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순응과 대리 만족의 교육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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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집단 순응과 대리 만족의 교육열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소수파가 되는 두려움

2. 의례로서의 교육열

교육열의 역사성

이탈할 수 없는 신성함

3. 어머니의 헌신

4. 양비론의 수구성(守舊性)

5. 결론

본문내용

주재자, 베일에 가려 드러나지 않는 기획자요 권력자들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그러나, 의례의 선악 구도에서 악의 편에 속하는 자들로서, 우리의 교육열 의례가 그 논리적 수준에서조차 자가당착적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4. 양비론의 수구성(守舊性)
최근에 벌어진 한 사건이 우리 교육 의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상징하고 있어 이를 분석하는 것으로써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체벌을 한 교사를 학생이 경찰에 신고하고 경찰은 출동하여 교사를 연행해간 사건이다. 여기서 이 교사는 의례의 선악 구도에서 어느 편에 속할까? 그가 불법 과외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거나 교무회의에서 비교육적 관행의 지속 결정을 방관했거나 혹은 촌지수수를 즐겼다면 악의 편이 될 것이며, 그렇지가 않고 그의 주어진 상황에서 평교사로서 할 수 있는 개혁적 노력들을 기울이며 살아왔다면 선의 편이 될 터이다. 그런데 그런 미묘한 목록들을 우리는 판단할 수가 없고 또한 일일이 그럴 필요도 없다.
이 사건에서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 판단해야 할 부분은, 그가 폭력 교사로서 신고되고 연행되었다는 점이다. 일체의 체벌이 교육부의 방침으로 금지되었고 사회적 여론도 그러한데, 그가 체벌을 감행했으며 학생과 젊은 경찰은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권위에 도전했다는 점이다. 그의 평소의 성향은 중요하지 않으며, 체벌에 대해 폭력에 대해 그리고 이런 것들을 신고하고 도전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야 마땅하다. 그랬으면, 공적 이성인 체벌 금지가 어떻게 개인적 양심들의 일상 속으로 확산될 수있는지, 어떤 체벌이 악의 편인지, 불가피한 체벌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 교사의 폭력에 대해 신고나 도전은 어떤 절차로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건은 그렇게 전개되지 않았다. 언론은 일제히 무너진 교권에 대한 우려와 비상식적 도전에 대한 분노로 넘쳐났다. 체벌 금지는 체벌에 대한 도전의 금지로 이어져 또 하나의 양비론을 빚어냈고, 학교 측은 신고자를 색출하여 전학시켰는데, 이 과정에서 해당 학생과 학부모의 사죄와 간청은 묵살되었고 교권을 세우기 위해 처벌이 강행되어야 한다는 다른 학부모들로부터의 압력은 받아들여졌다. 이윽고 교육부는 ‘교육적 체벌’을 허용하기로 방침을 바꾸었다.
이것이 우리 교육 의례의 현실이다. 시비를 가려내어 보다 유연하게 선악을 점검하려는 진지한 이성적 토론은 없고, 집단 감성적인 양비론이 오래된 선악의 구도를 불가침의 신성한 것으로 재확인하고 만다. 의례의 주재자들은 그런 양비론을 휘갈기거나 처벌을 강행하거나 ‘교육적 체벌’이란 애매하고 신비스런 강령을 던져 놓는다. 추종자들은 어김없이 집단적 행동 양식에 민첩하고, 이단으로 낙인찍힌 희생자는 보이지 않는 희망을 구하려 경계의 눈초리들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친구들로부터의 폭력에 대한 신고와 도전은 권고되지만, 교사로부터의 폭력에 대한 신고와 도전은 파문(破門)당한다면, 이는 참으로 신비스런 것이다. 이 시대의 공적 이성은 이렇듯, 명료한 근거를 추구하지 못하고, 의례에 끌려 다니기 때문에 자체 모순적이고 이상한 메시지를 양산해낸다. 당연히, 사적 이성, 그 자율적 양심으로의 환류는 막히게 된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문제 해결 능력에 관계된다. 집단 순응의 대세에 사로잡히기만 하면, 더 이상의 문제 제기는 죄악시 되고마는 것이다. ......영혼을 심판하는 이 의례를 어찌할 것인가?
의례를 부수는 방법은 합리화이다. 합리화는 일차적으로 개인의 등장과 관련된다. 집단 감성에 사로잡혀 매몰된 개인을 드러내는 일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개인의 감성, 그 욕망의 충돌로부터 시작된다. 그 후에야 충돌을 제어하는 이성적 논의가 진행된다. 그리고 개인주의에 터한 공동체주의로의 이동이 가능할 것이다.
집단 순응과 대리 만족의 의례를 주재 또는 추종하는 억압된 어머니들의 개인적 욕망이 실현되는 계기가 필요하다. 이는 물론 제도를 통한 개혁과 그리고 의식의 개혁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능력에 비해 지나치게 억압된 우리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을 도모하지 않고서는, 이 이상한 열기를 치유하기 힘들 것 같다. 국민의 정부가 추진하는 대입의 다양화, 고등학교 문화의 변화, 새교육 공동체나 학교 운영 위원회를 매개로 하는 교육 현장의 민주화등이, 현재 우리 교육의 강력한 주체인 어머니의 변화를 담보하지 않고서는 결실을 보기 어렵다.
전교조의 제도권 진입에 대한 설레임도, 사회 전반에 있어 일상의 민주화를 주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강력한 세력의 등장에 대한 기대 이상의 그 어떤 것도 아니다. 학부모 문화가 변화하지 않고서는, 단체 행동권이 없는 전교조는 수 많은 보수적 교육 관행들의 압력을 견디어 내는 데에도 벅찰 것 같다. 이 글의 의도가 비정상적 교육열을 부추키는 학부모 문화에 대한 비난이 전혀 아닌만큼, 학부모 문화가 먼저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아니다. 학부모 문화의 변화를 이끌어낼 지도력이, 개혁적 정치권과 언론과 시민 운동과 학계와 전교조등의 다양한 여론 형성층에 의해 발휘되어야 함을 주장하고자 함이며, 그런 변화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집단 순응을 깨고 개인주의에 대한 금기, 혹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혼동을 넘어 설 때에만 가능함을 강조할 따름이다.
집단 순응의 구조가 형성한 숱한 전리품을 즐기는 이 땅의 기획자들, 아니 현상 타파를 두려워하는 정확하게는 창의성 없는 기획 표절자요 기획 답습자들, 이들이야말로 억압받는 여성들의 욕망을 정결치 못한 것으로 간주하는 반동의 분파이며, 존재의 이유라는 본질적 위협때문에 지위 지향의 대오에서 탈출하기를 힘겨워하는 아이들의 진실된 욕망이, 피어나서는 안될 혼란의 꽃 눈인 것처럼 심려하는 수구의 세력이다. 이들 욕망에 기회를 주는 일, 그래서 벌어지는 예기치 못한 역동이 불편하더라도, 아름다운 무질서를 관용할 줄 알고, 서로 다른 삶의 방식들이 부딪히며 아파하고 감싸줄 수 있는, 그래서 새로운 조화는 기필코 자율에 터하게 하는, 개인적 양심들이 더 이상 집단 감성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는 일, 바로 일상을 회복하는 일...... 이런 일들이 우리의 의례를 성공으로 바꾸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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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2.18
  • 저작시기2005.0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85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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