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죽림고회에 관하여...
본문내용
한 계열도 현실사회에 깊이 관여하여 그 근본에서부터 지도력을 발휘할 수 없었던 약점이 또한 개재해 있었다.
다 시 말하면 질적으로 각이한 사상들의 혼재는 그것들이 갖는 특성의 상호견제작용으로 하여 어느 하나도 깊은 심도로 수용될 수 없었다는 말이다. 이리하여 합리주의요 현세중심인 유교는 비합리성의 표본과도 같은 도참의 미신과 내세관에 의한 종교인 불교의 견제로 하여 고려인의 현실생활에 높은 밀착도로 관여하지 못 했고, 불교 또한 유교의 견제와 도참의 영향, 그리고 사회적 불안으로 하여 특히 그 호국 기복적인 면과 염세사상이 두드러졌을 뿐이었다.
더구나 무인 집권시의 불교는 그 이전의 왕실과 귀족의 옹호하에 확보되었던 세속적인 권익의 회복을 위해 숭병을 동원하는 등 오히려 혼락을 야기 시켰을 뿐 종교로서의 지도력은 거의 상실하고 잇었던 것이다. 도가 계열의 사상은 당초 그 사상적인 특성이 반현실적이라는 점에서 현실에서의 제어력은 더구나 거론할 여지가 없다.
여기에 귀족정치의 말기에 이미 포화되다시피 양성된 수발적인 랑만풍조는 리합부재의 무인집권기로 그대로 상속되었을 뿐 아니라 정국과 사회의 불안으로 하여 오히려 보다 심각화한 느낌이 있다. 죽림고회의 출현은 정치 사회적인 오인도 요인이지만 이와 같은 사상풍토적인 요인이 또한 크게 작용했음은 외침과 당쟁 시화등으로 늘 불안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자학의 사상이 강력히 율했던 근세조선에서는 일찍이 죽림괴회와 같은 류의 회가 출현되지 않았다는 점이 반증해준다.
※참고문헌 고려죽립고회연구
- 전기적 고찰을 중심하여 -
고려대학교 국문학과 국문학 학위논문
이동환
다 시 말하면 질적으로 각이한 사상들의 혼재는 그것들이 갖는 특성의 상호견제작용으로 하여 어느 하나도 깊은 심도로 수용될 수 없었다는 말이다. 이리하여 합리주의요 현세중심인 유교는 비합리성의 표본과도 같은 도참의 미신과 내세관에 의한 종교인 불교의 견제로 하여 고려인의 현실생활에 높은 밀착도로 관여하지 못 했고, 불교 또한 유교의 견제와 도참의 영향, 그리고 사회적 불안으로 하여 특히 그 호국 기복적인 면과 염세사상이 두드러졌을 뿐이었다.
더구나 무인 집권시의 불교는 그 이전의 왕실과 귀족의 옹호하에 확보되었던 세속적인 권익의 회복을 위해 숭병을 동원하는 등 오히려 혼락을 야기 시켰을 뿐 종교로서의 지도력은 거의 상실하고 잇었던 것이다. 도가 계열의 사상은 당초 그 사상적인 특성이 반현실적이라는 점에서 현실에서의 제어력은 더구나 거론할 여지가 없다.
여기에 귀족정치의 말기에 이미 포화되다시피 양성된 수발적인 랑만풍조는 리합부재의 무인집권기로 그대로 상속되었을 뿐 아니라 정국과 사회의 불안으로 하여 오히려 보다 심각화한 느낌이 있다. 죽림고회의 출현은 정치 사회적인 오인도 요인이지만 이와 같은 사상풍토적인 요인이 또한 크게 작용했음은 외침과 당쟁 시화등으로 늘 불안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자학의 사상이 강력히 율했던 근세조선에서는 일찍이 죽림괴회와 같은 류의 회가 출현되지 않았다는 점이 반증해준다.
※참고문헌 고려죽립고회연구
- 전기적 고찰을 중심하여 -
고려대학교 국문학과 국문학 학위논문
이동환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