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천무후와 서태후] 중국여성의 과거와 현재의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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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측천무후와 서태후] 중국여성의 과거와 현재의 성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기

Ⅱ. 중국 여제(女帝)
1. 여제(女帝)의 등장배경
2. 여제(女帝)의 지혜로움과 황후가 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
3. 실권을 잡은 女帝
4. 女帝의 평가

Ⅲ. 중국 여제(女帝)를 통해본 중국에서의 여성
1. 여성의 지위변화
2. 소녀와 어린 시절
3. 여성과 혼인
4. 현대 중국 여성의 입지( 中 외교부, 여성이 3분의1 ꡐ여인천하ꡑ)

Ⅳ.나오기

- 참고문헌

본문내용

신유학이 공식화한 여성의 덕목을 보강하고 여성의 격리를 실현했다는 것이다. 가정에 묶여 있는 여성은 교육을 받을 필요도 없고 밖의 세계를 체험하지도 못한다. 그리하여 여성은 무지한 채 남성보다도 더 열등하게 된다. 이렇게 보면 전 족은 여성을 종속화하고 남성의 지배를 확실히 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3. 여성과 혼인
서구에서는 적어도 18세기부터 대부분 여성이 20대 초반 혹은 중반까지도 결혼을 하지 않으며 여성이 20대 초반 혹은 20대 중반까지도 결혼하지 않으며, 전혀 결혼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서구형의 결혼과는 대조적으로 중국 여성은 일찍 결혼을 했으며 더구나 결혼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가족주의 시스템으로 결혼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인은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자립한 후에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이는 부모가 죽거나 은퇴할 때까지 결혼을 기다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소녀가 17세 정도에 이르면 인생의 전환점 즉 결혼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결혼은 자신에게 중대한 일인 데도 본인이 직접 상담에 관여하지 못했다. 또한 장래의 남편을 자신이 결정하는 입장에도 있지 않았다.
중국에서 결혼은 아직도 가족의 중대사로 인식되었으며 신랑측에서는 결혼의 근본 목적은 신랑과 함께 집안의 계보를 이을 아들을 낳을 여성을 얻는데 있었다. 신부는 시집의 일이나 가풍에 익숙해지도록 요구를 받았고 게으르거나 성격이 나쁜 딸은 집안의 영원한 재난이 될 수 있었다, 또한 병이 잦다면 짐이 될 수도 있고 지나치게 발랄하면 집안의 명예를 더럽히는 불장난을 저지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신부 집안의 사회적 경제 지위도 신랑측의 부모가 신부를 결정하는 기준에 포함되었다.
4. 현대 중국 여성의 입지( 中 외교부, 여성이 3분의1 여인천하)
총 1300여명 대사 8명-영사 5명 등 요직 점령
중국 외교부는 여인 천하. 결코 심한 과장이 아니다고 한다. 요즘 중국 외교부를 잘 들여다보면 사실에 가깝다고 느낄 수 있다. 전체의 거의 3분의 1에 가까운 여성 직원 1300여명이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맹활약, 외교부가 여성 부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들게 하였다.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다. 세계 여성의 날인 8일 일부 언론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너나 할 것 없이 요직에서 없어서는 안될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재외 공관에만 대사 8명, 총영사 5명, 참사관 64명이 활동하고 있다고 하며 남성 외교관보다 더 유명세를 타고 있는 대표적 인물도 있다. 우선 오스트레일리아 대사로 발령 난 푸잉(傅瑩51) 전 아주 사장(아시아국장)이 그렇다. 지난해 북 핵 문제 해결을 위한 4자 예비 회담에 중국 대표로 참석, 세계적 주목을 받은 바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저우슈화(周秀華54) 시리아 대사는 외교부내 최고 아랍 통으로 유명하다. 시리아 근무 이전에 카타르 대사를 지내는 등 해외 주재 대부분을 아랍권에서 보냈다. 이외에 대변인으로 활동하는 장치웨(章啓月45) 신문사 부사장, 젊은 한국 통으로 유명한 허잉(何瑩37) 한국과 부과장도 나름대로 웬만한 남성보다 장래가 촉망되는 여성 외교관으로 손꼽힌다.
이처럼 외교부가 마치 우먼파워의 총 본산이 되고 있는 것은 우선 중국의 전통적 우먼파워와 무관하지 않다고 나는 보았다. 앞에서 언급한 최초의 여제 측천무후(則天武后)와 청나라 말기의 정권을 농단한 서태후(西太后)라는 여걸을 배출한 나라답게 여성의 활약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하늘의 절반은 여성이라는 공산당의 기본적 인식 역시 무관하지 않다. 여기에 외교라는 것이 여성의 부드럽고 섬세한 기질과 딱 들어맞는 분야라는 현실까지 더할 경우 외교부의 우먼파워는 아주 당연한 것이다. 중국에 조만간 여성 외교부장이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베이징(北京) 여성계의 최근 전망은 때문에 그저 단순한 희망 사항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기사를 통해 본 이 글을 보며 우리나라는 아직도 은연중에 옛날의 사고방식이 지배한다. 나는 하루빨리 개방된 생각으로 전환되어야 하며 중국처럼 우리도 여성의 우먼파워를 발휘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Ⅳ.나오기
현대 사회는 급속도로 변해가고 있다. 굳이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문명의 이기(利器)를 매개(媒介)로 하여 향유하게 된 인류의 편리한 생활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모든 면에서 그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여성에 대한 시각도 예전과는 분명히 다르게 되었다. 전근대적인 사고 방식인 남존여비(男尊女卑)의 풍조에서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커짐에 따라서 중국 사회는 자연스럽게 남녀평등의 구조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과, 중국에서 여성이 이제 더 이상 구속받고 제약받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입지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도 중국 외교부의 예를 통해서 보았다. 중국을 지구상의 곳곳에는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역행해가고 있는 나라의 대표적인 중국을 손꼽았는데 이제는 점진적으로 바뀌어 가는 듯 하다. 중국의 역사 속에서는 예전의 사고방식인 남성우월주의로 女 帝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여자가 뭘 하겠냐는 식의 사고방식이 지배하여 전 근대적인 삶을 이어왔었다. 그래서 측천무후와 서태후는 역사 적으로 남긴 업적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의 평가는 그리 좋지 못하다. 이번 레포트는 나에게 중국사를 직접현재의 중국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으며 다시금 여성에 대해서 생각 해 볼 수 있게 해주어서 뿌듯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흥미로워 했던 주제로 하였다는 점이 가장 이번 레포트를 열의를 가지고 마치게 된 이유라고 생각한다.
《참고 자료》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신 성 곤, 서해문집 2004, 163-164pp. 314-317pp
『중국 사회의 지속과 변화』 로이드 E 이스트만 돌배게 1999, 40-48pp
『인물 중국사』 강 용 규 한민글밭 1994, 299-306pp 490-498pp
『하룻밤에 읽는 중국사』 미야자키마사카츠 중앙M&B, 2003, 100-101pp, 242-243pp
『18세기 중국 사회』수잔 나퀸 이블린 S로스키, 신서원, 1998, 163-164PP
『동양사 개론』신채식 2003 三英社 1993, 658-659pp
『문화일보』 2004년 3월 8일자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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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6.29
  • 저작시기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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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05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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