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희곡사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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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전통극의 이해
1) 마을굿
2) 무당굿
3) 풍물굿
4) 탈춤
5) 꼭두각시놀음
6) 판소리
7) 창극

Ⅱ. 1910~1920년대의 희곡
1) 윤백남
2) 김영보
3) 김정진
4) 조명희
5) 김우진

Ⅲ. 1930~1940년대의 희곡
1. 1930년대의 연극과 희곡
2. 일제말 암흑기의 연극과 희곡

Ⅳ. 광복 이후의 희곡
1. 1945~1950년
2. 1950년대의 희곡
3. 1960년대의 희곡
4. 1970년대의 희곡

Ⅴ. 한국 근대 연극론의 흐름
1. 연극성과 문학성
2. [신극]의 개념과 계몽주의적 연극관
3. 프롤레타리아 연극과 [극예술연구회] 그리고 대중극
4. 이데올로기의 연극화, 좌·우의 대립
5. 1960년대 이후, 창작극인가 번역극인가

본문내용

연극와 문학의 이중적인 존재이다. 희곡이 먼저냐, 공연이 먼저냐 하는 것은 각 시대의 문화적 사회적인 배경과 함께, 각 지역 민족의 고유한 전통과도 관련이 있다. 한국연극사를 거슬러 올러갈 때 가면극인형극창극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연극은 희곡중심이기 보다는 공연, 특히 놀이 중심의 성격이 강하였다. 전통 속에서 희곡이 독립적인 문학 장르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구비문학 가운데의 하나인 연희문학으로 전승되어 온 현실이었다.
하지만 이른바 개화기의 시기를 맞아 [원각사]가 설립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열린 마당에서의 놀이에서 실내극장에서의 무대극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로부터 일본 제국주의의 산물이어서 소중한 유산인 우리의 전통극을 상실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삶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놀이정신은 완전히 거세된 것이 아니어서 일제치하에서도 [대중극]의 이면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던 것이고, 오늘날의 마당극운동으로 그 정신이 계승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신극]의 개념과 계몽주의적 연극관
한국근대연극의 출발은 전통극의 계승 극복이기보다는, 서구 리얼리즘 무대의 수용에서 시작된다. 신파극이 성행하던 시기에 서양의 리얼리즘 연극을 접하게 된 일군의 선구적인 연극인들은 민중계몽의 수단으로서, 서양의 소극장운동을 개념을 주장하게 되었다. 그래서 서양의 리얼리즘 연극을 신파극과 구별하기 위해 [신극]이라 불렀던 신극론자들은 계몽성을 한국에 적용시키고자 했지만 무대연극의 전통을 가지고 있지 않고, 게다가 한국의 전통극을 완전히 무시한 이들은 관객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3. 프롤레타리아 연극과 [극예술연구회] 그리고 대중극
사회주의 문화운동의 영향을 받아 한국에서의 노동자, 농민을 위한 혁명적 연극을 목표로 하여 펼쳐나간 신극운동 중의 하나가 바로 프롤레타리아 연극이다. 하지만 각자의 능력부족과 일제의 탄압에 의해 소기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극예술연구회](극연)은 서양의 근대연극을 이 땅에 뿌리내리기 위한 극단조직, 작가와 작품의 연구, 당대의 저널리즘에 열성적으로 논지전개 등의 적극적인 시도를 펼친다. 하지만 한국의 연극전통에의 무지와 지나친 계몽성이 대다수의 관객들로부터 외명당하게 했다.
이와는 다르게 1930년대 중반 [동양극장]의 설립의 계기로 그 전성기를 맞게된 대중극단체들은 앞다투어 돈벌이가 되는 연극만을 무대에 올리기 시작했다. 이 대중극은 관객들의 흐림으로써 일제의 식민지배체제를 용이하게 해주었다는 역효과를 낳기도 했지만, 당대의 대중정서를 사로잡는 기교와 주제로써 식민치하에서 대중들의 억눌린 울분을 카타르시스해준 긍정적인 면도 아울러 지니고 있다.
4. 이데올로기의 연극화, 좌우의 대립
해방을 맞은 연극계에는 좌냐, 우냐의 대립만이 유효할 뿐이었다. 좌익측은 진보적인 민족연극론을 내세우면서, 종래의 [신극]과 [신파극]의 대립을 변증법적으로 지양 극복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이에 비할 때, 우익측에서는 뚜렷한 방법론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기존의 [극연]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1930년대 후반에 귀국한 젊은 연극인들에 의해 번역극운동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5. 1960년대 이후, 창작극인가 번역극인가
해방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서양연극이 물밀 듯 밀려오고, 이에 편승한 일부 연극인들의 상업주의가 결합하면서 서양의 연극과 연극이론이 중심이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대한 반성은 최근에야 제기되고 있다. 이는 구체적으로 1970년대 이후 제기된 전통극에 대한 관심과 마당극운동, 그리고 80년대의 민족극운동, 그리고 일부 뜻있는 연극인들의 내 것에 대한 자각에 따른 창작과 연구의 성과 등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세계가 하나로 열려 있는 이 시대에 창작극이나 번역극의 어느 한 편의 우위를 고집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그보다는 그것을 만들고 받아들이는 우리의 문화적 자긍심이 과연 얼마만한 자기정체성을 확보하고 있는가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1960년대 이후의 [드라마센터]의 개관과 많은 소극장의 설립, 그리고 다양한 동인제 극단의 출현을 통해, 조심스럽게 그리고 꿋꿋하게 자기만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고집해온 차범석이근삼오태석이강백최인훈 등의 희곡이 오늘날 여전히 제 빛깔과 향기를 낼 수 있는 것은, 바로 [한국연극]에 대한 진지한 모색의 값진 결과인 것이다. 이제는 더 많은 연극인들의 분발을 기대하며 우리는 관객으로서의 맡은 바 기여를 모름지기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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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0.25
  • 저작시기2004.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71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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