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커뮤니티는 어떤 모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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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문제 접근

2. 미디어가 곧 메시지 ; 정보 인식의 차이

3. 자정작용?

4. 결론

본문내용

자료도 없죠), 이 대화가 이런 식으로 결말을 나게 만든 책임은 고의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일단 다크케인님께 있습니다. 사실 두번째 참여 요구의 내용이나 형식 모두는 수다에 가까운 것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알리미가 기본적으로 수다방이라는 사실, 그리고 '참여 요구' 자체를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수다 속에서의 예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하신 다크케인님께서 실언하신게 일단 즐거운 수다의 성격이 좀 뒤틀려 버리게 만든 원인 중의 하나군요. 어미 '~노라'에 관한 소개는 주석에 있으니, 그걸 보고 판단하시길.
물론 몇분짜리 알리미 대화 가지고 책임을 묻고 할 필요야 없겠죠.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보야야만 할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알리미의 정체성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모자란 수준이었다는 것이지요. 알리미라는 공간이 가지는 정체성을 다시 정의하자면, 통시적이기 때문에 비교적 정제된 '참여 요구'가 올라와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되어있는 포룸과는 달리2), 알리미는 마치 '현실세계'의 수다처럼 매우 자유롭게 '참여 요구'가 개진될 수 있으며(물론 구조적 한계는 있지만) 아카드 그리고 알리미 자체의 개방성으로 인해 어떤 분이라도 그러한 논의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위 대화에서 보여진 다크케인님의 실수는 이것을 혼동한 데 그 발단이 있죠.
어찌됫든, 위 사태로 인해 겜맨님께서 그렇게 참여 자체를 봉쇄당하게 되는 것은 좀 무리가 있는 일임이 분명합니다. 물론 게시판의 글들과 '분위기', 알리미에 남겨져 있는 텍스트들로 미뤄 볼 때 좀 더 직접적인 원인이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지만, 그것은 완전히 지워져버린 듯 하군요. 겜맨님의 권리를 박탈한 이유와 직접적인 증거3)도 모른 채 아카드-커뮤니티에서 사실상 겜맨님을 추방하는 일(포룸의 통시성을 기억하시길)은 아카드가 커뮤니티가 되면서 깔고 들어간 전제인 개방성 추구를 뒷받침하기 위해 요구되는, 모두에게의 참여 보장과 그에 대한 제제를 가할 때는 민주적인 방법에 의거한다는4) 것에 상당히 위배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요.
즉, 겜맨님처럼 긍정적 참여 의사를 가진 한 주체를 아카드-커뮤니티에서 추방하는 일은 모두가 납득할 수 있게끔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죠. 운영자 직권도 아카드가 가지는 전제 앞에선 굴복해야 하니까요.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면, 그 내용을 공개해야죠. 겜맨님 글을 보면 메모리가 일메가씩 깎인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아카드 켐페인의 서버장애같은 일 하신 분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 가부는 정팅에서의(다른 방법도 가능할 수 있겠지만) 투표로 결정날 일입니다.
-주(강준만도 주 달아요.. 케케)-
1)―노라[어말 어미] 《동사 어간이나 시제의 -았(었)-·-겠- 등에 붙는 문어 투의 종결 어미.》
1.자기의 동작을 격식을 차리어 말하는 뜻을 나타냄.
¶나는 싸웠노라, 그리고 이겼노라.
2.어떤 사실을 장중하게 널리 알리는 뜻을 나타냄.
¶吾等은 玆에…朝鮮人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己未獨立宣言書). 엠파스 국어사전, 키워드 '노라'.
2)겜맨님께서는 이것을 혼동하셨죠. 상당히 많이,, --;
3)게다가 공지에 상응하는 조치도 아니했으니 아주 이번 껀을 모르는 이도 있을 수 있죠.
4)누구나 제제해야한다고 동의할만한, 모종의 피해를 끼치는 일의 범주에 대해선, 암묵적으로 합의가 되어 있죠. 문제는 그에 대한 제제의 정도, 아니 그보다도 모호한 범주에 속한 일이거나 이번처럼 그런 범주에 속했다고 생각되는 일로 인해 참여자들(여기선 아카디언)이 판단해야만 하는 경우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근거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되겠지요. 이번 건과 같이 긍정적 참여의사를 가진(혹시라도.. 가졌던) 한 주체를 '추방'하는 일과 같이 큰 일의 주체는 참여자들 일반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이미 사람들의 모임으로서 정체성이 확정된 커뮤니티인데, 그 목적에 맞지 않는 참여란 다른이에게 폐를 끼치거나 커뮤니티 자체의 파괴 정도 이외엔 있을 수가 없지요.
4. 결론
앞에선 맥루헌적 관점을 따르겠다고 했으나, 사실은 현상 파악에선 맥루헌적 관점, 방향 제시에선 해석학을 기본에 두고 작업을 했다. 물론 맥루헌적 관점만으론 방향 제시가 되질 않는다. 마치 한비韓非의 생각처럼, 사회과학은 기준과 시스템을 구축한 후에야 그 위에서 무위를 추구하는데, 맥루헌적 관점은 저렇게 엉성하게나마 기준과 시스템을 세우기에는 알맞지 않다. 또한 해석학적인 방향 제시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그와 상당히 배치되는 면이 많은 맥루헌적 관점을 상당부분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미디어=메세지라는 공식이 아니라, 미디어=메세지와 형상의 상호침투적 총체라는 명제 하에서 논의를 출발시킨 것이다.
참여, 즉 다방향적 미디어로서 인터넷이 가지는 특성은 다양성을 가진 모든 것에 대한 다원적 관심에 기초한 신경회로 확장판이 가져오는 해석학적 지평의 확장, 즉 인문적/인문학적 사고와 그 지평의 확장, 그리고 오락적 활용에 쓰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전자에 대해 너무도 소홀히하고 있다. 인터넷 이념, 아니 각자의 관심사에 대한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위해선 인문학 공부는 상식적인 것이 아니던가? 또한 해석학적 과정이 지속적으로 행해지기 쉬운 곳이 바로 인터넷 상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 위에서, 우리가 가지는 수많은 단절이 극복될 수도 있지 아니한가?
인터넷 역시, 궁극적으로는 인문적인 공간이 되어야 한다. 또한 거대하게 확대된 다방향적 미디어라는 장점을 활용해, 지적 교류를 하기 위해서 우리는 인문학 공부를 통해 인터넷 미디어에 인문학적 형상과 메세지를 담아낼 수 있게끔 해야만 할 것이다.
참고문헌/싸이트
마셜 맥루헌, 박정규 역, 『미디어의 이해 ; 인간의 확장』, 커뮤니케이션북스, 서울, 2001.
『노자』
탁석산, 『한국의 정체성』, 책세상, 서울, 1999.
김상봉,『나르시스의 꿈 ; 서양정신의 극복을 위한 연습』, 한길사, 서울, 2002.
A.C. 그레이엄, 나성 역, 『도의 논쟁자들 ; 중국 고대 철학논쟁』, 새물결, 서울, 2001.
www.Ddanzi.com
www.Ahehheh.com
www.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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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8.27
  • 저작시기2004.08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6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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