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의 문화발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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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삼국시대의 문화발달과정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고구려
1. 성립과 발전
2. 영토확장과 전성기
3. 수·당나라와의 투쟁
4.정치제도
5.사회·경제
6.문화와 교육
7.국사편찬
8.시가와 음악
9.미술
10.불교
11.도교
12.풍속
13.고구려의 멸망

백제의 성장과 일본진출
1. 百濟의 淵源과 成長
2. 百濟의 日本進出

본문내용

적지 않다.
국왕과 갈문왕의 관계에 변화가 오게 된 계기는 법흥왕 15년 불교수용을 둘러싸고 일어난 싸움에서 국왕권이 승리하면서였다. 갈문왕의 위치를 약화시키려는 의도적인 조치로 상대등의 설치가 이루어졌다. 지배체제가 안정적일 때에는 국왕과 귀족회의의 의장인 상대등의 관계가 조화를 유지하였으나 지배체제가 동요되면서 오히려 상대등은 위협적인 존재로 변모하였다. 그리하여 비담의 난을 진압하고 상대등에게 대체되는 새로운 관부로 집사부와 그 장인 중시가 설치되었다.
참고문헌
김철준, 『한국 고대사회연구』, 지식산업사, 1975
신형식, 『한국 고대사의 신 연구』, 일조각,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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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욱, 『』신라국가 형성사 연구, 일조각, 1982
윤내현, 『한국고대사 신론』, 일지사, 1986
이기동, 『신라 골품제사회와 화랑도』, 한국연구원, 1980
김영하, 「신라 발전단계와 전쟁」,『한국고대사 연구』4, 지식산업사, 1991
이우태, 「신라의 촌과 촌주」,『한국사론』7, 서울대 국사학과,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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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신라]
신라탑의 전형기와 정형기
신라석탑의 전형기의 대표라 할 수 있는 것은 경북 월성의 감은사탑과 고선사탑일 것이다. 이들은 한국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으로 대표할 수 있는 것이다.
우선 7세기 전반 삼국시대 말기에 이르러 백제와 신라에 세워진 석탑의 초기 형태와 양식은 달랐지만, 신라의 삼국통일 대업을 이룬 후에 이 두 양식은 합쳐지게 된다. 통일기에 건립된 감은사지 3층석탑이 가장 집약 정돈된 형식으로 가장 시원적인 양식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감은사지 3층 석탑, 고선사지 3층 석탑은 전형기의 석탑으로 양식적으로는 목조 건축양식을 충분히 따랐다고 할 수 있다. 이 중 감은사지 3층 석탑으로 전형기의 석탑을 살펴보면 감은사지탑은 동·서쌍탑이 같은 형식, 같은 규모의 신라 최대의 3층 석탑이다. 2층기단 위에 3층 탑신부와 상륜을 차례로 형성하였다. 상하층 기단 각 면에 우주와 탱주를 세워 목조건축의 축부를 모방하였고 탑신부에서도 양쪽 우주를 모각하였다. 옥개석은 폭이 줄어들었고 추녀 밑은 전각에 이르기까지 직선을 이루며 그 밑에는 몇 단의 층이 마련되어 있어서 곧 전탑의 양식을 보이고 있다. 옥개 상면인 낙수면은 전탑형식과 달리 층굽이 없는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전각에서 반전이 뚜렷하여 목조건축의 지붕을 모방하고 있다.
이같은 양식이 한국 석탑에서 각 부의 구성은 백제의 석탑과 같이 많은 석재를 사용하고 있는데 곧 목조 건축의 구조성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탑의 전체 구조에서 기단부와 탑신부를 막론하고 목조 건축을 모방하여 석재로서 구현함으로써 신라석탑-한국석탑의 시원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하층기단의 탱주가 3주이며 초층 탑신 네귀퉁이의 우주도 別石으로 세움으로써 시원양식의 각 부가 신라 정형의 모태가 되어 옥개받침이 5단이고 낙수면은 지붕 모양으로 경사를 보이게 된다. 그리고 괴임 수법에서도 상층기단을 받는 하층기단 갑석 상면의 괴임은 角形 2단이며 옥개석 정상에 각형 2단의 괴임을 마련하여 그 위층
의 부재를 받고 있다.
백제 미륵사지 석탑-정림사지 5층 석탑 ----+-------감은사지 3층석탑---- 석가탑
신라 분황사 석탑 -신라 의성리 석탑------+ (전형기) (정형기)
8세기에 건립된 석탑들은 전형기의 양식을 정형화한 것으로 정형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 건립된 석탑들은 전형기의 탑을 규범으로 삼고 축소되거나 간략화 되어 변해간다. 이들 탑은 모두 방형의 기본적인 평면으로 상하 2층 기단을 지니고 3층 또는 5층의 탑신부를 가지고 있다.
정형기 석탑의 양식의 특징은 석재의 단일성이라고 할 수 있다. 석가탑을 예로 들면 탑신과 옥개석은 각각 1석씩 이며 탑신에 양 우주가 각출되고 옥개석에는 하면에 층계받침이 마련되어 있을 뿐이다.구조상으로 보면 기단부의 형식은 전형기 탑의 기단과 같이 하층 면석에 3주의 탱주, 상주에는 2주의 탱주가 모각되어 있다. 이러한 단일성의 경향은 복잡한 가구 양식이 간략화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기단과 탑신부의 균형도 거의 비슷한 크기로 되었다. 이러한 예로 8세기 중엽에 통일 신라의 탑건립은 전형적인 양식의 정형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세부적으로 정형기의 탑을 살펴보면 여러 개의 장대석으로 이루어진 지대 위에 2층 기단이 놓인다. 이 기단은 상하층이 동일한 형식이며 각 면석의 양쪽에 우주를 표시하고 중간에 2주의 탱주를 모각하였다. 하층기단은 갑석에 부연이 없고 상면에 상층기단 면석은 받는 圓弧와 각형의 괴임이 마련되어 있으나 상층기단에는 갑석 하면에 부연이 정연하게 마련되어 있고 탑신부를 받고 있는 괴임대도 각형 2단이 정연하게 각출되었다.
탑신부에서는 각층 탑신에 양 우주를 표시하고 옥개석을 하면에 층단의
옥개받침이 5단씩 마련되어 있으며 낙수면 꼭대기에는 2단의 각형괴임을 마련하여 그 위층의 탑신석을 받고 있다. 그리고 여러 개의 석재가 생략되어 단일의 탑신과 옥개석을 이루게 되었고 기단부의 탱주는 상하층에서 3주가 2주로 줄어든다.
8세기 중엽에 이루어진 신라식 일반형 석탑의 정형인 방형의 평면의 기본양식과 단일성의 중층형식은 이후 우리 나라 석탑의 주류이자 특색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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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호, 『한국의 석조 미술- 한국의 탐구』,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8
김원룡, 『한국의 미 v.9 석탑』, 중앙일보사, 1985
황수영, 『한국의 불교 공예·탑파』, 혜안, 1998
황수영, 『한국의 불교 미술』, 혜안,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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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호, 『석탑』, 대원사, 1991
박경식, 『우리나라의 석탑』, 역민사, 1999
박응재, 「신라석탑의 양식 변천에 광한 연구- 경주지방 석탑을 중심으로」, 단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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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1.07
  • 저작시기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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