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전해준 백제 문화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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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에 전해준 백제 문화에 대한 고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머릿말

Ⅱ. 6·7세기 백제와 일본의 관계

III. 일본 문화 속에 나타난 백제 문화의 성격
1. 후네야마 고분 출토품
2. 왕인박사
3. 동대사 본존과 금당
4. 법륭사
5. 백제 관음상
6. 칠지도
7. 도쿄 속의 백제

IV. 맺음말

본문내용

사를 연구한 조거용장 박사의 연구를 빌면 다음과 같다.
그는 상륙(常陸) 풍토를 연구했는데 그 중 천원숙이흑마려(川原宿녜黑麻呂)라는 이름을 발견, 그 인물에 대해서 조사했다. 이천원이란 성에 대해선 성씨록에 나오는 천원기촌(川原忌寸)이라는 이름을 주목했다. 이 성의 선조는 백제계 판상(坂上)씨에서 나왔다.
즉 백제계 한인이다. 판상씨의 계보 옆엔 회전직이 함께 하고 있다. 거기에 부기해서 야마모토국 고시군 회전촌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천원성과 회전성은 같은 판상씨의 계통 즉 한인에서 나온 성이다. 이들을 한반도에서 건너간 한인일족의 분파로 보면 틀림없다. 따라서 이사쿠사의 회전도 천원씨와 관계가 있다.
조거 박사는 나라 고시군의 천원사를 주목했다. 그 절은 민달천황 13년(서기584년) 봄 2월 소가 우마코가 창립했다.
거기에 백제서 갖고 간 7촌의 불상을 안치했다는 사실을 눈여겨보고 천원사와 천원씨 그리고 아사쿠사의 회전씨가 있다고 보았다.
지금으로부터 1천3백여 년 전 백제에서 야마모토의 천원사에 보내진 7촌의 불상이란 아사쿠사의 불상과, 작은 점에서 유사하다. 이 유사점에도 뭔가 관계가 있는 듯하다. 이것도 아사쿠사의 고대사를 푸는 하나의 열쇠구실을 할 것이다. 여하튼 아스카에 있는 회전이란 지명과 그곳에 있는 회전사 절터, 그리고 아지사주를 제사지내고 있는 어미아지 신사가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곳이 회전씨들의 본거지였고 그들 일부 씨족들이 유랑 끝에 옛 도쿄 땅에 발을 들여놓고 정착한 것이다. 정착한 후 생계유지로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고 살아 나갔을 것이다.15)
에도 문화의 발생지 아사쿠사가 한반도 도일인 들에 의해 개척되고 에도인들의 수호신인 천초관음이 도일인의 전래에 의한 것이라는 것은 흥미 깊은 일이다. 에도란 지명의 어원은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에도씨가 살고 있던 곳이기 때문에 에도일 것이라고 하는 설이 있다. 또 이곳의 선주민 \'아이누\'어 \'에트모아\'(바다의 끝이라는 뜻)에서 와전 되었다는 설도 있다.16)
근래엔 무장야에 살고 있던 한반도 도일인들이 분파가 생겨 아사쿠사를 중심으로 새로운 터를 형성하게 되어 한국어 애터(새터 또는 작은 고장)가 와전되어 새로운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설이 대두됐다.
Ⅲ. 맺음말
5세기 말 또는 6세기 초에 북규슈로부터 백제계통의 우세한 국가세력이 엄습하였다. 이로서 6세기 이후의 일본에서 야마모토 정권의 성격은 더욱 복잡해 졌으나 그 연합세력 내에서는 백제계통 귀족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것은 계속 변함이 없다.
6세기 이후 야마모토 정권이 열도를 통합해 나가던 과정은 그것이 7세기 전반까지에는 완료되었으나 그 과정 자체는 완만하고 복잡한 것이었다.
북규슈나 이즈모기비 지방에는 우리 이주민 계통의 국가 세력이 계속 존재하였으며, 이런 국가 세력은 한국과의 관계에서 아직 상당히 질긴 유대를 보존하고 있었다.
고대의 백제는 중국의 남조로부터 묘제·건축·회화·조각·학문 등 고도의 문화를 섭취, 백제의 것으로 발전시키는데 성공했다. 백제의 우수한 문화는 한성시대 초부터 웅진·사비 시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일본에 전파되었다.
한학·불교·천문·지리·의학·음양·음악·공예와 여러 가지 기술 등 고대 일본 문화의 씨를 뿌렸으며 점차 꽃을 피우게 했다. 당시 삼국중 일본에 영향을 가장 많이 끼친 나라가 백제였다. 근초고왕 때에는 백제의 지배세력이 일본 규슈 서북지방을 석권, 이른바 백제 문국을 두었거나 비류백제 마지막 왕이 가야에서 규슈로 건너가 기내에 야마모토 정권을 세운 것으로 보고 있다.
근초고왕 때는 아지기와 왕인이 일본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아지기는 오징( )의 태자의 스승이 됐고, 왕인은 천자문과 논어를 전하는 등 학문의 아버지가 됐다.
공주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것과 아주 흡사한 귀걸이와 금신발이 출토된 \'후네야마\'고분의 주인공은 당시 백제와도 무관치 않다.
\'나라\'엔 백제목조관음상과 담징의 벽화로 유명한 \'법륭사\'가 있고, 백제의 지혜가 서린 최고, 최대의 목조건물 동대사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또 동경 동북쪽인 \'사이타마\'현엔 \'구다라키\'란 지명이 남아있다. 백제인들이 정착했던 곡으로 수백년 전에 금동백제불이 발견되고 옛 기와 굽던 자리와 절터가 남아있어 이 부근에서 백제계와 왕인의 후예들이 활약했었다.
이상에서 우리의 고대 조상들이 어떻게 일본땅에 건너가 정착했으며 문화·문물을 어떻게 전파했는지 알아보았다. 백제가 전파한 문화·문물의 유적들은 지금도 일본에서 찬연히 빛나고 있다.
參考文獻
◎ 최재양, 『百濟의 大和倭와 日本化過政』, 일신사, 1990.
◎ 최필승, 『古代 韓日關係史』, 한마당, 1988
◎ 부지영, 『日本, 또 하나의 韓國』, 한송,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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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형섭, 『日本속의 百濟文化』, 한겨례, 1988.
◎ 죤.W.홀, 『日本史』, 역민사, 1988.
◎ 시바 료타로, 도날드 킨, 『日本人과 日本文化』,
을유문화사, 1993.
1) 김석형.『고대한일관계사』(한마당 1988) P.446
2) 『삼국사기』 권 40 직관(職官) 하(下)
3) 송형섭. 『일본속의 백제문화』(한겨례 1988). P.51
4) 『일본지명대사전』 평범사 해당조.
5) 송형섭『일본속의 백제문화』.(한겨례 1988). P.103
6) 시바 료타로 『일본인과 일본문화』.(을유문화사 1993). P.33
7) 송형섭 『일본속의 백제문화』.(한겨례 1988). P.138
8) 『일본서기』권22 (천지천황 9년)
9) 송형섭 『일본속의 백제문화』.(한겨례 1988). P.156∼159
10) 최재양 『백제의 대화왜와 일본화 과정』.(일신사 1990). P.125
11) 김성호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한겨례 1998). P.225
12) 『일본지명대사전』평범사.
13) 『일본지명대사전』평범사.
14) 『천초사연기』(추고천왕), 『천초사본존연기』
15) 송형섭 『일본속의 백제문화』.(한겨례.1998). P.285
16) 죤.W.홀, 『日本史』, (역민사 1988).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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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0.20
  • 저작시기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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