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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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는 패미니즘의 대명사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 여성패션 브랜드 쿠카이 광고가 달라지고 있다. 그림이 달라지고 이미지가 달라지고 충격의 정도가 더 강해지고 있다. 마치 간음한 여자 헤스터에게 남겨진 주홍글씨처럼 남자의 육체를 벌하고 있는 징그러운 상채기들. 더이상의 설명도 없고 제품을 연상시키는 시각단서도 따로 없다. 광고를 보는 사람의 반응도 제각각일 것이다. 도대체 주장하는 바가 뭐야? 이 끔찍한 이미지가 도대체 브랜드에 도움이 되기나 하는 걸까? 쿠카이와 이 그림은 도무지 무슨 상관관계가 있단 말인지? 오만무례하고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광고다. 이 광고의 메시지를 해독하는 실마리는 로고마크에 있었다. 남자의 몸을 향해 벼락을 치는 형태의 브랜드 마크를 사람들은 익히 기억하고 있다. 그 마크가 이번 광고에는 빠져 있다. 군더더기로 여겨 과감하게 날려버렸다. 대신 쿠카이라는 로고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마는 극단적 미니멀리즘을 이 광고는 채택하고 있다. 마치 나이키가 로고없이 갈퀴 모양의 마크만으로 얼굴을 대신하듯이…. 뉴 캠페인의 연작광고를 구성하는 광고사진을 보면 아티스트들의 고민이 역력하다. '여자들 기를 살려주는 또다른 방법은 없을까? 좀더 엽기적인 방법으로 남자들을 공격하는 비주얼 전략은 없을까? 남자들을 더 진하게 골탕 먹이는 뾰족한 수가 있을 텐데…. 지금까지 남자들이 행사해 오던 권위, 오만, 가부장적 지위, 독선, 제도적 특권 따위에 철퇴를 가하는 거야.’그런 고민 끝에 남자들을 향해 잔혹한 저주의 징벌을 가하고 있다. 로고에 담겨 있는‘벼락맞는 남자’를 아예 표현소재로 끌어올렸다. 남자들의 벌거벗은 몸에 칼자국을 내기도 하고 불에 덴 상처를 남기거나 징그러운 벌레가 할퀸 흔적을 남기기로 결심을 한 것이다. 세상 모든 여자들의 통쾌한 복수가 체화된 남성학대의 징표가 비주얼의 전부이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듯 상처받을 사내들. 그들의 자존심이 이 광고의 공격목표였다. 그것을 위해 아티스트는 페미니즘의 날이 시퍼렇게 선 비수를 남성우월주의의 심장에다 꽂아버린 것이다. 그 의도가 너무 섬뜩해서 거부감이 들 정도다. 꼭 이렇게 살벌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만큼 아직도 여자는 약한 존재인가? 여자의 자존심이나 정체성은 꼭 남성과의 대결을 통해서만 쟁취되는 것인가? 아무리 페미니즘이라는 미사여구를 들이댄다 해도 상처는 흉터를 남기고 마는 법이다. 언뜻 보기엔 단순 무식해 보이는 사진이지만 이 그림에는 수천년의 성대결 역사가 담겨 있다. 여자를 억압해온 온갖 굴레와 차별에 대한 무언의 항변이 웅변으로 뿜어지고 있는 듯하다. 표현의 관점에서는 패션광고가 이래야 한다고 하는 인식의 굴레들이 박살나고 있다. 감성과 무드, 터치, 스타일, 매너가 송두리째 부정되고 있다. 한편 한편이 마치 패션광고의 성역에 도전하는 듯한 반항이요 실험이다. 그러나 유심히 살펴보면 브랜드의 인지강화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과 은밀한 계산을 들춰낼 수도 있음직하다. 통쾌하기보다는 무서운 일이다. 사회에서 대접받는 여성의 자유롭지 못한 억압을 이 광고에선 반대로 역이용하여 남성을 농락하면서 비웃고 있다. 이 현실은 여성들이 그동안 받아왔던 불만을 짐작할 수 있음인가? 시대가 변천과정을 겪으면서 사회의 조롱을 받는 것인가? 처음부터 여자들이 바라는 점이 남성들보다 우월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런 억압들은 여자들을, 상투적인 표현으로 벼랑끝으로 몰아 기형적인 삐뚤어짐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굳이 추측을 하자면. 한 비슷한 예로 영화 리빙 라스베가스를 보면 한 창녀와 알콜중독자의 피폐한 사랑이 나온다. 여자와 남자는 그다지 큰 특별함 없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다가 남자가 죽기 일보직전에 무료한 섹스를 나눈다. 일부사람들은 정말로 안타깝고 가장 가슴아픈 부분이라지만 페미니즘 성향이 강한 이들은, 마치 여자를 성으로 상품화하여 기만하였다는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여자들의 취약점이면서도 예민한 부분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감동을 끌어냈다는 것은 여자들을 아직도 성적으로만 필요하다는 뜻이냐는 비약도 심하다. 여자들의 이용가치는 성으로만 이루어진다는 일설이다. 사실 알고 보면 그런 쪽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그렇게 심하게 비약한다는 것은 여자들의 열등감이나 강박관념을 강조하여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고 본다. 그것은 그냥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여자가 마지막으로 줄 수 있는 사랑인지도 모른다. 생명탄생을 놓고 볼 때, 남자와 여자의 성행위는 결코 나쁘거나 잘못된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 창녀는 그것밖에는 죽어가는 남자를 위해 줄 수 있는 어떠한 것도 생각지 못했을 테니까. 그런데 왜 남자를 위로하는 것이 그것밖에는 없을까라는 것이 문제점으로 등장한다. 단순하게 비판하자면 여자가 몸을 팔게 될 수밖에 없는 환경탓, 말하자면 여자를 그렇게 내몬 각박한 사회탓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여자들의 인식탓이다. 여성들이 성적도구가 아니라는 당연한 권리를 확산시킬 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에 얽매이는 여자들의 인식을 자유롭게 해줄 필요성이 있다. 그런 면에서 무신경해져야만 온전해 질 수 있다. 그런 것은 여자의 일생이나 주홍글씨에서 여실히 볼 수 있는 점이다. 완전히 무신경해지라고 몸을 함부로 굴리거나 소중히 하지 않으라는 것이 아니다. 사회인식에 매이지 말고 자신의 선택사항에 맡기라는 것이다. 나는 너무 편파적으로 페미니즘을 내세우거나 주눅들어 맘껏 펼치지 못하는 것, 둘 다 부족한 것으로부터 기인되어 나온 것으로 느껴져 그런 것은 쓸모 없다고 느낀다. 너무 많거나 적어도 문제가 되는 것처럼 그저 소신껏 해나가는 여성이 당당하고 멋지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도 여성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여성들은 그 '여자이므로' 하는 권리를 확실히 얻지 못하는 한 끊임없이 싸워서 획득하려 할 것이고 그러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때쯤에는 이 페미니즘도 한물 간 얘기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리 체념하기에는 싸워서 얻어야 할 것이 아직도 무궁무진하다. 이런 것도 우리의 인생이고 삶의 한 추악한 면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바라는 당당한 삶이라는 이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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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2.17
  • 저작시기2004.0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43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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