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국시대의 상황과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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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남북국시대의 상황과 문학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동아시아 문학의 판도
1.발해 문학의 위치
발해 시인이 남긴 작품

2.신라 문학과 대외 관계
신라 한문학의 성숙
신문왕과 설총
전성기의 수준
말기의 상황과 왕거인
최광유·박인범·최승우·최언위

본문내용

표현을 갖추는 것도 쉽지 않은 노릇인데, 내면의 고독과 회환을 오묘한 조화를 갖춘 말로 엮어내는 데까지 이르렀다.
최광유박인범최승우최언위
1) 최광유 : 칠언율시 열 수가 <동문선>에 남아있어서 그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다. 평측과 운을 가다듬어 시를 엮어나가는 솜씨가 능숙하다.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조용한 마음으로 완성하면서 거기다 감상을 보태는 것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작풍이다. <장안춘일유감>에서는 당나라에서 과거급제에 실패만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감을 나타냈다.
2) 박인범 : 898년(효공왕 2)에 명선 도선의 비문을 지었다. <동문선>에 칠언율시 열 수와 찬 두편이 전해진다. 그는 불교에 깊은 관심을 지녔고, 시를 지을때는 역사를 회고하고, 고사를 다수 동원했다. <기향암산예상인>에서는 이국인끼리 승속이 서로 다르면서도 마음이 통하는바가 있어 지었다고 하며, 아득해지는 마음을 바로잡으려 한다면, 불교에 기대를 거는 것이 아닌가하는 암시도 지닌다. <범일국사영찬><무애지국사영찬>이 <동문선>에 전하는 것을 보면, 불교적인 성향이 다시 확인된다.
3) 최승우 : 886년(진성여왕 3)에 당나라에 가서 3년동안 공부하고 빈공과에 급제했다. 신라말 문장이 뛰어난 인물로 삼최가 있었다고 하는데, 대체로 최치원최승우최언위다. 최승우는 귀국한 다음에 후백제 견훤을 섬긴 점이 특이하다. 자기가 지닌 능력을 신라에서는 펼 수 없고 신흥세력인 후백제를 택해야 빛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런 결단을 내렸을 것이다. <호본집>이라는 문집이 있었다고 하지만 전해지지 않고, <동문선>에 실린 칠언율시 열 수와 서 한 편이 전해진다. 시는 형식이나 편수뿐만 아니라 당나라에서 머물면서 지은 것들이라는 점에서 최광유나 박인범의 경우와 상통한다. 그곳 문인들과 교유하면서 지었거나 나그네의 심정을 담은 것이며, 그 수법은 섬세하고 아름다워, 다른 두 사람과 함께 당나라 말기 이른바 만당의 시풍을 보이고 있다.
4) 최언위 : 18세인 885년(헌강왕 11)에 당나라에 유학해서 빈공과에 급제했으며, 42세 때인 909년(효공왕 13)에 귀국해서 신라의 벼슬을 얻었다. 그러다가 고려로 가서 왕건의 신하가 되어 통일과업을 성취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최언위를 통해서 신라 문학이 고려 문학으로 이어졌다. <대고려왕답견훤서>는 최언위가 썼으며 것이라고 주목된다. 힘을 자랑하지 않고 덕을 내세웠으며, 어조가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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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5.04.07
  • 저작시기2005.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91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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