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악마 현상 나의 생각, 월드컵, 서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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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앞 이야기

2. 붉은 악마 현상은 무엇인가?-축제, 축구, 국민

본문내용

독이 이번 월드컵 선발선수 그대로 뽑았다고 하자. 언론이나 축구계가 가만있었을까? 히딩크 감독은 그가 외국인이어서 그런 비판에서 면제되었을 뿐이다. 그도 그의 축구철학과 스타일에 입각해서 뽑았을 뿐이다. 지금 내가 뭘하고 있는거지?
2.7 오 여성은 어디있는가?
자꾸 이런 사람들이 눈에 밟혔다. 다양한 사회적 약자, 즉 축구에 무관심하거나 싫어하는 사람 (문화인류학자들은 이분들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 월드컵 때문에 장사 망친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 노점상, 파업중인 노동자, 맨땅에 헤딩하며 골절상 입고 있는 아마추어 축구선수들, 여자 축구선수, 실력이 막상막하인데도 월드컵 대표선발에서 떨어졌거나 제외된 축구선수들 때문에 안타까웠다. 윤정환, 김병지, 현영민, 최인성 등을 잠깐 잠깐 화면에서 볼 때마다 속이 쓰라렸다.
뉴스나 화제집중과 같은 프로그램에서 앞 다투어 소개한 것 중 하나는 여성들의 열광과 다양한 참여다. 태극기로 브래지어를 하고, 배꼽티를 입고 술먹고, 새벽까지 소리지르는 광란, 평상시에 여자와 청소년에게 얼마나 금기시되었던 이탈인가? 여성들은 폭발했다! 내가 아는 30대 초반의 남자는 거리에 잔뜩 몰려나온 10대 20대 여자들을 보면서 저건 다 가짜고 다 거품이라고, '진짜'는 (즉 남자들은) 집에서 조용히 티브이에 집중해서 축구만 본다고 비아냥거렸다. 화가 나서 이렇게 대답했다. 물론 저 여자들이 월드컵이 끝난다고 K-리그장에 다시 나타나란 보장은 없지. 오히려 서태지나 신화 콘서트 장에 가서 대한민국 대신 신화를 외치겠지. 하지만 축구에 미치지 않는다고 가짜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여자들의 열광, 긍정적이면서 동시에 부정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해. 여자는 어차피 축구선수가 될 수 없어서 (딸아이도 축구반에 들어갔다가 선생님과 남자아이들의 왕따로 인해 공 한번 제대로 차보지 못하고 나왔다), 하다못해 여자 조기동네 축구단도 없어서 여자들은 축구에 대한 관심을 가질 기회 자체를 어떻게 보면 사회적으로 차단 당한 거지. 근데, 만일 이번에 애국심이건 획일주의적 맥락이건 간에 그 속에서 축구의 묘미와 스포츠의 즐거움을 체험했다면 그리고 그게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이 아닌 신체 단련을 위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즐거운 교감과 접촉을 줄 수 있는 행위로서 스포츠를 경험했다면 그건 좋은 효과겠지.
여전히 냉철한 비판과 분석은 유효하다. 우선 '국민' 동질성의 강화는 '비국민'을 만들어내고 배제한다는 역설을 생각해보자. 그 '비국민'의 일번 타자는 여성이었다. '대한 건아', '대한 남아'와 '우리의 자랑스러운 아들들', '아버지 같은 히딩크, 엄마 같은 박항서' 같은 문구의 연발은 스포츠 및 응원을 남성주의적 코드로 읽어내려는 욕망을 드러냈다. 또한 관람 문화 자체가 성역할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곳도 꽤 많았다.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 단체로 구경을 하는데 여자들은 열심히 전 부치고 술 나르고 노인, 남자와 아이들은 앉아서 화면 쳐다보는 성분업은 끄떡없이 작동되었다. 남자는 스포츠 주체, 여자는 스포츠 응원하는 치어걸 이분법이 여전히 복제, 반복되었다. 남성선수들의 경기에 여성들도 그토록 열광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전형적인 남성성에 대한 여성성의 열광이 아니었을까?
김남일에게 열광하는 오빠부대, 그에 못지 않은 (농구선수) 정선민이나 전주원에 미치는 누나부대는 언제 '대~한민국'에 나타날까? 내년의 중국에 이어, 여성 월드컵 경기를 남북 코리아가 개최하는 날이 곧 올까?
2.8 포스트 월드컵
3. 국민적 에너지로 '승화'시키자는 얘기, 이제 그만 하자.
물론 이러한 월드컵 과잉 현상에 지나친 의미부여를 할 필요는 없다. 한순간의 유포리아며 찰나의 황홀일 것이다. 준결승에서 한국팀은 멈췄고 월드컵 잔치는 끝났다. 사람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가 여전히 싸우고, 일하고, 버리고, 위반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위험할 것도 분노할 것도 없을 지도 모른다. 맘껏 소리지르고 떠들고 흔들고 마시는 건 좋은 일이다. 금욕주의자나 엄숙주의자의 눈으로 축제를 재단하지는 말자.
하지만 이러한 이상열기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은 한국사회의 지독한 자아 도취적 집단주의 내셔널리즘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향은 포스트 월드컵에서 열광의 에너지를 각종 형태의 에너지로 전화시키려는 발빠른 기획과 전유의 욕망에서도 드러난다. 축제의 에너지는 축제에 놔둘 수 없을까? 승화니 전환이니 복귀니 하는 국민적 통제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가? 이러한 경향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고 그것에 거리를 두며 성찰하는 개인과 집단이 없는 한 한국사회의 국민국가적 억압과 차별, 즉 끊임없이 '비국민'을 생산하고 배제하는 메커니즘은 극복의 계기를 맞기 어렵다.
한국인들의 집단적 자아도취는 식민지와 저발전의 상처에 대한 역반응이다. 그것은 '월드'에서 배제되고 멸시되었던 타자들이 다시 그 안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혹은 이미 진입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자 하는 집단적 불안감의 반영이다. 선진국의 강자들은 다른 사람의 눈치를 거의 보지 않는다. 반면에 한국과 같은 지구의 변방에 속해있던 사회에서는 중심부에 대한 열망 때문에 끊임없이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사실 외부의 시선으로 자신을 평가하려는 정신적 식민주의의 이면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일종의 원한 심리와 민족적 나르시시즘을 떨쳐버리지 않고서는 건강한 개인으로 살아가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고난의 억압의 역사 속에서 살아온 한국인이 세계적 축제를 통해서 마음껏 기쁨을 누리는 건 당연하다. 별로 자랑스럽지 않았던 '대~한민국'이나 태극기의 의미를 전복한 붉은 악마의 응원에는 솔직하고 개성적인 자기표현의 확대라는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스포츠 축제에 대해 온갖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과대부여하고 그것을 통해 다시 한번 한국인들을 '국민'과 '공동체'의 부속품으로 묶어두려는 의도적 무의식적 '국민운동'! 이제는 '레드카드' 받을 때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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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대 정치외교학과. dju.ac.kr/~kwonh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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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2.10.25
  • 저작시기2002.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8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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