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界) 감리사로 임명해 압록강 대안인 서간도지역의 한인을 보호하도록 함.
1898 내부대신 이건하(李乾夏)가 함북관찰사 이종관(李鍾觀)에게 국계 답사를 지시. 경원군수 박일헌(朴逸憲) 등은 “흑룡강 하류 동쪽이 조선 땅인데 청나라가 러시아에 할양한 것은 용인할 수 없으니 3국이 회담해야 한다”고 보고.
1900년 경 평북관찰사 이도재(李道宰)가 압록강 대안지역을 각 군에 배속하고 충의사(忠義社)를 조직해 이주민을 보호.
1901 변계경무서를 회령에 설치하고 교계관(交界官) 2명을 임명. 무산과 종성에 분서를 둬 간도 한인을 보호 관할하고 사법·행정·위생을 담당해 고시문을 내고 일지를 기록.
1902 이범윤(李範允)을 간도시찰사로 임명. 간도 지역에서 민의 판적(版籍)에 든 자가 2만 7400여 호, 남녀 10여만 명으로 조사됨.
1907 김현묵(金賢默) 외 13명, 주범중(朱範中) 외 13명 등 북간도민들이 “수십만의 생명을 보호해 달라”며 대한제국 내각에 청원문 제출.
1983 김영광(金永光) 의원 등 국회의원 55명 ‘백두산 영유권 확인에 관한 결의안’ 국회 제출.
1995 김원웅(金元雄) 의원, 국회에서 “간도는 우리 땅”이라고 주장.
1898 내부대신 이건하(李乾夏)가 함북관찰사 이종관(李鍾觀)에게 국계 답사를 지시. 경원군수 박일헌(朴逸憲) 등은 “흑룡강 하류 동쪽이 조선 땅인데 청나라가 러시아에 할양한 것은 용인할 수 없으니 3국이 회담해야 한다”고 보고.
1900년 경 평북관찰사 이도재(李道宰)가 압록강 대안지역을 각 군에 배속하고 충의사(忠義社)를 조직해 이주민을 보호.
1901 변계경무서를 회령에 설치하고 교계관(交界官) 2명을 임명. 무산과 종성에 분서를 둬 간도 한인을 보호 관할하고 사법·행정·위생을 담당해 고시문을 내고 일지를 기록.
1902 이범윤(李範允)을 간도시찰사로 임명. 간도 지역에서 민의 판적(版籍)에 든 자가 2만 7400여 호, 남녀 10여만 명으로 조사됨.
1907 김현묵(金賢默) 외 13명, 주범중(朱範中) 외 13명 등 북간도민들이 “수십만의 생명을 보호해 달라”며 대한제국 내각에 청원문 제출.
1983 김영광(金永光) 의원 등 국회의원 55명 ‘백두산 영유권 확인에 관한 결의안’ 국회 제출.
1995 김원웅(金元雄) 의원, 국회에서 “간도는 우리 땅”이라고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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