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와 쯔빙글리의 성만찬 논쟁이 지니는 교회 정치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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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들어가는 말

II. 성만찬 논쟁의 발단과 그 전개

III. 루터와 쯔빙글리의 성만찬 논쟁의 쟁점

IV. 아욱스부르크 신앙고백(Confessio Augstana) 이후의 성만찬 논쟁과 비텐베르크 합의신조(Die Wittenberger Konkordie)

V. 나오는 말

본문내용

명히 한다. 칼빈의 이러한 입장은 쯔빙글리를 비롯한 스위스 개혁자들의 입장이기도 하며,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이 즉물화(Verdinglichung)되는 위험에 대한 단호한 거부이기도 하다.
V. 나오는 말
성만찬 논쟁은 종교개혁 세력 내부에서 가장 치열하고 복잡하게 전개되었던 신학논쟁 중의 하나였다. 루터의 경우 성만찬에서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몸의 임재'(Realprasenz)는 단순한 많은 교리 중의 하나로 비본질적인 것(Adiaphoron)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적인 구성요소로 인식하였다. 루터는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몸의 임재'를 그의 신학의 중심인 기독론적인 연관 속에서 이해하였다. 기독론과 성만찬론은 서로를 규정하며, 성만찬 논쟁 속에서 그의 궁극적인 형태를 띠게 되었다.
Paul Althaus, Die Theologie Martin Luthers, 5. Aufl., Gutersloh, 1980, 335.
루터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성을 거부하는 것은 성육신 사건과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하나됨(Einheit)을 부인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에 반해 쯔빙글리와 그의 추종자들은 루터의 그리스도의 육체적 임재설에서 로마-카톨릭의 잔재를 읽을 수 있을 뿐이었다.
루터가 쯔빙글리와 그의 추종자들을 격렬하게 비판한 데는 이러한 복음의 본질에 대한 훼손뿐만 아니라 어렵게 이루어진 종교개혁의 성과를 내부에서 붕괴시키는 더욱 교묘한 사탄의 계략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루터는 쯔빙글리와 그의 추종자들을 칼슈타트, 토마스 뮌처 그리고 슈벵크펠트주의자들과 연계시킴으로써 이들을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실패하였다. 그들은 루터에게 반란자에 불과하였으며, 어떤 점에서 외부의 적인 로마-카톨릭보다도 더욱 사악한 자들로 보기까지 하였다. 여기에는 교리적인 문제 이외에 인간관계의 문제도 작용하였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극단적인 대치 상황 속에서 슈트라스부르크의 개혁자 마틴 부처의 화해 노력은 오늘날의 에큐메니칼 관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성만찬 논쟁은 단순한 신학적인 논쟁을 넘어서 교회 정치적인 사건이었다. 성만찬 논쟁은 단순히 신학적인 논쟁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개신교회의 분열을 가져왔다. 수많은 불신과 대립과 화해 끝에 남서부 독일 지역은 루터교 진영에 머물렀지만, 스위스에서는 제 2의 프로테스탄트 교회, 즉 개혁교회(Die reformierte Kirche)가 탄생되었다. 이로써 서부 유럽에는 칼빈에 의해 강화된 개혁교회와 루터교, 그리고 새롭게 정비한 로마-카톨릭 교회가 서로 경쟁적으로 자신들의 정체성과 교리를 강화하면서 세력을 확장하는 소위 '종파주의 시대'(Das konfessionelle Zeitalter)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되었다.
그 이후 성만찬 논쟁은 소강상태를 보이다 세계 제 1차 세계대전 후 교회의 일치와 연합운동이란 시대적 요청 속에 새롭게 논의되었다. 독일어권에서 이러한 논의의 신학적인 잠정적인 결론이 1957년에 나온 "아놀즈하이너 성만찬 테제"(Arnoldshainer Abendmahlsthese)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Ulrich Kuhn, Abendmahl IV: Das Abendmahlsgesprach in der okumenischen Theologie der Gegenwart, TRE 1, 146-157을 참고하라.
이다. 그러나 이것은 유럽교회들에 의해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럽에 있는 종교개혁 교회들간의 성만찬에 대한 상호접근은 1973년의 "Leuenberger Konkordie"(원제는 Die Konkirdie reformatorischer Kirchen in Europa)에서 일단락 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8. 성만찬에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을 위해 희생하신 그의 몸과 피에 그의 약속의 말씀을 통해 빵과 포도주와 함께 자신을 선물로 주어진다. 그러므로 그는 빵과 포도주를 받는 모든 사람에게 자기 자신을 조건없이 주신다; 그 성찬을 신앙은 구원으로, 불신앙은 심판으로 받는다(Im Abendmahl schenkt sich der auferstandene Jesus Christus in seinem fur alle dahingegebenen Leib und Blut durch sein verheisendes Wort mit Brot und Wein. So gibt er sich selbst vorbehaltlos allen, die Brot und Wein empfangen; der Glaube empfangt das Mahl zum Heil, der Unglaube zum Gericht).
19.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우리는 먹고 마시는 행위와 분리할 수 없다. 이러한 행동을 도외시하는 성만찬에서 그리스도의 임재 방식에 대한 관심은 성만찬의 의미를 모호하게 할 위험이 있다(Die Gemeinschaft mit Jesus Christus in seinem Leib und Blut konnen wir nicht vom Akt des Essens und Trinkens trennen. Ein Interesse an der Art der Gegenwart Christi im Abendmahl, das von dieser Handlung absieht, lauft Gefahr, den Sinn des Abendmahl zu verdunkeln).
20. 교회들 사이에 이러한 합의가 있는 곳에는, 종교개혁적 신조의 저주가 이러한 교회의 가르침의 입장에 해당되지 않는다(Wo solche bereinstimmung zwischen Kirchen besteht, betreffen die Verwefung der reformatorischen Bekenntnisse nicht den Stand der Lehre dieser Kirchen)."
Wenzel Lohff, Die Konkordie reformatorischer Kirchen in Europa: Leuenberger Konkordie, Frankfurt a. M., 198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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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11.10
  • 저작시기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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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1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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