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일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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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삼국시대 천문기록이 밝혀 준 고대역사

유경로 교수와의 만남

일식관측지가 중국대륙으로 나타난 이유

<삼국사기>의 신빙성 문제

삼국시대 천문기록 연구에 대한 학계의 반응

일본학자들의 주장이 그릇된 이유

"삼국사기"의 일식 관측지는 한반도가 아니었다

본문내용

있다.
식을 빠트리지 않고 관측하여 왕에게 보고하는 일은 당시 천문학자들에겐 숨과 직결된 중대 임무였기 때문에 실제로 볼 수 없었던 일식도 상만으로 관측했다고 보고 했을 수 있다. 그렇기에 또 일부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일어나지 않았던 일식이 고려와 조선시대에 까지도 한중일 사서에 적잖이 수록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일어나지 않은 일식이 "삼국사기'와 중국사서에 공동으로 나오는 이유를 단지 베꼈기 때문이라고만 해석 할 수는 없다.
어려운 대학수학 문제를 똑같이 틀리게 푼 두 초등학생의 답안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무작정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베꼈다고 단정 할 수 있을까?
엄격히 말하자면 일식기록에 관한 기존의 일본 고천문학자들의 연구는 결론을 내리는 과정이 과학적이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결론은 "삼국사기"의 일식 기록이 대부분 같은 날 중국 사서에도 나온다는 단순 비교와 신라의 일식기록 분포도가 "이상하다"는 심증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 치밀하게 수행된 일식 계산 결과는 사실상 일본 학자들이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서 별반 참조되지 않았다.
그들의 주장은 사서 비교를 통해 얻는 단순한 주관적 판단인지 "삼국사기"일식 기록이 중국 기록의 차용인지를 객관적으로 분석·검증한 과학적 결과가 아니다.
과학이 학문으로서 공신력을 지니는 까닭은 주어진 자료에 대해 객관적이고 반복 가능한 분석을 통하여 결론을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달과 행성의 근접 현상 관측 기록에도 그랬지만, 일본 학자들은 미리 주관적 결론을 세워 놓고 과학적 분석이 가능한 천문 기록에 대해서 의도적으로 부분적인 분석만 하거나 비과학적 논리를 앞세워 결론을 합리화하려 했다는 혐의가 짙다.
"삼국사기"의 일식 관측지는 한반도가 아니었다
어느 나라가 일련의 일식 기록들을 남겼을 때 이 기록으로부터 어떻게 최적 관측지를 찾을 수 있는가? 일식이 일어나면 지구에는 달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어떤 곳에는 달의 온 그림자가 드리워져 해가 달에 완전히 가려지는 개기일식을 볼 수 있다. 그 주변 지역에는 달의 반그림자가 드리워지고, 해의 일부만이 달에 가려지는 부분일식이 일어난다. 달이 해에서 좀더 비껴 지나가는 경우에는 부분일식만 일어난다. 어떤 경우이든 어느 한 일식은 지구상의 어느 특정 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
동북아시아를 놓고 이야기하자면, 어떤 일식은 한반도와 그 이 서에서는 볼 수 있지만 동쪽에서는 볼 수 없다. 또 한반도와 그 이북에서는 볼 수 있지만 남쪽에서는 볼 수 없는 일식도 있다. 만약 어느 나라가 한반도에서 꾸준히 일식을 관측했다고 하자. 그 나라가 기록한 일식 모두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지역은 어디겠는가? 바로 한반도이다.
그 나라가 기록한 일식 중에는 주변국에서 볼 수 없거나 보기 힘든 일식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최적 일식 관측지는 바로 이러한 일식의 성질을 이용하여 찾는다. 그렇다면 실제로 삼국이 각기 일식을 관측한 지점은 어디였을까? 이것을 알 수 있다면 삼국이 정말 독자적으로 천문 관측을 했는지, 또 관측을 한 위치가 어디인지를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나의 일식 관측지 추정 방법의 신뢰도를 확인하기 위해 고려와 한·당·양나라가 남긴 일식 기록들에 대해 최적 관측지들을 추적하고 이를 각 나라의 강역과 비교해 보았다. 그 결과가 실제 역사적으로 이미 확인된 강역과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삼국의 최적 일식 관측지를 찾아보았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수록된 일식 모두를 가장 잘 관측할 수 있는 지구상 위치는 발해만 유역이다. 그리고 서기 2~3세기에 주로 나오는 고구려의 일식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위치는 만주와 몽고에 이르는, 백제보다 북위도의 지역이었다.
신라의 일식 기록은 서기 201년 이전과 787년 이후로 양분되어 있다. 그중 서기 201년 이전 상대(上代) 신라의 일식 최적 관측지는 양자강 유역으로 나타났다. 서기 787년 이후에 나오는 하대(下代) 신라에선 한반도 남부가 최적 관측지로 밝혀졌다. 즉, 삼국사기 에는 신라 초기에는 남쪽으로 지나가는 일식이 주로 기록되어 있고, 고구려에는 북쪽으로 지나가는 일식이, 백제에는 그 사이로 지나가는 일식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매우 심상치 않은 결과이다. 중국의 기록을 베꼈다면 당시 중국 나라들이 기록한 최적 일식 관측지와 삼국이 기록한 최적 일식 관측지가 평균적으로 모두 같은 위치로 나와야
이치에 맞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식 기록을 분석한 결과 삼국의 관측지가 나라마다 매우 다른 위도 상으로 각각 떨어져 나타나고 있다.
삼국사기 가 중국의 기록을 무분별하게 베꼈다면 이런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삼국사기 의 편찬자인 김부식 등이 고도의 천체 역학적 계산을 통해 중국 일식 기록을 선별한 다음, 북위도로 지나가는 일식은 <고구려본기>에, 저위도로 지나가는 것은 <신라본기>에, 그 사이의 것은 <백제본기>에 나누어서 삽입하는 등 주도면밀한 편집을 했을 리 만무하다. 이 정도의 계산을 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천체 역학적 지식과 첨단의 컴퓨터를 이용한 방대한 수치계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라본기>, <고구려본기>, <백제본기>의 일식기록은 각각 서로 다른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관측하여 나온 자료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이를 확률적 계산으로 증명할 수 있다. 컴퓨터를 이용해 중국 사서의 일식 기록을 임의로 뽑아 <신라본기>, <고구려본기>, <백제본기>에 나누어 싣는 모의실험을 수 천번 해 보면 삼국의 최적 관측지에 이 정도의 위도 차이가 발생할 가능성은 사실상 0임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 의 일식 기록은 중국 기록의 모방이 아니라, 서로 다른 위치에서 실측했던 기록인 것이다.
한편 신라와 백제가 한반도에서 일식 관측을 했음에도 '우연히' 최적 관측지의 경도가 모두 중국 대륙으로 나올 확률도 사실상 0이다. 이들의 일식 기록은 우연히 최적 관측지가 중국 대륙 동부로 나온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실측한 기록인 것이다.
요컨대 삼국의 일식 관측지를 살펴보면 삼국사기 의 일식 기록이 중국측 기록을 베낀 것이라는 기존의 결론이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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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5.03.31
  • 저작시기2005.0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9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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