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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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마천의 사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을 능가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가 힘들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든다.
이어서 《사기》에 보이는 심리묘사에 대해 설명하겠다. 현대 문학에서 심리묘사는 이제 별 화제거리는 아니다. 문학 세계에서는 '그럴듯한 상황에서 그럴듯한 묘사'가 되면 하등 문제가 안되기 때문이다. '그럴듯한 상황에서 그럴듯한 묘사'를 우리는 보통 허구라고 부른다. 그런데 문제는 역사 저작에서의 심리묘사이다. 과연 과거의 사건과 그 사건에 관련된 인물을 기록하는 역사에서 어떻게 심리묘사가 가능할까? 특히나 어느 특정 인물의 일생 사적을 묘사하는 경우 또한 그 인물이 동시대인이 아닌 과거의 인물인 경우 과연 심리묘사라는 게 가능할까? 심리의 유동과 변화는 설사 한 가족 사이에도 쉽게 파악할 수 없는 것인데 하물며 고인(古人)이랴?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무리 사료 수집에 만전을 기한다 해도 완벽하게 수집할 수는 없는 게 해당 인물에 관한 사료일 것이다. 즉 사료는 유한하다. 유한한 사료를 근거로 인물을 묘사하는데 있어서는 어쩔 수 없는 공백이란 것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공백을 메우는데는 부득이 문학가의 수단이 필요하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그럴듯한 상황에서 그럴듯한 묘사'--허구--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나 인물을 묘사하는 경우에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 인물의 생명력은 약동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청대(淸代) 대명세(戴名世)는 「선입관을 갖지 말고 객관적으로 기록」(虛其心以求之, 平其情以論之)하기를 요구하면서도 이와 동시에 「묘사하려는 인물의 입장이 되어 그런 상황 아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設其身而處其地, 其情而度其變)를 추측하여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역사적 인물의 묘사에 있어서 합리적인 허구의 허용은 비단 중국(中國)의 대명세(戴名世)만 주장했던 것은 아니었다. 서양의 콜링우드(R.G.Collingwood)나 렉스 마시틴(Rex Mastin) 역시 각각 「역사가의 마음 속에 사실을 재연한다」(re-enactment of past experience)든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그럴 듯하게 서술」(transhistorical generalization)할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즉, 내가 그 인물이라 되어 그 인물의 마음을 조심스레 헤아려 그 인물과 정신적인 교감을 이루는 것이 극히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사기》를 지은 사마천이 스스로 이점을 밝힌 바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기》의 첫째 편 <오제본기>의 논찬(論贊)에서 「배우기를 좋아하고 심사숙고하지 않으며 마음으로 헤아려 그 숨은 뜻을 파악하지 않는다면 이해할 수 없다. 이런 도리는 견문이 좁은 무식한 자에게는 말해봐야 이해를 못한다」(非好學深思, 心知其意, 固難爲淺見寡聞道也) 고 고백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마음으로 헤아려 이해한다(心知其意)'란 《상서》라는 책이 워낙에 오래된 전적(典籍)이라 세월이 흐르며 없어진 부분이 종종 다른 책에 보이므로 그럴 가능성이 극히 충분히 있는 내용에 대해서는 마음으로 통해 짐작해서 적절하게 인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심지기의(心知其意)'가 비록 《상서》라는 책을 겨냥하여 사용한 용어지만, 《사기》의 첫 편에 명시되어 있다는 것은 곧 전체 서술의 지침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 '심지기의(心知其意)'는 결국 마음이 통해야 한다는 것이며 사마천은 스스로 그것을 실천에 옮겼다. 공자(孔子)와 굴원(屈原)을 묘사한 후 공자와 굴원이 「정말 보고 싶다」고 했으며(想見其爲人), 공자(孔子)의 사당(祠堂)과 굴원이 자살한 곳을 직접 찾아가 각종 유물(遺物)과 주위 경관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사색에 잠긴 것 등이 바로 이점을 웅변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사기》속에서 심리묘사가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오히려 사마천의 인물묘사기교가 매우 다양했음을 입증할 뿐더러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재연하는데 매우 노력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런 점에서 《사기》에 보이는 심리묘사를 하등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필자의 조사로는 <범저채택열전(范雎蔡澤列傳)>, <염파인상여열전(廉坡藺相如列傳)>, <이사열전(李斯列傳)> 등 3편에 심리묘사가 비교적 많이 보인다. 그중 <이사열전(李斯列傳)>의 다음 부분만 보기로 한다. <이사열전> 거의 끝 부분에 진시황의 둘째 아들 호해(胡亥)가 이사(李斯)를 힐난(詰難)하는 대목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이사(李斯)는 두렵기도 하고 또 현재 자신이 누리고 있는 부귀영화를 놓치고 싶지도 않아 어떻게 때꾸해야 좋을지 언뜻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리하여 호해(胡亥)의 의도를 겨냥하여 비위를 맞추고자 글을 써서 올렸는데..
(李斯恐懼, 重爵祿, 不知所出, 乃阿二世意, 欲求容, 以書對曰...)
<이사열전>에서 심리묘사의 압권(壓卷)이라 할 수 있는 이 부분은 이사(李斯)의 심리적 변화와 의식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묘사해내고 있다. 생각해 보라. 이사(李斯)는 진(秦)나라 때 사람이다. 사마천(司馬遷)은 한(漢)나라 때 사람이다. 어떻게 자기 친구도 아닌 이사(李斯)의 심리까지를 역사책에 서술한단 말인가? 이 밖에도 《사기》에 보이는 문학기교는 실로 다양하다. 일일이 다 분석할 수도 없어서 가장 특이해 보이는 역사책의 심리묘사(心理描寫)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았다
<글을 마치며>
司馬遷은 자신의 어려운 현실, 울분과 하늘에 대한 의구심을 역사서술을 통해서 해결하였다. 司馬遷은 단지 현실 속에서의 굴욕에 패배하지 않고 자신의 역사 서술이 미래에 분명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것을 믿고 자신의 목표를 실천했다. 「太史公自序」를 통해서 역사가로서의 자긍심과 역사 서술의 동기, 자신의 생애와 생애 속에서 추구해온 많은 신념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伯夷列傳」을 통해서 자신의 처지를 단순히 비관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서 일반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의 책에 대한 감탄사를 내뱉기 전에 그의 험난했던 인생여정과 그것을 뛰어넘은 그의 열정에 대해서 잠시라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그것이 사마천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사마천의 열정과 그 진지함에 대하여 좀더 많은 생각하고 그에게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

키워드

사마천,   사기,   중국,   고전,   정리,   견해
  • 가격2,000
  • 페이지수29페이지
  • 등록일2004.12.31
  • 저작시기2004.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81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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