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사관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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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 론 >

<본 론 >
1.만선사관
2. 일선동조론
3. 정체론

<결 론>

본문내용

농업기술의 발달, 농민층가운데 부농이나 庶民地主의 성장, 수공업에 있어서의 賃勞動의 사용등 근대를 알리는 움직임이 있었음을 밝혔다. 이처럼 사상·문화등에서 근대화의 지향의 변동이 있었다고 한다면, 종래의 정체론은 성립할 수 없게 된다. 일본보다 수백년이나 낙후되어 있었다는 따위의 의논이 이제는 존재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 다만 문제는 이같은 근대화 지향의 움직임이 왜 정상으로 발전할 수 없었던가 하는 점이다. 그 저해 요인은 어디에 있었던가. 일본을 비롯한 열강의 정치적·경제적·문화적침략이 크게 작용했던 것은 명백하지만, 그것만으로서 결말이 날 것은 아니다. 저해요인을 포함하여 근대화 지향의 움직임을 사회전체와의 관련속에서 파악할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결 론>
지난날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고 있었던 시대에는 한국사 연구는 일본인이 독점하고 일본인 이외의 사람의 연구는 매우 부족하여 한국인에 의한 한국사 연구도 거의 행해지지 않았다. 여기서 생긴 한국사는 당연히 한국지배자로서의 일본인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일본의 한국지배를 움직일 수 없는 전제로 해서 한국사가 연구되고, 한국사의 像이 만들어졌다. 2차 대전후 한국의 해방에 의해서 한국인 자신의 손에 의한 한국사 연구가 躍進하여 일본인의 한국사 연구의 독점적 지위는 상실되었다. 한국사에는 自主的발전이 없고, 항상 외세에 좌우되어 왔으며, 사회는 정체하여 근대화의 방향은 전혀 없었고, 문화는 중국문화의 모방으로 한국 독자의 것이 없었다는 등의 사고가 한국사 연구의 일반적인 결론이었다. 한국인에게 자국의 역사로부터 눈을 등지게 만들려는 방향의 연구였다. 이것은 동시에 일본의 젊은 세대에게도 한국사 연구에 대한 흥미를 잃게 했다. 한국사 연구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제외하면, 일반의 역사 연구자 중에서 한국사 연구를 목표로 하는 자는 매우 적어지게 되었다. 어떤 나라의 역사를 연구하면 그 역사에 흥미와 정을 갖게 되는데 일본인들의 한국사 연구는 이와는 정반대였다. 한국 독자의 것이 없었고 일본국내에 있어서도 새로운 觀點에서의 한국사 연구가 시작되고, 지난날의 연구에 대한 반성이 일어났다. 이제는 지난날의 일본인의 한국사 연구의 왜곡이 점차 밝혀지고, 식민지 지배를 전제로 한 연구의 결함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왜곡이 커서 그 극복은 아직 조금도 달성되 있지 않다. 우리는 이러한 왜곡된 역사연구성과를 비판적으로 연구함으로서 진전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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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2.19
  • 저작시기2003.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39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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