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기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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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칼빈의 기독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삼위일체에 있어서의 그리스도

Ⅲ. 참 하나님, 참 사람

Ⅳ. 그리스도의 사역 - 그리스도의 삼직

Ⅴ. 그리스도의 신분

Ⅵ.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Ⅶ. 하나님의 형상과 그리스도

Ⅷ. 결론

본문내용

없고 오히려 하나님께 합당한 장엄함만 있었다. 그러한 분이었기에 그는 자신이 하나님과 동등함을 보여주었더라도 아무에게 잘못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실제 그대로 나타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권리상 당연히 자신에게 속하는 것을 사람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취하지도 않으셨다.”이것이 칼빈의 입장이라면 “그리스도를 제쳐놓고 하나님의 적나라한 위엄 그대로의 하나님을 상상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 대신 우상이 있을 뿐이다”하는 자신의 발언을 끝까지 이끌어 가지 못하는 결점이 있다. 그러나 요17:3 주석에서 해결점을 제시한다. “그리스도의 아버지만이 유일하게 참된 하나님이시다. 다시 말해서 그분은 이전에 구속주를 세상에 약속하신 한 분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신격의 하나됨과 진실함이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올리려고 낮아지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것을 이해하면 그때에 그의 신성한 위엄이 모습을 드러내며, 그때에 우리는 그가 온전히 아버지 안에 계시며 아버지께서도 온전히 그의 안에서 알려졌음을 알게 된다. 간단히 말해서 그리스도를 아버지의 신성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사람은 아직도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신 그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위해 한 생소한 하나님을 고안해낼 뿐이다”
2. 그리스도의 인성
성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자리를 버리지 않은 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이 되셨다.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은 바로 그의 인성을 통해서 성취된다. 사실 인성을 가지셔야 했던 것이 바로 이 일을 위해서이다. 그가 우리의 인성을 입으신 것은 하나님으로서는 죽을 수가 없으므로 자신이 죽을 수 있도록 하려는 뜻에서다.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사람이 되심을 통하여 사람들의 형제가 되셨다. “그는 우리를 형제들로 받아들이셨다”고 칼빈이 이야기 하는데 형제 관계는 바로 우리의 공통된 속성 때문이다. 우리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모두 바로 이 공통된 속성에 의존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칼빈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힘들여 강조한다. “속성상 하나님의 아들인 분이 우리의 몸으로 몸이, 우리의 살로 살이, 우리의 뼈로 벼가 되어 우리와 동일하게 되려고 하셨다.”
존 칼빈, 앞의 책, 제2권12장 2절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몸과 영혼으로 구성된 한 참사람을 발견하는데 이것은 그의 인성을 구성하여 성자 하나님으로서의 그의 신성과 분명히 구분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칼빈이 하나님이 인성을 입으신 일을 추상적이요 형이상학적인 사실로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에게 오신 인격적 현실로 본다는 점이다.
칼빈이 그리스도의 인성을 말할 때의 의미는 말 그대로의 사람이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사람이었으며 우리의 속성이 겪어야 하는 모든 연약함을 당하셨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그는 신체적 성장 뿐 아니라 지적 성장도 하셨다. 그와 우리 사이의 유일한 차이점은 필연적으로 우리에게 부여되는 연약함을 그는 자원하여 자발적으로 택하셨다는 것이다. 그분은 본래 썩을 수밖에 없는 몸 안에서 배고픔, 목마름, 추위 및 그 밖에 우리의 본성에 따르는 여러 가지 연약함에 맡겨지셨다. 이 연약함은 흔히 이해하는 추위, 더위, 배고픔, 몸의 다른 욕구들, 천박스러움, 가난 같은 외적인 질고에다 두려움, 슬픔, 죽음의 공포와 같은 영혼의 느낌들까지 포함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중보자께서는 우리의 인간적인 상태에 포함된 모든 연약함을 안고서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우리가 중보자를 찾으러 멀리 갈 필요가 없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우리에게 그 손을 내밀고 계시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의 위엄을 겁낼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은 그가 우리의 형제시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죄를 모르시는 까닭에 인간의 감정에 느끼는 것이 없어 우리를 도울 수 없지 않을까 하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은 그가 우리를 보다 잘 돕기 위해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짊어지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추악한 죄를 한몸에 담당하시고 우리를 영원한 멸망에서 건져내신다.
요셉 하트니안 편저, 한국칼빈주의 연구원 편역, 칼빈의 조직신학해석, p183
그리스도께서 꼭 체험해봐야 자비의 감정을 아시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우리의 여러 비참한 것들로 심험당하지 않았다면 그가 자비로우며 우리를 도와주려 한다는 것을 우리가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와 우리의 인성에는 차이가 있다. 신약은 “분명히 인류 공통의 상태와 그분을 구분하여 그는 참사람이면서도 허물과 죄가 전혀 없다고 말한다.”이 말은 그리스도의 무죄성이 칼빈에게는 속성의 한 조건이라는 뜻이 아니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무죄성을 무엇보다도 순종으로 이해한다. 그리스도와 우리의 차이는, 영혼의 느낌과 열망이 우리 안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거기에 순종한다는 데 있다.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자발적으로 우리 속성의 연약함을 입고서 공포와 고민을 겪으셨음을 강조하며, 이 공포와 고민을 하나님의 아들이 인성을 입으셨다는 본질적인 부분으로 이해한다.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타락한 인성이 아닌 인성을 취함으로써 우리를 자신에게 연합시키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을 다루셨으므로 모든 사람을 상대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칼빈은 “구원의 주인인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 공통의 부모인 아담에게서 나셨으므로 그리스도께서 확보한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는 것”으로 말할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이 인성을 공통으로 지니고 있으며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일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가 아무런 차별 없이 만민에게 공통으로 제공되지 않았다면 아버지께서 그분을 구원의 주인으로 주신 것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되고 말았을 것이다.”그러나 칼빈은 “만민”이라는 말을 특별한 의미로 쓰고 있다. 이 보편적인 용어는 개인들이 아니라 늘 사람이라는 부류를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것은 마치 바울이 유대인이나 이방인, 천한 사람들이나 귀한 사람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구속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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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23페이지
  • 등록일2004.05.20
  • 저작시기2004.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51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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