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의 역사와 간도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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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간도의 역사와 간도협약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간도의 역사

2. 간도문제란 무엇인가

3. 간도협약이란 무엇인가

본문내용

모든 법령은 통감부 파출소가 승인하지 않을 것임을 결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러 ·일전쟁 후 러시아에서 얻은 철도 ·탄광 등 만주에 있어서의 이권문제가 엇갈리게 되자 양국협상을 통하여 ‘청나라는 일본이 간도가 청국영토임을 인정하면 만주에 있는 일본의 이권에 대해 양보하겠다’는 확약을 받고, 1909년(융희 3) 9월 4일 한국영토인 간도를 마음대로 청나라에 넘겨 주는 ‘간도에 관한 청 ·일협약(간도협약)’을 체결하였다. 이 협약에 따라 통감부 간도파출소는 폐쇄되었으나 일본총영사관으로 대체됨으로써, 간도에 있어 한국인의 민족적 항쟁을 억압하고 독립운동을 방해하는 공작을 그대로 지속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더욱 집중화할 수 있는 효과까지 얻었다. 1909년 현재 간도지방 주민조사로 나타난 한국인은 8만 2,900여 명이고, 청국인은 2만 7,300여 명이었다.
3. 간도협약이란 무엇인가
1909년(융희 3) 9월 청(淸)나라와 일본이 간도(젠다오)의 영유권 등에 관하여 맺은 조약.
청나라는 19세기 말기부터 간도가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여 군대까지 투입하고 지방관까지 두었으나, 한국도 그에 강력히 맞서 영토권을 주장하였으므로 간도영유권 문제는 한·청 간의 오랜 계쟁문제(係爭問題)였다.
일제는 1905년(광무 9)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뒤 청나라와 간도문제에 관한 교섭을 벌여 오다가 남만주철도 부설권과 푸순[撫順]탄광 개발 등 4대 이권을 얻는 대가로 한국 영토인 간도를 청나라에 넘겨주는 협약을 체결하였다. 이 협약은 전문 7조로 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① 한·청 양국의 국경은 도문강(圖們江:두만강)으로써 경계를 이루되, 일본정부는 간도를 청나라의 영토로 인정하는 동시에 청나라는 도문강 이북의 간지(墾地)를 한국민의 잡거(雜居)구역으로 인정하며, ② 잡거구역 내에 거주하는 한국민은 청나라의 법률에 복종하고, 생명·재산의 보호와 납세, 기타 일체의 행정상의 처우는 청국민과 같은 대우를 받으며, ③ 청국정부는 간도 내에 외국인의 거주 또는 무역지 4개처를 개방하며, ④ 장래 지린[吉林]·창춘[長春] 철도를 옌지[延吉] 남쪽까지 연장하여 한국의 회령(會寧) 철도와 연결한다는 것 등이었다.
이것으로 일본은 만주 침략을 위한 기지를 마련하는 동시에, 남만주에서의 이권을 장악하고, 조선통감부 임시간도파출소를 폐쇄하는 대신 일본총영사관을 두어 한국인의 민족적 항쟁운동을 방해하는 공작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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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4.09.30
  • 저작시기2004.0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68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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