신학과 같이 개혁전통의 통합(federal) 신학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세계가 만들어지기 전에"(엡 1:4)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의 피조물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이 언약은 창조의 내적인 기초입니다. 우리는 이런 신학적 진술을 이야기 방식으로 더 깊이 발견해 낼 수 있습니다.
우리 지구의 공동운명에 직면하여, 신앙과 과학간에 분열이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현금의 관계는 우주의 새로운 이론을 세우기 위하여 더 필요합니다. 새로운 이론은 우주의 종말을 고려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 신학자들은 소위 "자연신학"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을 넘어서 행위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의 로고스 비전과 자연의 프로그램과 역사의 시나리오에 대한 하나의 이야기를 용기있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키워드

신앙,   과학
  • 가격1,300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02.10.22
  • 저작시기2002.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7784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